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 선정성 논란... 어쩌면 (여자)아이들의 큰 그림?

이진민 2024. 1. 2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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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여성은 자발적으로 섹시함을 선택할 수 있는가

[이진민 기자]

 (여자)아이들 'Wife'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 큐브엔터테인먼트
 
(여자)아이들이 의미심장한 노래를 내놓았다. 관건은 콘셉트에 압도 당하지 않고 대중에게 숨겨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다. 22일 발매된 정규 < 2(Two) >의 수록곡 'Wife(와이프)'가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가사의 수위가 쟁점이다. "위에 체리도 따먹어줘", "배웠으면 이제 너도 한번 올라타 봐", "섬세한 입술에 손길은 안 닿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냥 chop" 등 한글과 영어 가사가 섞인 노래는 성행위에 대한 은유와 섹슈얼한 표현을 담았다.

하지만 상대는 (여자)아이들이다. 전작 'TOMBOY', 'Nxde', '퀸카'에서 그들이 일관적으로 노래한 메시지는 '여성의 성(性)'. 섹시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역으로 섹시한 여성이 되었던 그들이다. 여성과 성(性)에 얽힌 통념을 역전하기 위해 섹시 콘셉트로 컴백한 (여자)아이들의 모순. 이 안에는 K팝 업계에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난제, '주체적 섹시'가 있다.

끝까지 까봐야 아는 'Wife'의 의미
 
 (여자)아이들 'Wife'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 큐브엔터테인먼트
 
'Wife'는 아내하면 떠오르는, 가부장제 속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시작한다. "나는 크림수프를 요리하지(I cook cream soup), 나는 너의 방을 빛이 나게 청소하지(I clean your room. It's so twinkle)"처럼 남편과 가족을 위해 요리하고 청소하는 아내의 타자 지향적인 역할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노래 속 화자는 이어진 가사 "내가 네 부인이 되길 원할 테지만, 글쎄(Want me as your wife but she is)"를 통해 전통적인 아내의 역할을 거부하려 한다.

노래는 논란의 가사로 진입한다. "자기야 한입 크게 맛봐 좀 더 줄 테니 그만 침 좀 닦아", "그래 그럴 줄 알고 케이크 좀 구웠어", "그게 다가 아냐 위에 체리도 따 먹어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냥 촙(CHOP)" 등 노골적인 성행위를 상징하는 노랫말이 등장한다. 해당 파트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수용하는 메시지가 다르다.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노골적인 가사를 썼다는 의견과 여성에게 요구되는 섹시한 여성성을 비판 없이 답습했다는 의견으로 갈렸다.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자 메시지는 선명해진다. "와이프, 나는 너를 기분 좋게 하지. 거짓말처럼 느끼게 하지(Wife, I make you feel so high. I make you feel like lie)"라며 남편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혹은 좋아지게 만드는 아내의 역할과 임무를 논하다가 결국 "하지만 나는 원하지 않아(But I don't wanna)"라고 완강히 거부한다. 연달아 단어 'wife'를 네 번 반복하는 마지막 구절은 누군가의 부인, 아내, 와이프, 집사람이라 불리며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여성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자)아이들은 지난 앨범에서도 '여성의 전형성'에 반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하겠다는 'TOMBOY'에서 "변태는 너야"라며 여성의 관음적인 누드를 살아있는 몸으로 전환한 'Nxde', 말랐든 살쪘든 모두 퀸카라는 '퀸카'로 이어지는 (여자)아이들의 메시지를 짚어본다면 신곡 'Wife' 또한 여성의 주체성을 노래한다는 것이 숨은 의도임을 알 수 있다.

섹시하면서 주체적인 여성, 가능한가요?

문제는 주체적인 여성이란 메시지를 압도하는 섹시 콘셉트다. (여자)아이들의 'Wife'처럼 여성의 주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아티스트가 섹시한 콘셉트를 선택하는, 이른바 '주체적 섹시'는 K팝 문화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나를 흘러내리게 해달라(make me water)'는 tyla의 'water', '누가 보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해달라'는 doja cat의 'Agora Hills'처럼 빌보드 상위권에서 당당함을 겨냥한 주체적 섹시 콘셉트의 여성 아티스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주체적 섹시는 결코 주체적 여성으로 이어질 수 없다. 여성의 위치가 욕망하는 주체가 아닌 여전히 대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성적으로 욕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해서 욕망의 대상이 되었을 뿐, 이는 여성 대상화의 또 다른 방식인 셈이다. 특히 스스로 선택하여 욕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체성을 획득한 거 같지만, 결국 여성의 능력을 성적 매력으로 평가하는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며 이를 따라야 한다는 의무에서 자발적인 의사로 바뀐 것이다.
  
 비키니 경연대회에 참가한 <섹스토피아> 속 한 여성의 고백. 섹시한 여성의 이미지를 보고 자랐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어린 여성들이 자신처럼 악순환을 겪는 게 괴롭다고 고백한다.
ⓒ NETFLIX
 
주체적 섹시에 대한 오해는 '쿨 걸(Cool Girl)'을 탄생시켰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섹스토피아>의 게일 다인스 교수는 "어린 여성들의 삶을 떠올려 보자. 주위에는 (섹시 콘셉트인) 비욘세, 마일리 사이러스가 보이고 잡지에는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이 실린다. 지금 문화권에선 이렇게 입고 말하는 것이 자주적인 여성이 된다"고 말했다. 즉, 성적으로 개방된 모습이 주체적인 여성의 자질로 여겨지는 '쿨 걸' 문화가 어린 여성의 정체성에 왜곡된 성인식을 자리잡게 하는 것.

이는 중고등학교 축제나 10~20대로 구성된 커버 댄스팀에서 선정적인 걸그룹의 안무와 의상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외설적인 요소가 담긴 챌린지에 참여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K팝 업계 내 주체적 섹시는 여자 아이돌 산업이 발전했다는 착각을 주지만, 실제 여성 아티스트는 성적 대상화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동시에 아티스트가 자발적으로 원했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문제의식을 덜게 한다.

어쩌면 (여자)아이들의 큰 그림?

주체적 섹시에 얽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를 선택한 여성 아티스트를 비난하는 건 피상적인 방식이다. 대중의 수요가 업계의 관행을 만들며, 아티스트뿐만이 아니라 소비하는 팬, 이와 무관한 개인조차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에서 완벽히 벗어나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성 혐오적인 문화를 여성의 주체성으로 탈바꿈하는 K팝 문화에는 비판이 따라야 한다.

(여자)아이들의 'Wife'는 새로운 앨범에 대한 맛보기다. 공개 예정인 'Super lady(슈퍼 레이디)', 'Doll(인형)', 'Revenge(복수)'까지 들어봐야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짜 맞춰질 것이다. 과연 (여자)아이들은 'But I'm not(하지만 나는 아니다)'이라는 앨범 소개문처럼 선정성 논란을 잠재울 큰 그림을 준비했을까. 대중의 오해를 풀어줄 섹시 콘셉트 속 '진짜' 의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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