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서 스마트폰 수거 말라? 인권위, 학교 현실 너무 모른다
[서부원 기자]
▲ 스마트폰 |
ⓒ 픽사베이 |
얼마 전 학생들의 스마트폰 수거를 규정한 교칙을 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학교가 거부해 화제가 됐다. 부산의 A중학교는 면학 분위기 조성과 사이버 범죄 예방, 교권 보호 등을 미이행 사유로 인권위에 통지했다. 교육적 차원에서 강제 규제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부산만의 문제도 아닐뿐더러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안이다. 교사라면 모두가 동의할 테지만, 생활지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스마트폰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미 몸에 일부가 돼버린 스마트폰은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큰 징벌은 스마트폰을 일정 기간 압수하는 것이다. 한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들이 태반이고, 심지어 식욕마저 사라진다며 금단 현상을 토로하기도 한다. 압수당하면 분실 신고하고 바로 다음 날 부모님을 졸라서 새것을 장만한 아이도 있다.
축제 전제 조건이 스마트폰 수거인 까닭
스마트폰은 학교의 일상을 통째로 헝클어버렸다. 수업 방식과 학사 운영, 생활지도, 교우 관계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한 동료 교사는 이를 두고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교육을 다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아무 교육도 할 수 없다'고 표현했다.
예전 같으면 교실이 소란스러울 때 교사들이 목청 돋우며 조용히 시키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젠 옛말이다. 스마트폰만 손에 쥐여주면 순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진다. 게임을 하거나 SNS와 유튜브 영상에 몰입하는데, 교사가 곁에 다가가 불러도 모를 정도다.
북적북적해야 할 학교 축제도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진다. 스마트폰 속 영상이 훨씬 더 재미있으니 굳이 무대 위 공연을 쳐다볼 필요가 없다. 주최하는 학생자치회에서 스마트폰 수거를 축제의 전제 조건으로 내거는 건 그래서다.
체육대회의 풍경도 180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뛰는 것보다 관중석에 남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걸 더 좋아한다. 축구와 농구, 족구 등 구기 종목은 좋아하는 경우가 반마다 한정되어 나머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종일 관중석에서 스마트폰을 친구 삼는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종목을 도입해봐도 관중석에 똬리를 튼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데는 역부족이다. 되레 왜 자꾸 귀찮게 하느냐고 역정을 내기도 한다. 그들에게 학교 축제나 체육대회는 아무 거리낌 없이 종일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해방의 날'인 셈이다.
그나마 수업 시간은 아직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수업 중에 대놓고 스마트폰을 꺼내 사용하다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가 왕왕 뉴스에 소개될 만큼 잦아지고 있다. 스마트폰을 수거하지 않는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에는 전원을 꺼두도록 강제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 교실 |
ⓒ elements.envato |
인권위는 스마트폰이 학교 교육을 형해화하는 현실을 너무 순진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인권위는 스마트폰을 강제로 수거하기보다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는 역량을 키우도록 교육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지당하지만, 현실에선 '공자님 말씀'일 뿐이다.
학교마다 스마트폰 중독 예방 교육은 필수적 교육과정이다. 도박과 마약 중독 예방 교육과 함께 비교과 활동은 물론, 교과 수업 때마다 매번 강조되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교육적 효과는 미미하다. 이는 교육 시간이 부족하거나 콘텐츠의 질이 낮아서가 결코 아니다.
이미 과의존 상태에서 실시하는 예방 교육은 '뒷북'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중독의 폐해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들어온 이야기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맡에 두지 말라거나 사용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제언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섣부르지만, 아이들 상당수는 인권위의 권고대로 예방 교육이 먹힐 수 있는 임계점을 이미 넘어섰다고 본다. 학교의 교육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법적 강제를 포함한 특단의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거다. 가정과 사회가 학교 교육에 등 떠미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요원하다.
당장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쥔 상태에서는 교육이 불가하다. 단언컨대, 교육이 스마트폰을 능가하는 재미를 주지 못하는 한 백약이 무효다. 재능과 끼를 마음껏 펼치는 한마당 축제와 체육대회조차 스마트폰이 주는 즐거움에 무릎 꿇은 마당에, 더 말해서 무엇 할까.
스마트폰의 재미에 빠져버린 아이들은 '심심함'을 못 견뎌 한다. 책꽂이엔 읽을거리가 있고 교실 밖 공용 공간엔 악기도 있으며 바둑과 큐브, 체스 같은 놀거리도 있지만, 스마트폰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수업에 집중하라고 하면, 유튜브처럼 재미있게 수업해달라고 대꾸하기 일쑤다.
바로 옆 짝꿍도 투명 인간 신세다. 깔깔거리며 웃고 떠들다가도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소 닭 보듯 한다. 믿기 힘들 테지만, 같은 교실 안에서 짝꿍끼리도 SNS로 대화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다 스마트폰을 끄도록 하면, 바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잔다.
오죽하면, 교사들이 '잡무'를 자청하겠는가. 매일 조회와 종례 때 스마트폰을 일괄 수합하고 분출하는 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보관하다 분실하거나 파손이라도 될라치면 변상해야 하는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이를 이어가는 건 학교에서만이라도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아이들 스마트폰 사용 규제 카드 꺼낸 다른 나라들
인권위의 권고 취지에는 십분 동의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은 제어되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의 가방 안에는 교과서와 문제집 파일을 저장한 태블릿 피시만 들어 있고, 볼펜이나 연필을 전자 펜슬이 대신하고 있다. 노트 정리나 문제 풀이도 태블릿 피시 하나면 족하다.
'에듀 테크' 수업 기반은 완벽하게 갖춘 셈이다. 문제는 이를 '선용'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교사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점심시간이나 야간자율학습 시간의 교실은 순식간에 피시방으로 변한다. 누구라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도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 문제가 대두되면서 이를 법적으로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대만의 경우, 지난 2015년부터 만 2세 이하의 영유아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18세 이하 청소년도 장시간 사용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프랑스에서도 2018년 15세 이하 학생들의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이 제정됐다. 중학생까지는 아예 스마트폰을 가지고 등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최근 중국에서도 18세 미만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하루 최대 2시간으로 제한하는 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사족. 인권위는 교칙의 개정을 권고하며,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 문제를 아이들이 자체적인 토론을 통해 규정을 정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미 학생인권조례에 규정되어 있는 내용이다. 내가 아는 한, 막무가내로 스마트폰을 일괄 수거하는 학교는 없다.
학교마다 일과 중 부모와의 긴급한 연락을 위한 창구도 마련되어 있다. 수강 신청이나 설문 조사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분출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강제 수거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넣고 학교마다 민원이 빗발치는 건,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이 적지 않다는 방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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