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자민당 파벌 해체 유야무야? ...돈·인사권 없앤 '정책집단' 전환 추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기시다파' 해산 선언으로 촉발된 일본 집권 자민당내 파벌 해체 움직임이 결국 '반쪽짜리 개혁'으로 결론 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 매체들은 자민당의 개혁이 파벌 자체를 없애지는 않되 그동안 파벌의 존재 이유였던 정치 자금 조달과 인사 추천권을 축소하는 선에서 추진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24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자민당 정치쇄신본부는 25일 발표할 정치개혁안 중간보고서에 파벌을 '정책 집단' 형태로 존속시키되 정치자금 모금과 인사 추천은 금지하는 내용을 담기로 잠정 결정했다. 정치쇄신본부는 지난해 말부터 당내 아베파 등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아 여론이 악화하자 '국민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며 결성한 조직이다. 검찰 수사 결과 아베파와 니카이파, 기시다파 등 자민당 파벌들은 정치자금 모금 파티에서 모은 돈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고 의원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비자금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승부수를 던진 것은 기시다 총리였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9일 "이대로면 자민당은 끝"이라며 자신이 이끌어왔던 기시다파의 해산을 전격 선언했다. 이어 아베파와 니카이파도 해체를 발표하면서 1955년 자민당 창당 이후로 지속돼 온 자민당내 파벌 문화가 끝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 정치자금 논란에 관여되지 않은 아소파, 모테기파, 모리야마파는 끝까지 해산을 거부했고, 결국 기시다 총리는 이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총리를 당선시키는 데 일조했던 아소파의 수장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부총재와 모테기파의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자민당 간사장은 파벌 해체 요구를 "총리의 독단"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고 매체들은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총리는 정치 불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확실한 메시지가 될 '파벌 전폐'를 목표로 했지만, 정권 운영의 불안정화를 피하기 위해 아소·모테기와 일정한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대신 파벌의 존재 이유로 꼽혔던 정치자금 모금과 관료 추천 관행은 없애기로 했다. 파벌에서 돈과 인사권을 떼내고 순수하게 정책을 협의하는 집단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파벌들은 그동안 대규모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열어 소속 정치인들을 지원하고, 정부의 개각 때에는 파벌 소속 의원 중 추천 인사 명부를 만들어 총리와 협의했다.
또 앞으로 파벌을 비롯한 정책집단이 정치자금 관련 법률을 위반하면 당이 조사를 진행해 활동 정지나 해산을 요구하도록 했다. 정치자금 보고서에 대한 외부 감사를 도입하고, 회계 책임자가 체포·기소되면 사안에 관련된 국회의원을 함께 처벌한다는 내용도 개혁안에 담겼다.
이를 두고 파벌의 힘의 원천인 '돈과 인사권'을 없앤 만큼 "사실상의 해산"이라는 평가와 '파벌 해산'을 기대했던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파벌 전폐를 주장해왔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는 23일 "당의 방향성은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국민들의 이해를 얻기 쉽다"며 "파벌 문제는 앞으로도 논란이 될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사히신문은 "기시다파 해산을 조기에 표명해 건곤일척의 승부를 한 기시다 총리지만, 여론의 불신은 여전히 깊고 자민당에서도 총리의 일관되지 않은 태도에 대한 분노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자민당이 파벌을 둘러싼 논의에서 여론이 납득할 만한 방향성을 도출하지 않으면 기시다 정권과 자민당의 신뢰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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