[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새해 벽두 중동의 대난투, ‘아마겟돈’으로 번질까
새해 벽두부터 중동이 시끄럽다. 지난해 10월 7일(이하 현시시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은 지난해 11월 14일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상선을 인질로 잡는 ‘컨테이너 전쟁(Container War)’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다국적 함대를 모아 홍해 선단을 지키는 번영의 수호자(Prosperity Guardian) 작전, 영국과 손잡고 후티 반군을 선제공격(preemptive strike)하는 포세이돈의 궁수(Poseidon Archer) 작전으로 대응하고 있다. 22일엔 미국과 영국의 전투기·구축함·잠수함이 호주·캐나다·네덜란드·바레인의 도움을 받아 후티 반군의 미사일·무인기 시설과 무기고 등 8곳을 급습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미국과 후티 반군 사이에서만 무력 충돌이 일어난 게 아니다. 이란은 15일 이라크·시리아를, 16일엔 파키스탄을 각각 미사일과 무인기로 공격했고, 파키스탄 전투기는 18일 이란을 미사일로 공습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전쟁 중이면서도 레바논·시리아에서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당인 헤즈볼라와 이란 혁명수비대 세력을 타격했다. 20일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 알아사드 공군기지가 로켓 공격을 받았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민병대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요르단은 18일 전투기를 보내 시리아를 폭격했다. 이달 들어 세 번째 공습이다. 마약 단속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헤즈볼라와 친이란 시리아 민병대가 무기와 폭발물을 반입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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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팔에 이어 미국-후티 충돌
이란·파키스탄도 무력 동원
미국·이란 직접 싸우면 세계대전
한국, ‘강 건너 불구경’ 형편 안돼
」
한마디로 2024년 지금 중동에선 대난투(大亂鬪)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중동의 세력 구도를 표로 그려봤다(그래픽 참조). 이를 드라마로 비유하자면 주연은 이란·미국·이스라엘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주연급이지만, 이번 회차에선 출연하고 있지 않다. 헤즈볼라(레바논), 하마스(팔레스타인), 후티 반군(예멘)은 조연이다.
중동의 맹주 꿈꾸는 이란의 노림수
주연 중 핵심은 이란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후티 반군은 미국과 각각 맞서고 있는데, 이란이 배후로 추정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 후티 반군과 관련, “이란에 비공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밝힌 배경이다.
이란은 중동·튀르키예·러시아·인도의 전략적 교차점과 카스피해·페르시아만·오만만·아라비아해의 길목에 있다. 이란은 많은 인구(8917만 명·이하 지난해 기준)와 풍부한 석유(매장량 4위)를 바탕으로 중동의 맹주를 꿈꾼다.
이를 위해 이란은 두 개의 전략을 세웠다. 하나는 중동에서 미국을 내쫓고, 이스라엘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과정에서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이란의 눈엔 미국은 이란의 신정(神政) 체제를 뒤엎어버리려는 외세며, 이스라엘은 미국의 꼭두각시다.
이란은 헤즈볼라·하마스·후티 반군·시아파 민병대(이라크·시리아) 등 중동 각국에서 반(反)서방·반이스라엘 성향의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무장단체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불의 고리(Ring of Fire)’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란을 ‘악의 축(Axis of Evil)’의 하나로 부른다.
또 다른 전략은 이란의 이슬람 종파인 시아파의 세를 늘리는 것이다. 이란 인구의 99.4%가 무슬림이며, 그중 90~95%가 시아파(미국 국무부 2022년)다. 그러나 시아파는 전 세계 무슬림의 10~13%(퓨 리서치 2009년)에 불과하다. 이란 이외 이라크와 아제르바이잔에서만 시아파가 다수다. 그래서 레바논(헤즈볼라)·예멘(후티 반군)·시리아(아사드 정권)의 시아파 세력을 돕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의 동참 요구를 뿌리치며 관망하고 있다.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소홀히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우디는 2015년부터 싸운 후티 반군과 최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표에는 없지만, 중국은 신스틸러다. 중국은 서로 다퉈왔던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 중재를 섰다. 미사일을 주고받던 이란과 파키스탄이 19일 ‘형제의 나라’라며 화해한 데 중국이 개입했을 여지가 있다. 이란과 파키스탄은 모두 중국의 오랜 우방 국가들이다.
미국의 아프간 철수 후 힘의 공백
그렇다면 하필 전쟁이 현시점에서 일어났을까. 한주성 한국국방외교협회 중동아 센터장은 “미국이 중국과의 신냉전에 집중하려고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등 중동에 관심을 덜 쏟자 이란은 ‘힘의 공백’이 생겼다고 판단, ‘저항의 축’과 ‘불의 고리’를 부추기고 있다”며 “하마스는 사우디·이스라엘의 수교협상 등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뒤로 밀리는 데 반발했다”고 분석했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은 “이란은 대리인(Proxy)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반격에 곤란을 겪자, 또 다른 대리인인 후티 반군을 사주했다. 미국을 움직여 이스라엘이 전쟁을 그만두게 하려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중동에서 전쟁이 제한적으로 치러지고 있는데, 자칫 ‘아마겟돈’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미국과 이란이 직접 붙을 경우에서다. 현재 양국은 이를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성일광 실장은 “이스라엘이 하마스 말고도 헤즈볼라와도 개전하면 이란은 가만있기 힘들게 되며, 그러면 미국도 직접 나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사우디도 끼어들지 모른다. 이쯤 되면 세계대전급이다.
먼 중동의 일이라고 한국이 불구경할 형편은 못 된다. 이미 후티 반군은 “가자 사람들(팔레스타인인)을 지지하지 않는 국가들은 신의 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동 대전에서 미국은 동맹인 한국에 도와달라고 청할 수도 있다. 핵심 산유 지역인 중동에서의 대규모 전쟁은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심대한 충격을 주게 된다.
하루빨리 중동에서 총성이 그쳐 이 모든 게 기우(杞憂)로 끝나길 바란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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