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승 자신한 트럼프 “뉴햄프셔에서 헤일리도 사라질 것”
“13명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둘 남았고, 남은 한 사람은 내일 사라질 것이다. 지금은 공화당이 뭉칠 때고 우리는 점점 더 단합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 하루 전인 22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라코니아 유세에서 경쟁자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에 대한 압도적 승리를 자신했다. 주요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력한 우세가 예측돼 유세장은 ‘트럼프 대관식’을 미리 축하하는 자리 같았다.
트럼프는 이날 연설 도중 사업가 출신의 비벡 라마스와미,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 팀 스콧 상원의원을 차례로 무대로 불러올렸다. 한때 경쟁자였지만 모두 중도 사퇴하면서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인물이다. 이들은 트럼프 옆에 서서 “조 바이든을 무너뜨리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할 사람은 트럼프”라고 치켜세웠다.
트럼프는 반면 헤일리 전 대사를 향해서는 “딥스테이트(숨은 권력자 집단), 친중파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며 “민주당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기기 쉽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내일은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투표일”이라며 “11월에 비뚤어진 바이든을 내쫓고, 우리가 아름다운 백악관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일리도 이날 유세에서 “트럼프는 혼돈을 먹고 산다. 폭언하고, 독재자들이 원하는 해선 안 될 말을 해 혼란을 조성한다”고 비난했다. 또 “미국은 아직 대관식을 치르지 않았다”며 “우리는 (유권자) 선택을 믿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믿는다”고 강조했다. 크리스 수누누 뉴햄프셔 주지사는 “헤일리는 경선을 양자대결로 만드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을 했다”며 “이제 트럼프에게 첫 번째 패배를 안길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는 트럼프 대세론에 힘을 싣고 있다. 이날 발표된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52% 지지율을 기록해 헤일리(34%)를 18% 포인트 앞섰다. 보스턴글로브·NBC10·서포크대 공동 조사에선 트럼프(55%)와 헤일리(36%) 간 격차가 19% 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크리스 에이거 뉴햄프셔 공화당 의장은 “트럼프가 두 자릿수 차이로 승리하면 헤일리 캠프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있는지 재평가해야 할 것”이라며 “경선이 끝나는 걸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도 “헤일리가 의미 있는 득표율을 올리지 못하면 남은 경선에서 트럼프를 저지할 기회는 사실상 사라진다”며 트럼프의 뉴햄프셔 압승이 바이든-트럼프 리턴매치를 조기 확정하는 순간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인기몰이에 민주당은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대선후보 확정 가능성이 커질수록 바이든 지지층도 결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왔지만 지지율 반전 기미는 아직 없다. 이날 발표된 하버드 미국정치연구소(CAPS)-해리스 여론조사(지난 17~18일 유권자 2346명 대상)에서 트럼프는 가상 양자대결 시 48% 지지를 얻어 바이든(41%)을 7% 포인트 앞섰다. 둘의 격차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포함한 3자 대결에선 8% 포인트, 코넬 웨스트와 질 스타인까지 포함한 다자대결에선 11% 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바이든에게서 이탈하는 중도·무당층 표심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뉴햄프셔주에서도 바이든의 프라이머리 불참 결정에 대한 무당층의 반발 기류가 나타났다. 이날 내슈아 지역의 한 컨트리클럽에서 만난 캐롤린 조슈아(80)는 “나는 무소속이지만 바이든이 뉴햄프셔에 후보 등록을 안 한 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수년간 그를 지지해 온 시민들의 뺨을 때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주도 콩코드의 주정부 청사 앞에서 만난 민주당원 엘리자베스 트루먼도 “바이든은 기명투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우리에게 투표 기회조차 주지 못한다면 내 표를 기대해선 안 된다”며 “트럼프를 반대하기 때문에 바이든에게 투표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딸인 대학생 세레나도 “내 투표가 의미 없다고 말하면서 왜 대선에서 내 표를 받으려고 하느냐”며 “나는 바이든에게 투표할 생각이 없다. 바이든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투표용지에는 21명 후보자의 이름이 올라가지만 바이든 이름은 없다. 민주당전국위원회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첫 번째 프라이머리 지역으로 선정하면서 바이든은 뉴햄프셔 경선을 건너뛰기로 했다. 뉴햄프셔의 바이든 지지자들은 대신 투표용지에 바이든 이름을 수기로 기재하자는 ‘기명투표’ 운동을 전개해 왔다.
한편 뉴햄프셔 북부의 작은 마을 딕스빌 노치는 전통에 따라 23일 0시 가장 먼저 투표를 시작했다. 이번 선거 등록 유권자는 6명(공화당원 4명, 무소속 2명)이었고, 9분 만에 투표와 개표가 끝났다. 헤일리가 6표를 모두 확보했다.
내슈아=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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