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 부정하며 진영외교 가속화 北…美 "북·러협력 지역안보 영향 우려"

정영교 2024. 1. 2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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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 캄팔라에서 열리는 제19차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에 참가하는 북한 정부 특사인 김선경 외무성 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지난 13일 평양을 출발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국가'로 규정하며 대남정책을 더 강경한 대적투쟁으로 전환할 것을 주문한 가운데 북한이 '진영외교'에 골몰하는 분위기다. 최선희 외무상의 방러에 이어 김선경 외무성 부상을 단장으로 하는 북한 대표단이 다자회의에 참석해 중국, 쿠바 등 대표와 잇따라 만났다. 미·중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열린 국제정세의 틈새를 파고들어 반(反)서방 진영 국가들과의 국제적 연대를 확대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제·반미 연대 강화 잰걸음


아프리카 우간다 캄팔라에서 열린 제3차 개발도상국 정상회의(21~22일)에 참석한 김선경 부상은 "서방 중심의 현 국제경제 질서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러시아를 방문한 최선희 북한 외무상(왼쪽)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16일 회담장에 입장하는 모습. 타스, 연합뉴스

24일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부상은 회의 기간 진행된 각국 대표단 연설에서 "특정 국가들의 이익이 우선시되고 그들의 강권과 전횡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불공정한 현 국제경제 질서를 그대로 두고서는 언제 가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며 "발전도상 나라(개발도상국)들은 특정한 가치관과 경제방식을 유일한 처방으로 강요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배격해야 하며 주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는 일방적이며 강압적인 경제 조치들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 금융망은 물론 공급망에서도 고립돼 있어 미국의 국제경제 관련 정책에 직접적 영향을 받지도 않으면서 이제 외교·안보 뿐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까지 반제(反帝)·반미 기조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은 지난 15일부터 20일까지 우간다 캄팔라에서 열린 제19차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에도 대표단을 파견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 김정은은 앞서 지난 15일 최고인민회의(한국의 국회격) 시정연설에서 "국제적 규모에서의 반제 공동행동, 공동투쟁을 과감히 전개하고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모든 나라, 민족들과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단결하고 협력하면서 나라의 대외관계 영역을 보다 확대하기 위한 사업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지시를 이행이라도 하듯 김 부상은 두 차례의 정상회의에서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 테오도로 오비앙 음바소고 응게마 적도기니 대통령, 세브데트 일마즈 튀르키예 부대통령, 류궈중(劉國中) 중국 부총리, 살바도르 안토니오 발데스 메사 쿠바 국가평의회 부의장 등과 별도로 만나는 광폭 행보를 보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정체성 없는 비동맹 외교…한계는 명확


다만 이런 진영외교가 지니는 한계 또한 명확하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 시기부터 '반제·자주'를 내세우면서 비동맹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것을 두고 '전통적인 우호관계'라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실상은 큰 공통점이 없는 비즈니스 관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비동맹외교 자체가 뚜렷한 정치·이념적 정체성을 지닌 게 아니라 미·소로 양극화된 냉전 시기 어느 진영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주성을 확보하려는 국가들의 중립 노선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양 진영으로부터 최대한의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비동맹 기조를 택하는 국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김정은 입장에선 북·중·러라는 신냉전 구도 형성을 통해 전략적 이점을 누리는 게 최선의 시나리오지만, 중국은 러·북과의 관계를 각기 양자적으로 관리하는 것과는 별개로 북·중·러 연합에는 거리를 두려는 분위기다.

북·러 밀착에 대한 공개적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의 싱크탱크인 중국사회과학원 정치연구소 소장을 지낸 팡닝(房寧) 쓰촨대 석좌교수는 최근 인민대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올해 중국은 중국의 문 앞에서 문제를 일으키려는 러시아의 잠재적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열고 마주앉아 웃고 있다. 연합뉴스

베이징의 타이허연구소(太和智庫)도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올해 러시아와 북한 간 더 가시적인 협력이 중국에 이중 압박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러시아 역시 북한을 상대로 당장의 이익을 취할 뿐이다. 김정은이 고대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이 3월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크렘린궁의 발표에서도 한손엔 출구전략을 쥔 채로 북한의 무기를 활용하는 러시아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美 "北 동향 긴밀 주시"


다만 연쇄 도발에도 사실상 무관심했던 미국의 '관심 끌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3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김정은의 대남 위협 발언과 맞물린 최근 북한의 군사 동향을 매우 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북·러 간 협력에 대해 커비 조정관은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북·러 관계의 심화"라며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이 관계에서 푸틴이 얻는 것뿐 아니라 김정은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시로 최근 철거된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의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북한 당국이 김정은의 지시로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인 NK뉴스가 이날 위성사진을 분석해 보도했다. 상업위성 서비스 업체인 '플래닛랩스'가 지난 19일 촬영한 위성사진에서 포착됐던 기념탑이 23일 촬영한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아 그 사이 탑이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NK뉴스의 분석이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은 '자주, 통일, 민족대단결'이란 통일 관련 선대의 유훈을 헌법에서 삭제하라는 지난 15일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 대한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NK뉴스는 "북한 내부와 한국 모두에게 김정은이 남측과의 평화통일 정책을 진지하게 폐기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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