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학병원 앞 약국에 우선 넣어라”… JW중외제약, ‘엔커버’ 차별 공급 정황
문제는 '어디에 사느냐', '대형병원에 다니느냐'에 따라 엔커버 구하기 난도가 달라진단 것이다. 헬스조선 취재에 따르면, 엔커버 국내 수입·유통을 전담하는 JW중외제약은 주요 대학병원 앞 일부 대형약국에 엔커버를 우선 공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수도권이나 주요 광역시가 아닌 지역에 살거나 서울이라도 '빅5'가 아닌 병원에 다니면 엔커버를 구할 수 없는 거다. 의약계에선 제약사까지 의료불균형을 조성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까지 나온다.
◇병원 앞 대형약국 우선 공급 지시, '엔커버' 찾아 방황하는 환자들
헬스조선의 취재를 종합해보면, 현재 엔커버는 소위 '빅5'라 불리는 주요 병원 앞이나 대학병원 앞에 있는 약국이 아니면 구하기 어렵다. 엔커버를 구하지 못해 난감한 환자와 그 가족들의 애타는 사정은 전국 곳곳에서 나오지만, 동네 약국엔 엔커버가 없으니 대학병원 앞 약국을 가야 하며, 대학병원 앞 약국 중에서도 큰 약국을 가야 한다는 정보가 공유된다.
경기도와 인접한 서울에서 개인 의원을 운영 중인 내과 전문의 A씨는 "엔커버는 기존 제품들보다 영양 구성이 좋고 당 수치가 낮은데다 엘튜브(L-tube)나 위루, 장루 등의 환자는 보험급여로 처방을 받을 수 있다보니, 가격도 저렴해 한국정맥경장영양학회 차원에서도 권하는 영양제다"며, "환자들도 복용 후 건강상태가 훨씬 나아짐을 느끼니 수요가 늘어났는데 특정 의료기관 주변 대형약국에서만 제품을 구입할 수 있어 환자들이 큰 불편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엔커버 국내 도입 초기에는 중외제약이 동네 병원에도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고, 처방하는 의료기관 근처 약국에도 물량을 충분히 공급해 이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환자들이 엔커버를 약국에서 살 수 없어 불편하고 해 사정을 알아보니, 엔커버가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수요가 급증하자 제약사가 ‘잘 보여야 하는’ 대학병원 주변 약국에 약을 엔커버를 우선 공급하고, 상대적으로 처방량이 적은 의료기관 주변 약국엔 약 공급을 당분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을 알게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엔커버는 기존 경장영양제 시장 1위 제품이었던 영진약품의 ‘하모닐란’을 빠르게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분기엔 82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하모닐란보다 더 높은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A씨는 "경구 영양섭취가 어려운 환자에게 엔커버와 같은 경장영양제가 꼭 필요하기에 처방을 안할 수도 없는데 가까운 약국에 약이 없다고 하니 의사 입장에선 처방할 때마다 고민하게 된다"며 "환자에게 약을 알아서 구하러 다니라고 부담을 주는 것 같아 굉장히 미안하고 안타깝다"고 밝혔다.
환자들은 엔커버를 구입하기 위해 약국을 찾아다니는 일도 힘들지만, 그다음도 문제라고 했다. 엔커버는 액체류이다보니 기본적으로 무게가 나가는 편이기 때문이다.(엔커버 1개 200mL~400mL) 엔커버 한 상자(24개)는 대략 10일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 한 달치만 처방받아도 세 상자 이상의 약을 들고 장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A씨 내과에서 엔커버를 처방받는 한 환자는 "엔커버가 있다는 대학병원 근처 약국을 수소문하고 편도로만 수십분 이상 이동한 다음, 약을 짊어지고 그 길을 되돌아오는 일을 주기적으로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엔커버를 드셔야 하는 부모님은 거동이 어려워 결국 자식이나 다른 가족이 이 일을 해야 하는데, 결코 쉽진 않다"며 "환자를 잘 아는 의사와 약국이 가까이에 있는데 엔커버 때문에 멀리에 있는 병원, 약국을 일부러 찾아가야 하나 고민도 된다"고 말했다.
약사 B씨는 "요양병원 근처에서 약국을 운영하다보니 엔커버를 찾는 환자가 많다"며 "하지만 주요 대학병원이나 대형 약국 위주로 엔커버가 공급되다보니 환자가 오면 되돌려보내기 일쑤다"고 했다. B씨는 "약국에 약이 없으니 다른 약국으로 가라고 하면 어디로 가라는 것이냐, 이전엔 있던 약이 왜 지금은 없느냐고 화를 내는 환자들이 많은데 심정을 이해한다"며 "때문에 엔커버를 구하려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힘든 상황이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이 멀리 있는 지역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C씨는 "중외제약이 대형병원 주변 약국 위주로 엔커버를 공급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는 소문이 그저 헛소문인 줄 알았었다"며 "그런데 엔커버를 구하려 백방으로 애쓰다보니 그건 아니란 걸 체감한다"고 했다.
엔커버를 대신할 약은 없을까? 국내에 유통되는 또다른 경장영양제로는 영진약품의 '하모닐란'이 유일한데, 하모닐란도 완전히 엔커버를 대체할 수는 없다.
정내과 정경헌 원장(내과전문의)은 "하모닐란은 상대적으로 당 수치가 높아 엔커버만 사용할 수 있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며, "엔커버가 필요한 정도의 환자들은 꼼꼼한 영양관리가 필요하고, 고령이라 당 수치에 예민해 하모닐란이 대안이 되기 어려운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했다.
◇중외 "대형병원 중심 유통일 뿐"… 유통업계 "조절할 물량 자체가 없어"
중외제약은 엔커버 불균형 공급 지시 의혹을 부인했다. 경장영양제가 필요한 환자가 많은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건 사실이나, 공급처를 지정해 차별공급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외제약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오츠카제약에서 수입하는 물량이 한정적이라 수요를 공급이 못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다"며, "원외(약국)에 나가는 물량은 종합도매를 통한 유통으로 시스템적으로 회사가 특정 지역, 병원을 지정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경장영양제가 필요한 환자가 많은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상황일 뿐이다"고 했다.
의약품 유통 업계는 엔커버 유통 불균형의 원인이 유통업계의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유통업계 주도 엔커버 차별공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애초에 중외제약이 엔커버 자체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아, 유통업체가 '불균형 공급'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의약품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업계에서 엔커버를 불균형 공급을 주도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제약사 자체 공급계획에 따라 도매상에도 업체별 할당량이 다른 상황이다"며 "우선순위를 조절할 물량 자체가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수량부족으로 인해 약국의 엔커버 주문을 제대로 받지 못한지 한참 됐고, 간헐적으로 공급되는 건 주문 순서대로 공급하고 있다"며 "1월 중엔 공급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했다는데, 1월 말인 현재 현장에선 전혀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 중이다"고 했다.
◇물량의 한계? 의료는 공평해야
의약계는 최근의 엔커버 품귀현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지 주요 대학병원과 멀리 산다는 이유로 필요한 약조차 구할 수 없는 불공평한 상황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왕진 등을 활발하게 해 엔커버를 자주 처방하는 정경헌 원장은 "우리나라가 아무리 의료접근성이 좋다해도 정기적으로, 자주 대학병원이나 대형약국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며,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 근처 대형약국에만 우선 약을 공급하라고 하는 건 특정 사람들만 혜택을 볼 수 있는 상황을 조장하는 일이다"고 밝혔다. 정경헌 원장은 "생명, 건강과 직결된 의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며 "정의롭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어선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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