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학생 학습 데이터 사교육 업체 제공, 누구 허락을 받았는가

이도경 2024. 1. 24.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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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내년 3월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 교과서)를 도입해 수업에 활용하기로 했다. 대입 등 교육 전반에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한 대입 수험생이 지난해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에 응시하는 모습. 뉴시스

내년 3월 초중고 AI 교과서 도입
학습 기록 고스란히 업체 DB 전송
DB 획득에 구독료 수익까지 챙겨
데이터 개방 법적 근거·합의 있어야

내년 3월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 교과서)가 도입됩니다. 수업에 AI를 활용하는 교육 실험입니다. 서책형 교과서가 당장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교육부는 멀지 않은 미래에 AI 교과서만으로 수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육부 바람대로 진행된다면 꽤 매력적인 공교육 혁신안이 될 겁니다. 종이책보다 스마트기기 모니터가 익숙한 세대가 AI의 조력을 받아 공부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AI 교과서는 일종의 개인 교사 개념입니다. 교사는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과거 수업에서 탈피할 수 있습니다. AI와 학생이 상호작용하며 공부하고 교사는 이를 뒷받침하는, 학생 맞춤형 수업이 비로소 가능해지는 거죠. 디지털 기기의 장점을 활용, 다양한 콘텐츠와 연계해 수업이 풍성해질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정부가 열을 올리며 홍보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알려진 내용이죠. 하지만 이런 교실을 만들기 위해 사교육에 학교 교실을 개방해야 한다는 점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교육은 내년 3월부터 AI 교과서를 ‘트로이 목마’ 삼아 교실 수업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AI 교과서로 학생이 공부하고 교사가 지도한 기록이 사교육 업체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되기 때문이죠.

사교육 시장에서 학생 데이터는 곧 돈입니다. 전국의 학교에서 초·중·고교 학생 수백만명이 공부하는 내용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서버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사교육 업체가 개별적으로 이런 데이터를 구축하려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 것입니다. 게다가 학교에서 넘어가는 학습 데이터는 학교와 계약한 업체로만 넘어가는 게 아닙니다.

예컨대 A업체에서 만든 AI 교과서는 50만명이 사용하고 경쟁사인 B업체는 20만명, C업체는 10만명이 쓰고 있습니다. AI 교과서의 질은 데이터의 크기가 좌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A업체가 향후 AI 교과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 80만명분 데이터를 세 업체에 공동 제공하는 방식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작은 업체라도 방대한 자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죠. 반대로 학교 입장에선 학습 정보가 여러 업체에 공동으로 제공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업체는 ‘꿩 먹고 알 먹고’입니다.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획득하는 것 외에도 구독료 수익을 챙길 수 있습니다. AI 교과서는 구독료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교과서는 무상입니다. 정부가 구독료를 지불합니다. 서책형 교과서 수익도 올릴 수 있습니다.

공교육에서 넘어간 학습 데이터는 사교육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교육부는 “AI 교과서를 통해 발생하는 학습 데이터는 AI 교과서 서비스 고도화 등 공교육 활성화 목적으로만 활용 가능하며, 민간 기업의 사교육 서비스 제공에 활용하는 등 목적 외 활용은 금지한다”고 설명합니다. 업체 자체 서비스에 AI 교과서로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하다 적발되면 교과서 검정 탈락 등 처벌한다고 합니다. 또 데이터베이스가 섞이지 않도록 업체의 자체 서버와 AI 교과서용 서버를 분리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로그 기록이 남지 않는 간접 활용까지 막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AI 교과서는 학생의 수많은 학습 데이터를 수집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이런 과정을 업체가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죠. AI 교과서는 내년 3월 수학과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를 시작으로 2028년에는 주요 과목에 도입됩니다. 적용 학년은 초3부터 고3까지입니다. 어떤 정보가 어떻게 쌓일지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분석할 경우 다른 유료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을 수도, 기존 유료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공공 영역에서 생성된 빅데이터를 민간에 개방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일도 필요합니다. 다만 사교육의 배를 불리는 쪽으로 가서는 곤란합니다. 사교육 확장은 학부모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경제력에 따른 교육 격차를 확대시킵니다. 새로운 형태의 ‘사교육 카르텔’이 형성되는 토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교육 영역에서 대형학원과 교재 출판사, 컨설팅 업체, 에듀테크 기업 등의 영역은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상황이므로 결국 돈이 있는 쪽으로 모이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가장 돈이 되는, 학부모 지갑이 가장 쉽게 열리는 영역은 결국 입시일 겁니다.

AI 교과서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브랜드’입니다. 그는 첫 번째 장관직에서 내려온 뒤 줄곧 에듀테크를 연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에듀테크가 공교육 혁신을 이끌 마중물이란 결론을 내리고 ‘에듀테그 전도사’로 활동했습니다. 동남아 학교에선 에듀테크를 활용한 수업 혁신안을 실험하기도 하는 등 의욕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다시 교육 수장에 오르지 않았다면 AI 교과서는 먼 미래의 일이었을 겁니다. 바꿔 말하면 그가 자리에서 내려오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기한을 정해놓고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는 이유일 겁니다.

학습 데이터를 사교육에 개방하는 일은 명확한 법적 근거를 갖추고 사회적 합의 속에 추진됐으면 합니다. 익명 처리를 하더라도 학교에서 생성된 데이터가 사교육 영역에서 돈벌이에 활용되는 상황은 막아야 하니까요. 지금처럼 교육부 관료 몇 명과 업체들이 만나 결정하는 폐쇄적 논의 구조로는 막기 어려울 겁니다. 정보의 주체인 학생과 학부모 동의 여부는 학기 시작할 때 은행에서 정보 제공 동의를 받듯 받으면 된다는 발상에는 무책임함마저 느껴집니다. 학교 교육은 은행처럼 고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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