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아닌 한 사람을 사랑했다 생각…최수영 작품 몰입 인상적"[On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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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문을 쾅 닫은 것은 워털루나 스당의 대포보다 더 중요하다."
'와이프'에서 주인공 노라를 연기하는 배우 수잔나를 맡은 박지아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와이프'는 표면적으로는 성 소수자와 여성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 사랑, 삶, 그리고 이를 관심 갖고 지켜보는 문제를 다층적으로 다룬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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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가슴에 '아름다운 울림' 선사하고파
몰입하는 최수영·끈질긴 김소진 통해 많이 배워
센 역할로 데뷔, 코미디 장르 도전해보고 싶어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문을 쾅 닫은 것은 워털루나 스당의 대포보다 더 중요하다.”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연극 역사상 가장 논쟁적 결말로 손꼽히는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노라가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집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의 문소리를 전장의 무기에 비유했다. 작품이 던진 메시지가 그만큼 강렬해서였을까, 지금도 끊임없이 변주되며 관객을 만나는 노라의 다채로운 모습이 4세대에 걸쳐 담긴 연극 ‘와이프’는 그 정점에 선 작품 중 하나다.
입센의 작품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는 60년 동안 이어져 온, 그리고 미래의 결혼과 성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와이프’에서 주인공 노라를 연기하는 배우 수잔나를 맡은 박지아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와이프’는 표면적으로는 성 소수자와 여성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 사랑, 삶, 그리고 이를 관심 갖고 지켜보는 문제를 다층적으로 다룬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개막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아침마다 대사를 되뇌고, 작품을 공부하며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는 그를 공연이 진행 중인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직접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2019년 영국 초연 때도 화제였고, 2020년 한국 초연 때도 주목을 받은 작품인데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 소감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2020년 초연 당시 공연을 보고 정말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초연부터 이번 재연까지 무대에 선 오용 배우에게 그때 직접 연락해 작품에 대해 물어봤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다 지난해 우연한 계기로 수잔나 역 제안이 와서 작품을 준비하는데, 대사 이상으로 숙지해야 할 내용이 방대해 편안하게 봤던 대본보다 난감하고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관심 갖고 있던 분야가 아니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파악해야 할지도 막막했고, 그런데 초연에서 느낀 좋은 감정이 선명했기 때문에 선택에 주저함은 없었다.
-할리우드에서는 자신의 성 정체성과 다른 연기를 하는 데 배우들이 보이콧 선언을 할 만큼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이번 작품에서 동성애 연기를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 내가 레즈비언이다, 동성애자다 라고 생각하니까 첫 연습 때 다가가지질 않더라.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구분 두지 않는 사람이면 어떨까' 생각하고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 사람에 대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차츰 지나니까 이성, 동성 간 사랑 문제라기보다 내가 만나고 싶었던 한 사람, 다가가고 싶었던 사람이 여자일 뿐으로 느껴졌고 그렇게 캐릭터 접근을 시작해나가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관객의 가슴에, 삶에 '아름다운 울림'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번 작품은 더블 캐스팅으로 연극임에도 N차 관람 관객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떤지.
▲데이지 역의 최수영 배우는 이렇게 적응을 잘할 수 있나, 쉽지 않을 텐데 빨리 무대 연기에 적응해 놀랐고 또 어려운 선배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와 질문하고 작품에 몰입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같은 역의 김려은 배우는 말수는 적지만 끊임없이 또 무던히 노력하는 모습에 정신없이 함께 연습하다 보면 끝날 때 어떻게 헤어지나 서로 걱정할 정도고, 로버트 역의 이승주 배우는 강한 집중력만큼이나 예민함이 느껴져서 함께 호흡 맞출 땐 나도 긴장하면서 서로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다. 송재림 배우는 분장실에서도 펜을 물고 발음 연습하면서 역할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는 모습이 한결같고, 또 피터 역의 정웅인 선배는 늘 부르면 달려올 준비가 된 텐션으로 무대에서 버텨주시고, 오용 배우나 마조리 역의 신혜옥 배우는 워낙 절친한 사이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고 에릭 역의 홍성원 배우는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지 연습 중에 이미 대사를 모두 외워 와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었고. 무엇보다 함께 수잔나를 맡은 김소진 배우는 아주 끈질기다. 요즘엔 거의 매일 통화하는 것 같다. 서로 공연에 대해 템포는 어땠고, 호흡은 어땠는지. 힘든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결국에는 만나는 배우와의 교감, 내가 잘 가꿔서 만나지 않으면, 상대 배우가 뭘 줘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배우와 교감하려면 내가,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고 서 있어야 하나. 지금, 이 순간에도 이것만 고민하고 있다.
-수잔나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부분은 무엇인가.
▲한 시대, 실제 존재했고 존재할, 미래는 장담 못 하겠지만(웃음)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해야 하기에 책임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성 소수자들이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는 분들이 있던 시대였고,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있는 만큼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세심하고 정교하게 표현돼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이 읽혀서였을까. 연습 단계에서 연출님과 제작 쪽을 통해 관련 단체에 계신 분들이 직접 방문해서 대본을 보고 정보도 주시고, 연습 과정을 지켜보고 상상하지 못했던, 겪어보지 못했던, 디테일한 선까지도 다 체크해주셔서 좀 놀랐었다. 더 놀라웠던 건 ‘그런 척’ 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라고 느꼈고, 그런 걸 다룬 연극 대본이 아니라 이거는 ‘우리 이야기’라고 공감해준 부분이었다. 그 지점에서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전작인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의 강렬한 연기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어려운 캐릭터를 소화하는 등 현장에서는 ‘연기파 배우’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데.
▲제가 영화 ‘해안선’으로 데뷔를 했는데 첫 시작을 어려운 걸 했다 보니 이어져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전작을 보고 어떤 비슷한 이미지에 대한 기대치가 있는 캐스팅 제안이 들어왔을 땐 의도적으로 피하느라 공백기가 생기기도 했는데, 시간을 갖고 고민해보니 내가 이 시간을 잘 보내면 결국 내 시간이 올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었다. ‘연기파 배우’라는 호칭은 과분한 칭찬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목표나 계획은.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다. B급 영화를 정말 좋아하기도 하고. 내가 사실 꽤 재미있는 배우다.(웃음) 그런데 워낙 센 역할만 맡다 보니 고려를 안 하시는 것 같은데, 금광을 캐는 마음으로 도전해보고자 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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