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의 사람사진]'맨발의 웹툰왕' 기안84

권혁재 2024. 1. 2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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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TV정복기


권혁재의 사람사진 / 기안84
2012년,
취재기자가 기안84 인터뷰 통보 후
두 번 날짜를 바꿨다.

그간 사진기자를 하면서
취재일정이 이리 여러 번 바뀐 건 처음이었다.

이를 두고 취재기자는
저간의 속사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기안84가 매주 수요일 자정까지 웹툰을 올려야 하는데
마감이 계속 늦어져 부득이 일정을 바꿔야 했다고 하네요.”

당시 기안84는 웹툰 ‘패션왕’을 연재하고 있는 터였다.
‘패션왕’은 장안의 화제였고,
수많은 독자가 ‘패션왕’ 마감을 기다리고 있으니
기다리는 독자를 위해 마감을 지켜야 하는 게 그의 숙명이었다.

이후 어렵사리 인터뷰 날짜가 다시 정해져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그의 작업실은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반지하였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 작업실 입구엔
신발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윽고 나타난 그는
모자를 쓰고 푸른 패딩 점퍼를 입은 채였다.
그런데 사진기자로서 눈길이 머문 곳은
그의 옷이 아니라 발이었다.

신발이 널브러져 있는 사무실 입구에 전신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 있었다. 거울을 마주하고 앉은 2012년의 기안84는 두꺼운 점퍼를 입었음에도 꽤 마른 체형임이 느껴질 정도였다.

맨발에다 슬리퍼 차림이었기에 그랬다.
꽤 추운 날임에도 맨발인 그가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일정을 자꾸 바꾸어 죄송합니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그림을 그립니다만,
늘 마감에 허덕이네요.
겨우 마감 끝내고 허겁지겁 나와서 이렇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인 그의 한마디에
오래도록 마음이 머물렀다.
“만화가가 이렇게 외로운 직업인지 몰랐습니다.”

그의 말에
양말도 안 신은 채 나타난 이유가 보이기도 했다.
누구 하나 챙겨주는 이 없이
홀로 다 해결해야 하니 그랬던 게다.

12년이 지난 후,
그는 우리나라 방송계의 블루칩이 됐다.
2023년 MBC 방송연예대상 또한 그가 받았다.

상수동으로 이사 오기 전 기안84는 경기 화성시 기안동에 살았다. 만화가로 살기로 다짐했을 때 살던 기안동의 기안과 태어난 해인 1984년의 84를 붙여 기안84를 필명으로 쓴다.

수상을 두고
평론가들은 그가 자신 모습 그대로 방송한 결과라고 평했다.
평론가들의 평을 곱씹어 보니
2012년의 기안84 또한
슬리퍼를 신은 채
자신 모습 그대로 인터뷰에 나선 터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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