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호화 이사회 의혹…회장 인선 괜찮나
포스코그룹 신임 회장 선임을 앞두고 재계가 시끌시끌하다. 포스코그룹 지주사 포스코홀딩스가 지난해 해외 이사회를 열면서 비용을 불법 집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전격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회장 선임 과정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팽배하다.
캐나다 이어 중국 이사회 비용도 수억원
서울 수서경찰서는 최근 최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과 사내외이사 등 16명을 업무상 배임이나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배경은 이렇다. 최 회장을 비롯한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지난해 8월 6일부터 12일까지 5박 7일 일정으로 캐나다 밴쿠버, 캘거리 등에서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 해외 일정에는 식비와 현지 전세기 이용, 골프비 등으로 6억8000만원가량이 소요됐다. 비용은 사규에 따라 포스코홀딩스가 집행해야 하지만, 자회사인 포스코와 캐나다 현지 자회사 ‘포스칸(POSCO-Canada)’이 나눠 집행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총 비용 6억8000만원 중 포스코홀딩스가 3억5000만원, 포스칸이 3억1000만원, 포스코가 2000만원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다 보니 정상적인 회계 처리가 어려워 계열사들이 나눠 결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캐나다 방문 일정을 두고서도 논란이 뜨겁다. 5박 7일간의 일정 중 이사회는 단 하루만 열렸고, 대부분은 현지 시찰과 트레킹, 관광 등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하루 숙박비가 1인당 평균 100만원이 넘는 5성급 호텔에서 묵고, 병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프랑스 와인 ‘샤토 마고’ 등을 마시며 식비로만 1억원가량을 지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포항 시민단체인 ‘포스코본사·미래기술연구원 본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최정우 회장 등 포스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해외법인장 등을 업무상 배임, 부정청탁·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사회 구성원이 해외 이사회를 명목으로 골프, 관광 등을 즐기면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직접 나서 수사하며 조만간 최정우 회장 등 피고발인 소환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뿐 아니다. 최 회장과 포스코홀딩스 이사들은 2019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하루짜리 이사회를 명목으로 전세기를 이용해 7일간 백두산 일대 등을 여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들은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최고급 호텔에 숙박하고 백두산산 송이버섯, 러시아산 털게, 최고급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했는데 당시 비용 약 7억~8억원 중 상당 부분을 자회사인 포스코차이나가 부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범대위는 포스코 회장 선임 절차를 앞두고 CEO 후보추천위원회(이하 후추위)에 들어가는 사외이사들을 상대로 로비가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경찰에 입건된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들은 최 회장을 비롯한 사내이사 4명과 기타비상무이사 1명, 사외이사 7명 등 이사회 멤버 12명과 포스코홀딩스 임원 4명 등 총 16명이다. 후추위 멤버 7명 전원이 이번에 입건된 사외이사들이다.
경찰은 이들 중 현직 교수에 대해서는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도 조사 중이다. 포스코홀딩스 측은 “사외이사에게는 정관과 사규에 따라 업무 수행에 필요한 경비를 지급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회장 선임을 앞둔 포스코 입장에서는 이번 경찰 조사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차기 포스코 회장을 인선해야 하지만 자칫 원점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포스코홀딩스 후추위는 올 들어 회장 선출에 속도를 내왔다. 지난 1월 10일 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개최하고 내부 롱리스트 후보자 7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최정우 회장은 후보군에서 제외된 상태다. 외부 평판 조회 대상자 15명도 함께 선발했다. 앞서 후추위는 지분 0.5% 이상 보유한 주주와 10개 서치펌으로부터 외부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추천받았다. 총 20명의 후보자가 추천됐고 5명을 제외한 15명을 선발했다. 차기 회장 후보군이 내부 인사 7명, 외부 인사 15명 등 총 22명으로 좁혀졌다.
지난 1월 17일에는 내외부 롱리스트 후보군을 18명으로 압축했다. 후추위는 롱리스트 18명에 대해 외부 인사 5인으로 구성된 ‘CEO후보추천자문단’에 자문을 의뢰했다. CEO후보추천자문단은 산업계, 법조계, 학계 등 분야별 전문 인사로 구성됐다. 예정대로라면 1월 말까지 심층 면접 대상자인 ‘파이널리스트’를 확정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명단은 나오지 않았지만 재계에서는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과 정탁 포스코인터내셔널 부회장, 정기섭 포스코홀딩스 사장, 한성희 포스코이앤씨 사장 등이 내부 후보에 포함됐을 것으로 본다. 포스코그룹 출신 퇴직자 중에선 전중선 전 포스코홀딩스 사장, 장인화 전 포스코 사장, 정창화 전 포스코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장, 이영훈 전 포스코건설 사장, 조청명 전 포스코플랜텍 사장 등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된다. 외부 후보 중에서는 권영수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입길에 오른다.
하지만 이번 경찰 수사 여파로 포스코 회장 선임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후추위가 회장 선임을 강행하더라도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주들이 최종 후보를 반대하면 3월 이후 CEO 공석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업계에 만연한 사외이사 과잉 접대 관행이 결국 사법적 판단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최정우 회장이 후보군에서 빠지기는 했지만 혹여 후추위 멤버가 다시 짜일 경우 기존 유력 후보들 대신 새로운 내외부 인물로만 후보군이 다시 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논란이 커지자 박희재 후추위원장은 “포스코홀딩스 해외 이사회에서 비용이 과다하게 사용됐다는 문제 제기와 관련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후추위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이득을 보려는 시도가 없는지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대주주 국민연금과의 갈등 커져
한편에서는 최정우 회장 책임론이 또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차기 회장 후보군에서 제외되기는 했지만 재임 내내 각종 구설수에 시달려오면서 호화 이사회 논란까지 불러왔기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컸던 사안은 ‘성과급 잔치’였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3월 이사회를 열고 최 회장과 주요 계열사 임원 28명에게 자사주 2만7030주를 스톡그랜트 방식으로 부여하기로 했다. 스톡그랜트는 신주 발행 없이 회사 주식을 직접 무상으로 지급하는 보상 제도다. 최 회장은 3월 31일 스톡그랜트로 1812주를 받았는데 당일 종가 기준 6억6682만원에 달했다.
스톡그랜트 지급 대상이 최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에 한정됐다는 점도 논란이다. 앞서 전 직원에게 스톡그랜트를 지급한 네이버와 대비된다. 논란이 커지자 포스코 창업 원로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들은 특별성명서를 내고 “최 회장이 책임 경영을 펼치지 않고 제 잇속을 챙기고 있다. 최근 드러난 스톡그랜트 소식은 심한 엇박자와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책임 경영 차원에서 스톡그랜트 제도 도입을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직원 불만이 커지면서 노사 임단협 갈등도 극에 달했다. 포스코 노사는 지난해 5월 24일부터 임단협을 시작해 24차례 교섭을 거쳐 중앙노동위원회 조정회의까지 진행했다. 지난해 10월 31일 극적으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합의안 주요 내용은 기본임금 10만원 인상, 주식 400만원 무상 지급, 비상 경영 동참 격려금 100만원 지급 등이었다.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전체 조합원 중 50.91%가 찬성했다. 창사 첫 파업 위기는 간신히 봉합됐지만, 파업 결의에 앞서 진행된 노조 쟁의행위 찬반 투표에서 노조원의 77.8%가 찬성하면서 직원 불만이 고조됐다.
포스코그룹은 최 회장의 3연임 도전을 두고 지난해 말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지분 6.71%)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28일 포스코홀딩스 차기 회장 선임 절차와 관련해 “내외부인 차별 없는 공평한 기회가 부여돼야 하며,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3연임을 반대하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금융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소유가 분산된 지배구조 기업에 대한 스튜어드십 고민이 필요하다”며 국민연금 주주로서의 개입을 시사한 바 있다. 스튜어드십은 투자한 기업의 의사 결정에 참여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행동 지침이다.
이에 대해 박희재 위원장은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투명하며 공정하게 회장을 선임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작 박 위원장을 비롯한 사외이사들이 호화 이사회 논란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후추위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평가다. 재계 안팎에서는 ‘후추위 해산 후 인선 원점 재검토’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나온다. 최 회장은 레이스에서 이탈했지만 이른바 ‘최정우 라인’ 사외이사들이 여전히 후추위에 참여하는 만큼 공정성 문제가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후추위 구성뿐 아니라 회장 후보자를 공개 모집하지 않는 비공모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 시각도 있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CEO후보추천자문단을 신설해 공정성을 기한다지만 말 그대로 ‘자문’ 역할에 그치기 때문이다.
특히 포스코 이사회가 지난해 12월 19일 현직 회장이 연임을 원할 경우 공개적으로 의사를 밝히도록 하는 규정을 없애면서 자동으로 차기 회장 후보군 리스트에 오를 수 있도록 한 것이 화근이 됐다. 최 회장 재임 기간 중 선임된 사외이사들로 후추위가 구성된 것을 문제 삼아 “본인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성했다”는 비난이 제기돼 논란이 더욱 커졌다.
결국 후추위 구성 등 회장 선임 절차가 송두리째 바뀌지 않는다면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또다시 칼을 빼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KT 이사회의 구현모 대표 연임 결정에 대해서도 ‘절차적 투명성’을 문제 삼아 반대한 바 있다. 같은 소유분산기업인 KT 사례에서 보듯 포스코도 후추위를 다시 꾸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다는 관측이다.
포스코홀딩스 주가 불안
2차전지 둔화로 고점 대비 40% 빠져
포스코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혼선을 빚을 경우 실적,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포스코홀딩스 주가는 지난해 초 27만2000원에서 7월 장중 최고 76만4000만원까지 오르며 개미 투자자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이면서 고점에서 40%가량 빠진 40만원대에서 횡보하는 중이다(1월 17일 종가 41만9000원).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개인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개인은 지난해만 포스코홀딩스 주식을 11조3324억원어치 사들였다. 2022년 말 31만3370명이던 포스코홀딩스 소액주주 수도 지난해 3분기 76만4128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그럼에도 포스코홀딩스 주가가 하락한 것은 본업인 철강 산업 부진뿐 아니라 신사업인 2차전지 시장이 성장 둔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 포스코홀딩스 영업이익은 3조2271억원에 그쳐 전년 동기(5조2754억원) 대비 급감했다.
안회수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주택 수급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지속되는 한 철강 시황이 빠르게 개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린 철강을 통한 제품 차별화와 함께 2차전지 소재 사업에서 이익을 낼 때까지 성장통을 견뎌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증권사들도 일제히 포스코홀딩스 목표주가를 낮추는 중이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목표주가를 기존 73만원에서 60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키움증권은 56만원을 제시했다. 한때 목표주가가 90만원까지 치솟았던 점을 감안하면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는 의미다.
“포스코홀딩스 실적, 주가가 부진한 데다 차기 회장 선임을 두고 혼선에 빠지면서 포스코 내부가 여느 때보다 뒤숭숭한 분위기다. 한동안 리더 공백 사태를 겪을 수밖에 없는 만큼 누가 차기 수장을 맡더라도 혼란을 수습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 귀띔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4호 (2024.01.24~2024.0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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