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허리가 없어졌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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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한 기자]
아내가 네 아이를 낳고 몸이 토실토실해졌다. 둘째를 낳고 1년 간 뺀 아내의 살은 연년생으로 두 아들을 낳으면서 청출어람을 거쳐 일취월장했다. 넷째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이유다.
▲ 아내를 향한 안타까운 당시의 마음을 표현한 시화 |
ⓒ 남희한 |
입이 짧았던 아내의 입은 나를 따라 길어져 있었고 아이들이 소화시키지 못한 남은 음식마저 소화시키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아내는 해가 갈수록 최고치의 몸무게를 찍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아내는 집안에 운동기구를 들이기 시작했다. 요가매트와 운동복을 시작으로 스텝퍼, 아령, 밴드. 실내 자전거와 러닝머신까지 갖춘 집은 짐(Gym)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나중에 짐(짝)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진 않았지만, 내가 사용하던 덤벨과 문틀 철봉 그리고 철봉에 달아둔 링까지 합세하니 그야말로 집과 짐이 어우러진 홈짐의 면모를 갖췄다.
▲ 나름 홈짐 딱히 없는 것 없는 홈짐 덕분에 꾸준히 운동하고 있다. |
ⓒ 남희한 |
아무튼 가장 큰 변화는 아내의 몸매였다. 살이 좀 올랐다고 해도 그리 통통해 보이지 않았던 아내에게서 대놓고 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설핏 뜨고 봤을 때, 한 때 어느 잡지에서 이효리 따라잡기 화보까지 촬영한 아내의 옛 몸매가 얼핏 보인 듯도 했다. 정말 놀라운 의지의 여인이다.
당사자는 몸매가 가장 큰 관심사겠지만 조금씩 활기가 돋고 건강미가 가미되는 모습에 내가 다 뿌듯했다. 그래, 아내를 한 번 춤추게 해보자. 나는 칭찬의 수준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려 지나가는 불량배 흉내까지 내면서 아내에게 추파를 던졌다.
"오~ 아가씨! 허리가 없어졌네?"
너무 불량했던 탓일까? 아내가 고개를 돌리다 말고 눈동자만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친 채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어이없다는 듯 터트리는 웃음에 순간 긴장했다.
"하! 뭐? 허리가 없어?"
"....어... 허리가 없어졌...."
"여보!"
"어... 어..."
"이건 허리가 생겼다고 하는 거야~"
"어????? 아...."
사용하는 표현이 달랐던 우리는 하마터면 제법 긴 골을 만들 뻔했다. 일반적인 말의 사용법을 몰라 생긴 오해. 다행히 아내는 나의 언어 능력을 알고 있었고, 부족한 나를 뜨거운 시선과 한숨 섞인 설명으로 채워주었다.
이렇듯 뜻하지 않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좋은 의도로 이야기한 것이 비아냥거림으로 비치는가 하면, 가볍게 던진 농담이 상대와 척을 지게 만들기도 한다. "한 번 더 그렇게 해~"라는 경고의 말에 두 살 아이가 티슈를 다시 신나게 뽑았던 것도 같은 경우다.
말은 어렵다. 같은 상황임에도 수없이 다른 표현이 가능하다. 대형 사고를 마주하고 참혹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망자가 없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다.
같은 의미인 줄은 알지만 귓전을 울리는 순간부터 거슬린다면 굳이 거슬리는 말을 할 필요는 없을 테다. 그래서 아내의 허리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생긴 게 맞다. 결코 "그게 어떻게 생긴 거냐? 없어진 거지!"라고 따지다가 져서 하는 말이 아니다. 원한다면 생각과는 다르게 이야기할 줄 아는 것. 그게 현명한 자의 선택이라 생각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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