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배울 수 없는 것

2024. 1. 24.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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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구석기시대부터 뼈를 갈아 낚싯바늘을 만들었다.

"낚시하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있지만 그 속에 있는 묘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묘리를 깨닫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오늘부터 아침에도 낚시를 하고 저녁에도 낚시를 하면서 온 정신을 쏟아야 한다. 그렇게 오랜 시일이 지나면 손이 저절로 익으면서 깨달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보다 낚시를 잘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낚시하는 솜씨가 조금 좋아질 수도 있고 많이 좋아질 수도 있는데, 그건 순전히 당신한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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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인간은 구석기시대부터 뼈를 갈아 낚싯바늘을 만들었다. 낚시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고 할 정도로 오래다. 지금도 낚시는 누군가의 생업이자 인기 있는 스포츠다. 이처럼 오랜 역사에 반해 요령이 따로 없다는 것도 낚시의 특징이다. 경험으로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고들 말한다. 낚시하는 때와 장소, 잡으려는 물고기의 특성이 제각각일 테니 그럴 만도 하다.

약천 남구만(1629~1711)이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충남 홍성군 결성면 외갓집에 내려갔다.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빈둥거리는데 이웃 사람이 낚싯대를 만들어주었다. 그걸 들고 낚시터로 갔다. 서울 양반이 갑자기 낚시꾼 노릇을 하려니 될 턱이 없다. 하루 종일 앉아 있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다음 날도 낚시터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한마디 던졌다. “낚싯바늘이 너무 구부러졌다. 이러면 고기가 바늘을 삼키기도 쉽지만 뱉기도 쉽다.” 남구만은 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낚싯바늘을 두드려 각도를 조정했다. 하지만 그날도 결국 허탕이었다.

남구만은 포기하지 않고 다음 날도 낚시터로 갔다. 또 누군가 지나가다 말했다. “바늘이 너무 커서 물고기 입에 들어가지 않는다. 좀 작아야 잡힌다.” 그 말대로 바늘을 두드려 작게 만들었더니 간신히 한 마리가 잡혔다.

다음 날도 낚시터로 나갔다. 이번에는 두 사람이 지나갔다. 한 사람이 말했다. “바늘 끝이 너무 길다. 짧아야 잡힌다.” 그 말대로 했더니 물고기가 바늘을 자주 물기는 했지만 번번이 빠져나갔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낚싯대 드는 방법이 문제다. 물고기가 바늘을 삼키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당기니까 빠져나간다. 찌가 잠길락 말락 할 때 당겨야 한다.” 그 말대로 했더니 얼마 안 가 서너 마리를 잡았다. 낚싯대 드는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직접 낚싯대를 들고 시범을 보였다. 그가 낚시를 시작하자마자 고기가 걸려 나왔다. 순식간에 광주리가 가득 찼다. 남구만은 신기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낚싯대로 같은 미끼를 쓰는데 누구는 잘 잡고 누구는 못 잡다니. 남구만은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사정했다. 그가 말했다.

“낚시하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있지만 그 속에 있는 묘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묘리를 깨닫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오늘부터 아침에도 낚시를 하고 저녁에도 낚시를 하면서 온 정신을 쏟아야 한다. 그렇게 오랜 시일이 지나면 손이 저절로 익으면서 깨달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보다 낚시를 잘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낚시하는 솜씨가 조금 좋아질 수도 있고 많이 좋아질 수도 있는데, 그건 순전히 당신한테 달렸다.”

남구만은 무릎을 쳤다. 낚시만 그렇겠는가. 누군가 방법을 가르쳐줄 수는 있어도 그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결국 배우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직접 시도해 보고 실패를 거듭하며 스스로 깨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남구만의 ‘약천집’ 중 ‘낚시 이야기(釣說)’에 나오는 이야기다.

같은 선생님에게 배워도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각기 다르다. 가르침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는 학생이 있기 때문이다. 요새는 보고 배울 데가 많아서 그런지 스스로 방법을 찾을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자꾸 남에게 의지하려 한다. 심지어 연애하는 방법까지 강의를 듣고 배우려고 한다. 남에게 배우려는 자세는 좋지만 빠른 성취를 바라는 욕심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면 문제다. 실패를 거듭하며 좌충우돌하는 과정이 없으면 학습 효과가 크지 않다. 실패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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