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st] 김은중, 프로에서는 '신화가 아닌 장기적 성장'을 꿈꾼다
[풋볼리스트=수원] 김희준 기자= 김은중은 K리그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다.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일본 베갈타센다이와 중국 창사진더를 1년씩 거친 걸 제외하면 줄곧 한국에 있었다. FC서울에서 리그컵을, 포항스틸러스에서 K리그1과 FA컵을, 제주유나이티드에서 K리그1 MVP를 수상했다.
마지막에 친정팀으로 돌아간 김은중은 대전을 K리그2 우승으로 이끌며 K리그1 승격을 선사했고,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다. 돌고 돌아 친정팀과 약속을 지킨 뒤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리그의 전설이 됐다.
김은중은 지도자의 길을 선택한 뒤 돌연 벨기에행을 택했다. 국내에서도 충분히 지도자 경력을 쌓을 만큼 훌륭한 선수 생활을 보냈음에도 새로운 환경에 몸을 내맡겼다. 이후 연령별 대표팀에서도 오랜 기간 활약하고 수원FC 감독으로 약 10년 만에 K리그에 돌아왔다. 김 감독은 지난 9일 '풋볼리스트'를 만나 자신의 지도자 생활을 훑고 수원FC에서 목표를 이야기했다.
▲ "은퇴 후에 공부하는 기간을 갖고 싶었다" 벨기에에서 배운 소통의 기술
김 감독은 선수 생활을 마치자마자 벨기에로 떠났다.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에 있던 벨기에 축구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시 벨기에는 1,115만 명으로 다른 축구 강국에 비해 비교적 적은 인구를 보유했음에도 로멜루 루카쿠, 에당 아자르, 케빈 더브라위너, 마루앙 펠라이니, 드리스 메르턴스, 얀 베르통언, 토비 알더베이럴트, 티보 쿠르투아 등 전 포지션에 걸쳐 세계적 선수들이 즐비했다.
"은퇴 후에 공부하는 기간을 갖고 싶었다. 당시 FIFA 랭킹 1위는 벨기에였다. 벨기에는 작은 나라고, 프로리그가 유럽 5대 리그 수준도 아닌데 어떻게 1위를 유지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때마침 한국 기업 중 하나가 AFC투비즈를 인수했다. 무작정 그 회사를 찾아가서 여러 얘기를 나눴고,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져서 벨기에로 가게 됐다."
김 감독은 벨기에에서 3년 가까이 머물렀다. 황진성, 박찬길, 남승우 등 한국 선수들을 비롯해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투비즈에서 몇몇 감독을 거치고 벨기에 리그의 지도자들과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망주 육성을 위시한 벨기에 축구 철학을 체득했다.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말한 김 감독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도자와 선수들의 소통법이었다. 벨기에 선수들이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감독, 코치와 터놓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축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건 김 감독 지도자 인생이 끝날 때까지 갖고 갈 귀중한 자산이 됐다.
"유럽 선수들은 때로는 선배를 대하듯, 때로는 형을 대하듯 자연스럽게 감독과 소통을 진짜 잘하더라. 요새는 많이 바뀌긴 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은 감독님 하면 선수들이 무서워했다. 자연스러운 소통을 하고 서로 고민도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유럽 생활에서 가장 좋은 경험이었다."
김 감독은 벨기에에서 쌓은 기억들을 연령별 대표팀에 녹여냈다. "지도자와 선수 관계보다는 선후배 관계로서 선수 시절 배웠던 부분들을 선수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진심이 있었다"며 U23 대표팀 코치로서, U20 대표팀 감독으로서 선수들과 친밀하게 호흡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 U20 월드컵 4강 신화
김 감독은 2017년 10월 U23 대표팀 코치로 부임해 4년간 U23 대표팀과 동고동락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거머쥐며 환호했고,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8강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연령별 대표팀 코치로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물음에 김 감독은 대회에서 추억을 이야기하는 대신 연령별 대표팀 선수 발탁에 대한 고충을 꺼내들었다.
"A대표팀은 나이와 상관없이 좋은 선수를 보인 선수를 선발할 수 있다. 하지만 연령별 대표는 그 연령대에서만 뽑아야 된다. 그게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다. 당장 우리가 선발을 하지 못하더라도 1~2년 후에는 더 성장할 선수들이 있는데, 현재 좋은 컨디션과 퍼포먼스를 보이는 선수들 가지고만 뽑아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
이러한 고민은 U20 대표팀 부임 이후 지금 뽑을 수 있는 선수들로 어떻게 최대치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이는 아시안컵과 월드컵에서 전혀 다른 전술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용기로 이어졌다.
김 감독은 아시안컵보다 월드컵에서 오히려 부담감이 적었다고 소회했다. 아시안컵은 당연히 결과를 내야 하는 대회인 반면 월드컵은 결과에 대한 기댓값이 상대적으로 적을 뿐더러 선수들에게 매 경기가 크나큰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보다는 선수들이 한 경기라도 더 하게 도와주는 데 집중했고, 이것이 4강 신화로 이어졌다.
"예선을 통과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조별리그 첫 경기는 연령별에서 최강팀인 프랑스였다. '저 팀을 과연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계속 분석하면서 저 팀의 약점과 이를 공략할 아이디어를 찾아 준비를 했다. 우리 선수들이 정말 내 뜻대로 잘 따라와줬고, 결과적으로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
김 감독은 U20 월드컵이 선수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뜻깊은 대회였다. "감독을 맡고 처음 큰 대회에 나서 팀을 이끌었다.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 준비한 대로 잘 실행이 된 게 좋은 경험이 됐고, 아쉬웠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회 끝나고 나서도 그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걸 배우고, 보완하고, 노력하고, 더 공부해야 한다는 걸 느끼고 많은 걸 얻었던 대회였다"고 돌아봤다.
김 감독은 지금도 U20 대표팀에 있던 선수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단순한 연락은 물론 선수들의 경기를 모니터링하면서 경기력 측면에서도 말을 건넨다. 김 감독에게 가장 큰 보람은 선수들이 대회 이후에도 국내외 소속팀에서 좋은 역할을 맡아 인정받는 것이다. 김 감독의 애정을 받은 선수들이 소속팀에서도 활약을 거듭한 탓에 U20 대표팀은 K리그 일정이 다 끝난 12월이 돼서야 함께 모여 밥을 먹을 수 있었다.
▲ 수원FC에서 첫 번째 목표는 "안정적인 중위권"
U20 대표팀 감독에서 내려온 김 감독은 잠시 한국프로축구연맹 기술연구그룹(TSG) 일원으로 있다가 지난해 12월 수원FC 부임을 확정지었다. K리그 현장으로는 약 10년 만에 돌아온 셈이었다.
연령별 대표팀 감독과 프로팀 감독은 엄연히 다르다. 연령 제한이 있는 팀과 없는 팀, 특정 기간만 함께하는 팀과 시즌 내내 같이 훈련하는 팀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2019년 U20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낸 정정용 감독은 지난 시즌 김천상무에서 우승을 거머쥐기 전까지 프로팀에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수원FC 감독직을 고민 없이 수락했다고 밝혔다. "물론 대표팀과 프로팀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프로팀에서는 한 시즌을 보고 베테랑 선수들과 같이 팀을 이끌어야 한다"면서도 "아시안게임 때도 조현우,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 같은 선수들과 같이 했다. 나 역시 프로 경험을 18년 동안 해왔기 때문에 선수 관리는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수원FC는 지난 4년간 김도균 감독과 함께 공격적인 색채를 짙게 띄던 팀이었다. 2020년 K리그1 승격도, 이후 3시즌 동안 잔류도 폭발적인 공격을 통해 이뤄냈다.
김은중 감독은 수원FC의 공격적 색채는 살리고 수비를 보완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꺼냈다. "김도균 감독님이 워낙 공격적으로 팀을 많이 다듬었기 때문에 공격력은 이를 바탕으로 더 발전을 시켜야 한다. 수비적으로는 특히 작년에 불안감이 있었다. 실점이 많았는데 그건 우리 스스로 줄일 수 있는 부분"이라며 공격을 더 연마하고, 수비를 중점적으로 다듬어 안정적인 축구를 구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세밀하고 폭발적인 공격력과 안정적인 수비력, 직선적이면서도 다이나믹한 축구를 구상하고 있다. 단기간이 아니라 서서히 바꾸려 한다"는 방향성을 드러냈다. 혹시 더 자세한 사항을 알려줄 수 있냐고 묻자 김 감독은 "조심스럽다"고 말을 아꼈다. K리그가 개막하기 전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겠다는 의미였다.
김 감독은 윤빛가람, 이용, 이승우 등 팀에 중심이 될 선수들을 염두에 두고 강상윤, 이준석, 정재민 등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영건들과 몬레알, 아르한, 트린다지 등 외국인 선수들을 보강해 차근차근 팀을 만들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 시즌보다는 젊고 빠른 선수단을 구성하려는 계획이다.
김 감독은 올 시즌 수원FC에서 첫 번째 목표를 안정적인 중위권으로 뽑았다. 원대한 포부보다는 현실적인 기준점을 제시했다. 수원FC를 선택한 이유도 현실적인 목표 설정으로 안정감을 추구해야한다는 점이 자신의 구단 운영 철학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시민구단이 매번 좋은 선수들을 많이 사올 수는 없다. 장기적으로 선수들을 키워야 하고, 현실적인 목표 설정으로 안정감을 추구하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부분들에서 수원FC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철학이 나와 잘 맞아떨어졌다."
"올 시즌 수원FC의 목표는 강등권을 벗어난 안정적인 중위권이다. 현실적인 목표이자 작년보다 높은 곳으로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그것을 아까 말했던 직선적이면서도 다이나믹한 축구로 실현시키는 게 부차적인 목표다. 팀을 이끌고 가는 건 성적, 육성 등 여러 가지가 다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하나에 무게를 두지는 않을 것이다."
사진= 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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