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업계 일시적 침체, 폼팩터 다변화로 뚫는다

김혜원 2024. 1. 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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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형까지 생산하는 게 대세로
파우치형 먼저 만들어 5위 오른 SK온
단일 기기 생산 전략 과감하게 버려
다양한 플랫폼 대응력이 핵심 경쟁력
게티이미지뱅크


제너럴모터스(GM)가 전기 픽업트럭 공장 가동을 연기한 데 이어 포드가 주력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감산에 돌입하면서 전기차 시장에 불어닥친 한파를 체감하고 있다. 포드 소식을 들은 유럽 최대 전기차 판매 회사 스텔란티스의 카를로스 타바레스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라고 경고했다. 전기차 시장은 이미 캐즘(chasm)에 빠져들었다는 게 중론이다. 캐즘은 시장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대중에 받아들여지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겪는 침체기를 뜻한다.

전기차 시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면서 배터리 업계도 덩달아 속도 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했다. 24일 증권가에 따르면 올해 국내 배터리 3사의 매출 증가율은 평균 13%에 그칠 전망이다. 고속 성장했던 2022년(80.8%)과 지난해(40.7%·추정치)의 경이로운 수치는 당분간 보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 둔화기에 접어들면서 배터리 회사의 전략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급성장기 국내 배터리 3사는 각형(삼성SDI) 원통형(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파우치형(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각각 강점을 지닌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며 프리미엄 시장을 고집했지만 이제는 가격 경쟁력 우위의 보급형까지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게 대세가 됐다.

폼팩터(기기 형태)와 케미스트리(양극재) 다변화 양상도 뚜렷하다.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폼팩터를 개발할 생각이 전혀 없다”거나 “우리는 싸구려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만들 계획이 없다”는 등 불과 몇 년 전의 소신 발언은 더 국내 배터리 회사에서 들리지 않는다.

업계 후발주자로 통한 SK온이 제조가 가장 까다로운 파우치형 배터리를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울 당시 무모하다는 평이 많았다. 통상 배터리는 제조 난도가 낮은 편인 원통형에서 시작해 각형, 파우치형 순서로 개발하는 데 SK온이 역순을 택한 데 대한 의심의 눈초리였다. 하지만 SNE리서치에 따르면 SK온의 지난해 1~11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5.0%로, 세계 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독주하는 CATL 등 중국 업체를 제외하면 SK온의 시장 점유율은 10.9%로 세계 4위권이다.

현재 파우치형 배터리만 만드는 SK온은 단일 폼팩터 전략을 과감히 버렸다. 폼팩터 다변화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3개 폼팩터를 모두 개발하겠다고 밝힌 업체는 SK온이 유일하다. 최재원 SK온 수석부회장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취재진과 만나 “고객마다 요구하는 사양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해 3가지 배터리 폼팩터를 모두 개발하는 것”이라며 “각형 배터리 개발은 이미 완료했고 원통형도 개발을 상당 수준까지 했다”고 말했다.

원통형 배터리는 공간 효율 탓에 에너지 밀도가 낮은 대신 저렴한 가격이 강점이다. 테슬라가 원통형 배터리를 고수하면서 배터리 회사 입장에서는 개발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던 측면이 있다. BMW, GM, 볼보, 스텔란티스 등도 원통형 배터리 적용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NE리서치는 지난 9일 “SK온은 시장에서 수요가 높은 각형, LFP 배터리 개발을 상당 수준 완료한 것으로 알려져 추후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원통형뿐 아니라 각형, 파우치형 배터리는 각각의 특장점이 확실해 ‘배터리 삼국시대’는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30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3개 폼팩터가 비교적 고르게 점유할 것이라는 게 SNE리서치 관측이다. 2022년 시장 점유율 과반을 차지했던 각형이 43%로 줄고, 같은 기간 파우치형은 26%에서 31%로, 원통형은 19%에서 26%로 각각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배터리 업계에선 다양한 플랫폼 대응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완성차 업체가 초창기에는 프리미엄 중심의 소수 모델로 전기차 라인업을 구성했지만 이제는 저가에서 고가, 소형에서 대형 등 다양한 세그먼트별로 전기차를 출시하고 있어 그에 맞는 배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고성능 배터리에 주력했던 삼성SDI도 중저가 배터리 기술을 확보해 폭넓은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춰나가고 있다.

배터리 업계 일각에서는 지금의 정체기를 오히려 기다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의 공격적인 투자 계획에 맞춰 비용, 인력, 원재료 수급 등 여러 면에서 속도를 올려야 했지만 올해는 잠시 각자의 기술력과 원가 등 근본적인 경쟁력을 돌아볼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평했다. 선두 업체 LG에너지솔루션 역시 내실을 다지고 경쟁우위를 높일 기회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기업으로 특허 경쟁력이 큰 자산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특허를 벗어나 신규 배터리를 개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올해 9월 말 기준 등록된 지적재산권 수는 2만8652건, 출원된 특허를 포함하면 5만여건이 넘는다. LG에너지솔루션은 원통형, 소형·중대형 파우치에 이르는 다양한 배터리 폼팩터를 기반으로 전기차용 배터리뿐만 아니라 IT 기기, 경전기차(LEV), 전동공구 등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소형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까지 포괄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진 게 최대 장점이다.

김혜원 기자 ki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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