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공무원의 반란
서울북부지법은 지난해 11월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경찰관 2명에게 벌금 500만원과 4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2022년 11월 술에 취해 길가에 누워있던 60대 남성을 자택 야외 계단에 앉혀 놓고 돌아가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였다. 이들은 직장에서도 징계 처분(감봉 및 견책)을 받았다.
사건은 경찰 내부 논란으로 이어졌다. 특히 일선 경찰관에게 주취자 보호에 대해 지나친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주장이 경찰 내부에서 넓은 공감대를 얻었다. 일선 경찰관이 져야 할 책임의 한계를 좁혀달라는 요구였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주취자 문제를 경찰만이 감당하기에는 사실 한계가 있다.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해달라는 요구는 다른 공직사회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촉발한 교직 사회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당시 각종 교권 보호안과 함께 국회를 통과한 초·중등교육법은 일선 교사들의 책임 한계를 명확히 했다. 학교 민원은 교장이 책임진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웬만한 일에는 침묵했던 과거 공직사회가 질적으로 달라졌음을 뜻한다. 우선 지시는 정권이 내리고 책임은 공무원이 지는 식의 직권남용 판례가 대량 양산되면서 공무원들이 책임의 한계에 어느 때보다 민감해졌다. 반면에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민간 기업과의 임금 격차가 좁혀질 가능성도 희박해 워라밸에는 더 예민해졌다. 실제 정부의 4·10 총선 수(手)개표에 공무원들이 대거 동원될 가능성이 커지자 공무원 사회가 동요하고 있다.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 앞 공무원들 집회에선 “투표사무원은 14시간에 13만원을 받는다. 최저시급을 밑도는 노동착취”라는 주장이 나왔다.
불만은 젊은 공무원의 공직 이탈 현상으로도 나타난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8년 5761명이던 2030세대 공무원 퇴직자가 지난해 1만1067명으로 배 가까이 뛰었다. 2030세대에선 가장 처우가 좋은 검사들도 마찬가지다. 10년 차 이하 검사 가운데 2019년엔 19명이 옷을 벗었지만, 2022년엔 41명, 지난해엔 38명이 사표를 냈다.
정부와 지자체는 2030 공무원을 달래기 위해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조직 문화 바꾸기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조직문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무원 보수를 파격적으로 높일 수 없다면, 그들의 권한과 책임의 한계를 지금보다 정교하게 설계하는 일에도 나설 때가 된 것 같다.
한영익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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