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는 게 아니라 못해요”…중처법 시행 코앞, 중소건설사 ‘발 동동’
정부도 2년 추가 유예 호소…여야 논의 ‘제자리걸음’
“충분한 준비기간 필요…처벌만 강조, 문 닫으라는 것”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시행을 앞두고 중소건설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이다.
새해 들어 건설사들이 ‘중대재해 제로’를 목표로 안전경영을 전면에 내걸고 있지만, 실질적인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영세업체들은 자칫 한 번의 사고로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4일 정부는 중대재해법 전면 시행을 사흘 앞두고 국회에 관련 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년간 현장의 50인 미만 사업은 열악한 인력과 예산에도 법 적용에 대비해 왔지만, 코로나19와 전반적 경기 위축 등으로 여전히 준비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지금 영세 자영업자인 동네 개인 사업주나 소액 건설현장에서 대기업도 어려워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안전 인력이나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가 유예가 이뤄지면 민관은 합심해 이 기간 50인 미만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장 내에서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해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50인 이상(공사금액 50억원 이상) 사업장에 우선 적용되고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27일부터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으로 전면 확대된다.
중대재해법 개정안 지난해 9월 발의된 이후 5개월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제대로 된 논의도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요구에 따라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준비가 소홀했던 점을 사과하고, 2년 유예기간 실시할 구체적인 재해예방 계획 및 재정 지원안 등을 내놓기로 했다. 경제계도 유예기간 2년 연장 후에는 반드시 시행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산업안전보건청 연내 설치, 산업재해예방 관련 예산 최대 2조원으로 확대하는 등의 조건을 추가로 제시하면서 논의는 또다시 답보상태다.
업계에선 충분한 대비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전면 시행을 늦춰달라고 호소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전문건설사 781곳 가운데 중대재해법 대응을 위한 안전관리체계 구축, 인력·예산 편성 등 조치를 취한 곳은 3.6%에 불과하다.
준비가 미흡한 이유로는 ‘방대한 안전보건 의무와 그 내용의 모호함’이 67.2%로 가장 많았고, 비용 부담(24.4%), 전문인력 부족(8.4%) 등 순으로 조사됐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이미 법을 적용받는 대형건설사도 혼란스러워하는데 그보다 여력이 없는 소규모 업체들은 오죽하겠냐”며 “중소기업들은 안전 투자 여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모든 비용을 안전에만 투입하면 정작 필요한 다른 부분을 놓쳐 다른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중소건설사 관계자는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일어날 사고는 일어난다.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이라며 “안전 시스템을 구축할 만한 역량도 부족하고 관련 지원도 전무한데 처벌만이 능사라는 건 문을 닫으라는 소리와 마찬가지”라고 하소연했다.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 회장은 “중소기업들이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기업 규모별·산업별 특성 등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법을 적용하면 한계가 여실히 드러날 수 있다. 현장의 안전과 보건 확보는 어디까지나 예방책이지, 직접적 사고 발생의 원인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법 전면 시행을 미루기 위해선 이날 법사위를 거쳐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하는 것이 마지막 기회다. 하지만 여야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관련 법 개정안은 법사위 상정조차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법안 처리가 무산되면 27일부터는 50인 미만 중소규모 사업장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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