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비싼 철도 요금이 말해주는 것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 JR홋카이도의 특급열차 |
ⓒ Widerstand |
일본 철도의 정시성도 우수합니다. 그간 수없이 철도를 탑승했지만, 간선 철도에서 5분 이상의 지연을 경험한 것은 딱 한 번뿐이었습니다. 촉박한 시간 안에 환승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걱정과 달리 환승할 열차를 놓친 적은 없었습니다. 철도의 영업 노선도 길고 다양합니다. 일본 철도의 총길이는 30,000km 이상입니다. 프랑스나 브라질의 철도보다도 긴 노선이죠.
▲ 신칸센이 지나는 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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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모토에서 가고시마까지 가는 신칸센 요금은 6,540엔입니다. 한화로 약 59,000원이죠. 이 구간의 거리는 170km 정도입니다.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죠. 비슷한 거리를 가는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KTX 요금은 23,700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신칸센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칸센이 설치된 구간에는, 원래 있던 보통열차 철도가 아예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는 같은 거리를 KTX로도 무궁화호로도 갈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신칸센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버스 요금도 비슷하게 비쌉니다.
물론 비싼 요금과 기존 구간의 폐지는 철도 회사의 이익을 위한 조치입니다. 고속철도를 운영하는 데에도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수요가 적어진 기존 노선을 운영하는 데에도 또 돈이 들어가니까요.
▲ JR큐슈의 신형객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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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1982년부터 철도 구조 개혁을 본격적으로 검토했습니다. 1986년 7월 선거에서 자민당은 안정적인 다수를 확보했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철도 민영화를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1987년부터 본격적인 철도 민영화 작업이 시작됩니다. 기존의 일본국유철도(JNR)는 7개 회사로 나뉘었습니다. 홋카이도, 동일본, 도카이, 서일본, 시코쿠, 규슈의 철도가 지역별로 나뉘었고, 화물 수송을 담당하는 JR 화물은 또 따로 분리됐습니다.
▲ JR도카이 로고와 상징인 주황색을 쓴 히가시시즈오카 역명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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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분사한 7개 회사 가운데 동일본, 도카이, 서일본, 규슈는 흑자 전환을 완료했습니다. 민간 기업이 된 각 회사는 철도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철도역과 연계된 외식업이나 유통업 등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결국 막대한 적자를 극복하기에 이른 것이죠. 국가로서는 재정적 부담을 던 것입니다.
▲ 사철인 시마바라 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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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밀도가 높고, 신칸센을 비롯해 이익률이 높은 철도를 가진 지역의 철도회사는 금세 적자를 극복했습니다. 흑자를 낼 수 있는 회사였으니, 주식도 빨리 매각되었죠. 도쿄와 오사카를 잇는 도카이도 신칸센을 가진 JR도카이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인구 밀도가 적고, 신칸센이 없던 회사는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JR규슈는 한동안 적자 경영을 이어갔습니다. JR시코쿠와 JR홋카이도, JR화물은 지금까지도 적자 경영입니다. 당연히 주식도 매각되지 못하고 아직도 100% 정부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익이 나는 구간은 민간에 매각되고, 손해가 되는 구간만 정부가 떠안는 꼴이 되었죠. JR규슈도 이제는 완전 민영화되었지만, 그 사이 정부는 3천억 엔 넘는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당연히 민영화된 JR규슈는 이 돈을 갚지 않았습니다. 채무가 아닌 지원이었으니까요. 3천억 엔을 그대로 민간 자본에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른 회사의 부채도 대부분 국가가 떠맡았습니다. 정부는 이를 토지와 주식 매각 등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버블 경제가 붕괴하며 계획은 수포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는 담배에 특별소비세를 매겨 이 부채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 JR홋카이도의 원맨카. 승무원 한 명만 탑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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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강경파 노동조합이었던 철도노조를 탄압하기 위함이었죠.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도 2005년 NHK 인터뷰에서 이를 인정했습니다. 철도 민영화 이후 1천 명 넘는 노동조합 조합원이 해고됐습니다.
▲ 에키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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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긴 기차 이동을 할 때면 에키벤을 자주 찾았습니다. 환승을 위해 들린 작은 역에서, 그곳에서만 파는 에키벤을 발견하는 여행의 재미를 즐기기도 했죠.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재미를 누릴 수 있을까요?
운임은 오르고, 작은 역은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과오를 어디서부터 수정할 수 있을지, 아직 저는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에키벤을 먹으며 열차를 보내면서도, 생각은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여행기 참고문헌 : 모창환, <일본철도민영화 정책평가>, 한국정책학회보 15권 4호, 2006. 이용상, <영국과 일본의 철도민영화 비교 연구>, 한국철도학회논문집 11권 1호, 2008.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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