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뱅만 나서는 ‘통장묶기’ 사기…다른 금융사는 왜 못하나
케이뱅크, 금융권 최초 ‘즉시해제 제도’ 도입…“파악 어렵지 않아”
은행들 대처 미온적…“할 수 있는데 왜 안하나” 비판
#최근 A씨는 자신의 통장에 30만원이 입금된 것을 확인했다. 돈이 들어올 일이 없어 당황하던 A씨는 곧이어 계좌거래가 정지됐다는 은행의 통보를 받았다. ‘통장묶기’ 혹은 ‘핑돈’이라는 금융사기에 당한 것이다. 이에 은행 영업점에 찾아갔지만 A씨는 “경찰서에 가야 한다”는 답변만 받았다. 이에 경찰서에 간 A씨는 피해를 호소했지만 “금융감독원 아니면 은행에서 상담해라”라는 말만 듣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케이뱅크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소위 '통장묶기' 금융사기에 대응책을 내놓았다. 여타 금융사들이 '책임' 문제를 놓고 대응을 회피해 오던 태도와 상반된다. 이는 그동안 금융권이 소비자 피해 문제를 외면해 왔다는 비판을 불러온다.
‘통장묶기’ 사기 급증…금융당국·은행 마땅한 대처 없어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 ‘통장묶기’가 성행하면서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통장묶기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구멍을 악용한 새로운 금융범죄 수법이다.
금융회사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보이스피싱 신고가 접수되면 즉시 해당 계좌를 지급정지해야 한다. 신고인이 요청하면 지급정지를 바로 풀 수 있지만, 신고를 당한 피해자는 지급정지를 바로 풀 수 없다. 이 점을 사기범들이 악용하고 있다.
피해자 계좌에 소액을 입금하거나 사기로 입금을 유도한 후 보이스피싱 신고로 계좌를 지급정지 시킨다. 이후 통장묶기에 당한 피해자에게 접근해 현금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면 신고를 취하하는 식이다. 만약 현금 요구를 거절할 경우 피해자는 최대 수개월 동안 금융거래가 불가능해진다.
신종 금융사기다 보니 통장묶기의 별도 통계는 아직 없다.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사기 이용계좌 지급정지 건수로 통장묶기 피해 건수를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급정지 건수는 2020년 2만191건, 2021년 2만6321건, 2022년 3만3897건, 지난해 상반기 1만8000건으로 계속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보이스피싱 방지를 위한 규제를 악용한 사기라 현재 마땅한 대처법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통장묶기에 당해 동결된 계좌를 풀려면 피싱 피해자와 통장 묶기 피해자가 서로 합의하는 수밖에 없다. 경찰과 은행은 양쪽 피해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원만하게 문제가 해결되도록 중재하고, 금감원은 빨리 조정이 성립되도록 감독하는 등 제한적인 역할만 수행 할 수 있다.
금융사들도 대응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범인들이 돈을 이체하게 만들 때 여러 계좌로 이체를 유도하거나 통장협박에 당한 피해자의 계좌에 있던 돈이 다른 사람의 계좌로 또다시 이체되는 경우 합의가 복잡하다”며 “보이스피싱이나 해킹에 당한 피해자들은 수취인도 보이스피싱 범죄의 일당이라는 의심을 가지고 있어 합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케이뱅크, 금융권 최초 ‘즉시해제 제도’ 도입…“파악 어렵지 않아”
이같은 상황 속 케이뱅크가 금융권 내에서 유일하게 즉시해제 제도를 도입했다. 케이뱅크는 고객이 통장묶기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검증절차를 거쳐 1시간 이내에 지급정지를 풀어준다. 고객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지급정지 이의제기 접수 시 신속하게 검증절차를 진행한 뒤 범죄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면 해당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지급정지를 해제한다. 예를 들어 보이스피싱범으로부터 20만원이 입금돼 지급정지된 경우, 20만원만 묶어두고 나머지 모든 금융거래는 풀어주는 방식이다.
피해자의 신원은 신분증, 영상통화 등을 통해 인증한다. 실제 피싱범일 경우, 스스로 신원을 밝히지 못하는 점을 감안해 신원인증으로 1차 검증을 진행한다. 동시에 통장묶기 피해자의 계좌거래 내역 분석을 진행한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과거 입출금 내역과 금융거래 패턴을 분석하고 보이스피싱 혐의점이 없는지 판단한다. 필요 시 금융 유관기관과 협업해 추가 검증도 수행한다.
케이뱅크에서는 절차 도입을 완료하면서 큰 무리없이 피해자들의 동결계좌를 해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사기꾼들의 계좌와 일반 금융소비자들의 계좌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며 “통장묶기 사기는 AI기술과 인력을 활용해 실제 피해가 맞는지 확인 절차를 거치면 피해자들의 빠른 구제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은행들 대처 미온적…“할 수 있는데 왜 안하나” 비판
케이뱅크의 선제적인 대처로 통장묶기에 대한 대응 방안이 나오면서 다른 금융사들이 미온적인 대응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다.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최근 금융사기를 전문적으로 저지르는 조직들은 단순 보이스피싱보다 통장묶기 수법을 선호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며 “자금 편취를 위한 해킹 같은 과정보다 송금 후 신고로 계좌를 묶고 협박하는 방식이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 소장은 은행들이 통장묶기 대처를 할 수 있음에도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법인계좌도 통장묶기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며 “이를 은행에 호소해도 경찰서나 금융감독원에 가야 한다는 답변만 받아 매우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사실을 강하게 어필하고 관련 자료를 전부 가져와 은행에 소명하니 그제서야 송금 금액만 묶고 계좌를 풀어줬다”며 “만약 내가 해당 내용을 알고 있지 않았다면 수 개월간 묶여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케이뱅크의 선제적 대처를 보면 알겠지만 은행이나 금융사들이 인력과 기술을 투입한다면 통장묶기 피해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문제”라며 “급증하는 통장묶기 피해를 막기 위해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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