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왜 이게 없을까... 세계인을 매료시킨 도시의 비결

윤찬영 2024. 1. 2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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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결국 '도시다움'을 만드는 일이라는 <도시×리브랜딩>

[윤찬영 기자]

 <도시×리브랜딩>(오마이북, 박상희·이한기·이광호)
ⓒ 오마이북
     
도시가 사람들로 넘쳐나던 시대는 지났다. 출산율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인구도 따라 줄면서 서울·수도권 밖은 도시 곳곳이 빠르게 비어가고 있다. 이젠 도시가 사람들을 붙잡아두고 불러들이려 애를 써야 하는 시대가 됐다.

도시들이 앞다퉈 '도시 브랜드'를 내놓으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아 보인다. '아이 러브 뉴욕'처럼 기억에 남는 한국의 도시 브랜드를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왜 부산이나 대구는 뉴욕이 되지 못할까. 

<도시×리브랜딩>을 보면 그 궁금증이 풀린다. '도시다움을 만드는 새로운 변화'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럴듯한 도시 브랜딩 공식이나 비법이 담긴 책은 아니다. 도시 (리)브랜딩은 결국 '도시다움'을 만드는 일이며, 그런 도시다움은 '새로운 변화'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뉴욕이란 도시다움을 만든 새로운 변화?

그렇다면 뉴욕이란 '도시다움'을 만들어낸 '새로운 변화'는 무엇일까. 뉴욕도 처음부터 우리가 아는 뉴욕은 아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거대한 도시는 가난과 범죄로 얼룩져 있었다. 오일쇼크로 경기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도시엔 짙은 그림자가 깔렸고 범죄율은 치솟았다. 자연스레 도시를 찾는 발길도 줄고 투자도 끊겼다.

이 무렵 부동산 투자자 루이스 루딘은 '더 좋은 뉴욕을 위한 모임'을 꾸렸다. 모임에선 뉴욕이 맞닥뜨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댔다. 규제를 풀고 세금을 줄이는 등 기업하기 좋은 정책을 정부에 제안했고, 치안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돈을 모으기도 했다. 또 뉴욕 관광청과 함께 도시를 알리는 캠페인도 벌였다.

그러자 뉴욕시도 거들었다. 광고 기획자, 그래픽 디자이너, 작곡가 등 민간 전문가들을 모아 도시 브랜딩에 나섰다. '아이 러브 뉴욕'이란 슬로건도 이때 나왔다. 광고회사 '웰스, 리치, 앤드 그린'과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가 함께 우리 모두가 아는 로고 'I♥NY'(1975년)을 만들어냈다. 로고와 조형물뿐 아니라 노래도 만들었는데, 프랭크 시나트라, 빌리 조엘 등의 목소리에 실려 TV와 라디오로 퍼져나갔다.

뉴욕은 점차 관광도시로 발돋움해 나갔고, 비즈니스 활성화 정책에도 점점 더 힘이 실렸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사업가와 관광객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경제가 살아나고 재투자도 활발해졌다.

"장기실업과 범죄로 그늘진 도시로 인식되었던 뉴욕은 'I♥NY' 캠페인을 통해 시민, 관광객, 투자자에게 살기 좋고, 관광하기 좋고, 비즈니스하기 좋은 도시라는 인식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낸 뉴욕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23~24쪽)

'아이 러브 뉴욕'은 도시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2001년 9.11테러로 많은 뉴욕 시민이 목숨을 잃고 도시가 깊은 슬픔에 잠겼을 때, 처음 로고를 디자인했던 밀턴 글레이저는 다시 'I♥NY More Than Ever(그 어느 때보다 더 뉴욕을 사랑한다)'라는 포스터를 만들었다.
 
 밀턴 글레이저가 디자인한 'I♥NY More Than Ever(그 어느 때보다 더 뉴욕을 사랑한다)' 포스터
ⓒ 밀턴 글레이저
 
빨간색 하트 왼쪽에 검게 그을린 자국을 새겨 넣은 이 포스터는 뉴욕 시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다시 도시를 일으켜 세울 용기를 북돋웠다. '아이 러브 뉴욕'엔 밖으로만 향하는 듯한 우리나라 도시 브랜드엔 없는 그 어떤 힘이 있다.

"이것이 뉴욕을 미국의 정신적인 수도, 세계도시로 인식시켜준 힘이었다. 물론 뉴욕의 도시 이미지가 'I♥NY'이라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도시의 정책이 도시의 정체성에 맞게 추진되고, 또 그 실체에 맞는 브랜딩 활동으로 이어졌기에 가능했다.... 뉴욕은 시민, 기업, 정부 등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노력과 도시를 소비하는 고객들의 충성도가 강하게 결합하여 일관되고 통일된 도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펼쳐나갈 수 있었다." (27~28쪽)

이렇듯 도시 (리)브랜딩은 그저 멋들어진 슬로건이나 상징물을 만들어내는 작업도 아니고, 몇몇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댄다고 해낼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도시를 이루고 또 찾는 여러 계층과 집단이 모여 꾸준히 소통하며 도시에 어울리는 비전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도시는 브랜드라는 새 얼굴을 가질 수 있다.

"도시 이름을 붙인 화려한 슬로건을 만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기에 앞서 도시의 비전을 설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사람들 사이의 공감대를 만들고,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해 도시의 비전에 맞는 브랜딩 활동을 펼쳐야 한다." (38쪽)

(리)브랜딩의 시작은 '도시의 정체성' 찾기

뉴욕 같은 대도시만이 멋진 도시 브랜드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각자의 취향과 개성,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브랜드가 주목을 받고 있는 만큼, 어느 도시든 그에 어울리는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책은 "도시 브랜딩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지역의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성공적인 도시 브랜딩이란 과연 무엇일까?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 도시를 바로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성공적인 도시 브랜딩을 위해서는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222쪽)

도시의 실체는 엄연히 존재하며, 실체를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실체를 바탕으로 '도시 정체성'을 만들고 소통하는 방식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도시를 찾는 이들이 떠올리게 될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 세상 어디에도 똑같은 도시가 없는 만큼 그 도시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냄으로써 차별적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또 언제부턴가 자신이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과 가치에 맞는 제품을 구매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즉 브랜드로 나를 표현하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치 지향적 로컬 브랜드가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도 놓쳐선 안 된다고 말한다. "취향과 경험이 소비시장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가치 있는 철학과 흥미로운 스토리로 무장한 로컬 브랜드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컬만의 개성과 가치관이 담긴 로컬 브랜드가 차별화된 매력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지역을 대표하는 콘텐츠가 되고 나아가 도시를 상징하는 대표 브랜드가 만들어질 수 있고, 나아가 이런 로컬 기반 브랜드가 글로벌로 나아갈 때 도시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우리 삶의 질이 나아질수록 브랜드로서의 로컬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로컬에서 정체성 찾기는 '나를 잘 들여다보기'에서 출발한다. 브랜딩이 잘된 다른 도시를 벤치마킹한다고 해서 그 도시의 정체성이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이 정체성 찾기가 도시 리브랜딩의 시작이다. 죽은 도시에 숨을 불어넣고 도시와 국가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든든한 초석이 된다." (227쪽)

책은 "모든 도시에 적용할 수 있는 브랜딩 공식은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도시가 가진 사회·문화적 특징이 모두 다르고 구성원도 복합적인 데다 공적인 요소들도 얽혀있어서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점으로 "어느 도시에서나 도시 브랜딩은 완결될 수 없는 목표라는 점"을 꼽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브랜딩은 절차와 과정에 의미를 두고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I♥NY'이란 슬로건과 로고타이프 디자인은 50년 가까운 세월 단 한 번도 바뀐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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