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성 유산 원인 최대 50%를 차지하는 면역 이상 치료법은? [난임에 대해 쉽고 유익한 정보를 알려드릴 산부인과 전문의, 이유정 입니다.]
A 씨는 습관성 유산을 경험한 난임 환자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유산은 모두 계류유산이었고 세 번째는 화학적 유산이었다. 본원에 방문해서는 정확한 원인 분석을 위해 가장 먼저 습관성 유산 검사를 실시하였다. 염색체 검사를 포함하여 자궁난관 촬영 및 자궁 내시경, 착상기내막 검사, 갑상선기능검사, 항인지질항체 검사, 사이토카인 Th1/Th2 비율검사와 NK 세포(자연사 세포) 검사를 실시하였다. 다른 수치는 이상이 없었지만, NK 세포 수치가 높은 편이었다. 면역 이상으로 인해 임신 당시 A 씨의 면역체계가 태아를 외부 물질로 인식해 공격하였고, 그 결과 태아의 성장이 억제되고 혈전(혈관 속에서 피가 굳어진 덩어리)이 발생한 것이다. 다른 수치는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혈전치료와 면역 치료를 병행했다. 과도한 에스트로겐 상승을 억제하면서 난소를 자극하였고 NK 세포 활성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맥 내 면역글로불린 제제를 투여하였다. 그 결과 무사히 임신에 성공하여 소중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다.
습관성 유산이란 임신 20주 이전에 3회 이상 자연 유산이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전체 임신의 0.3%가 습관성 유산에 해당하며, 유산 경험 횟수가 늘어날수록 유산 확률이 높아진다. 습관성 유산의 원인으로는 유전적 요인, 해부학적 요인, 내분비적 요인, 감염 요인, 면역학적 요인, 기타 요인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면역학적 요인이 20~5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면역학적 요인은 면역 기전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우리 신체는 외부로부터 세균이나 이물질이 침입하면 면역세포가 활성화되어 이를 공격해서 죽인다. 이러한 과정은 착상과 초기 임신에도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면역 기전에 이상이 생기면 임신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면역 이상은 크게 ‘자가면역성 요인’과 ‘동종면역성 요인’으로 나뉜다. 자가면역성 요인은 주로 항인지질항체 증후군 등의 자가면역질환으로 인해 혈액 내에 자가항체가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자가항체의 증가로 인해 혈관 이상이 초래되면 혈관수축, 혈소판 응집, 혈관 내 혈전 등이 형성되어 태아에게 가는 혈액 공급이 차단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유산이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동종 면역성 요인은 부부 사이에 조직적합성 항원(Human Leukocyte Antigen)이 유사한 것을 말한다. 서로 면역학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태아에 대한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차단항체(Blocking Antibody)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특히 면역 이상은 NK 세포와 연관이 깊다. NK 세포는 면역 체계의 중심을 이루는 세포로서 우리 몸에 존재하면서 체내에 침입한 여러 세균을 공격한다. 하지만 NK 세포의 수가 지나치게 많거나, 세포독성능력이 과해지는 경우 임신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모체에 유입된 배아를 외부에서 침입한 균이나 이물질로 오인하고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습관성 유산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습관성 유산 검사를 할 때 반드시 NK 세포 검사를 통해 NK 세포 수치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NK 세포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경우 정맥 내 면역글로불린 요법을 실시하는 것이 좋다. 면역글로불린 요법을 통해 전신의 NK 세포 활성을 저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특히 착상 부위의 NK 세포 활성을 억제하여 유산을 방지할 수 있다. 한 임상연구에 따르면, 2회 이상 연속적으로 면역 이상 때문에 유산을 경험한 환자에게 임신 4~6주부터 30주까지 3주 간격으로 면역글로불린 제제를 1kg당 0.4g씩 투여한 결과 출생률이 84.7%까지 상승했다(Am J Reprod Immunol. 2016). 그뿐만 아니라 투약 용법을 소폭 변경하였더니 출산율은 96.3%까지 올랐다. 반면에 면역글로불린 제제를 투여하지 않은 그룹의 출산율은 30.6%에 그쳤다.
물론 면역글로불린 주사를 통해 바이러스 등의 감염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또한 면역 이상은 복합적인 기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프로토콜을 유연하게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면역이상으로 인해 습관성 유산을 경험한 난임 환자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씀을 감히 드리고 싶다. 암흑에서 희망의 빛을 찾아가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마냥 불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난임 전문의로서 끝까지 함께 희망의 문을 두드릴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기고자: 서울아이비에프여성의원 이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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