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 없이 8억 남기자 '모자 대 딸들' 골육상쟁 끝에 남남 됐다[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정계를 은퇴하고 웰다잉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가 유언장 작성 운동을 시작했다. 이달 1일 소순무·이양원·양소영 등 변호사 16명이 유언무료상담센터(Welldyingplus.org)를 열었다.
원 대표는 "재산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면 싸움이 벌어져 가정이 파괴된다"며 "특히 1인 가구가 늘면서 그냥 떠나면 원하지 않는 데로 재산이 가게 된다"고 말한다. 17일 원 대표를 만났다.
집 한 칸인데 뭘? 이건 잘못된 생각
Q : 유언장이 그리 중요한가.
A : "최근에 LG그룹 일가에서 상속 관련 분쟁이 발생했는데, 알고 보니 (故) 구본무 전 회장이 유언장을 안썼더라. 유언장의 법적 효력을 고려하면 (그게 있었으면) 해석의 여지가 사라져 다툼의 여지가 없었을 텐데…. 미국인의 56%는 유언장을 쓴다. 한국인은 1%도 안 된다. 지난해 10월 법정에서 LG 관계자는 "(LG그룹은 상속 때) 유언장을 쓰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Q : 재산이 얼마 안 돼도 써야 하나.
A : 일반인은 '재벌이나 쓰는 거지 뭐, 집 한 칸 있는데 쓰고 말고 할 게 뭐 있나'라고 말한다. 잘못된 생각이고 무책임하다. 재벌이 안 썼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있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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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언장 상담센터 연 원혜영 대표
미국 56% 작성, 한국은 고작 1%
1인 가구일수록 미리 준비해야
"디지털 유언장,공공보관 도입을"
」
유언무료상담센터 간사 역할을 하는 이양원 부천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극단의 예를 살펴보자.
#골육상쟁
2022년 초 박모씨가 갑자기 숨졌다. 유족은 아내와 1남 2녀. 아내 김모씨는 재산(약 8억원)을 아들 앞으로 이전하려고 두 딸에게 상속포기각서를 요구했다. 딸들이 응하지 않자 아들 박씨는 "재산을 어머니 앞으로 해뒀다가 돌아가시면 우리가 삼등분하자"고 제안했다. 누나들이 거절하자 박씨는 소송을 냈다. 모자(母子) 대 딸들의 전쟁이었다.
김씨는 "내가 남편의 재산 형성에 기여했고, 간병하고 치료비를 부담했다"며 '특별 부양과 특별기여'를 주장하면서 기여분을 인정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정상속분에 따라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두 딸의 승리였다. 양 측은 법정에서 상대를 격렬하게 비난했고 남남이 됐다.
#모범 사례
80세 홍모씨는 서울 강남구 35평형 아파트에 산다. 자녀는 2남 1녀. 이혼한 딸이 같이 살며 부모를 돌본다. 홍씨는 20년 전 장남이 결혼할 때 아파트를 사줬고, 차남의 미국 유학비용을 댔다. 딸은 특별히 해 준 게 없다. 홍씨는 딸에게 집을 상속하고 아내를 보살피길 원한다. 홍씨는 자필 유언장을 작성한다. "재산의 반은 아내에게, 나머지 반은 딸에게 상속한다. 아내와 딸은 아파트를 담보로 5000만원 대출받아 큰아들에게 주기 바란다. 유언 집행자로 딸을 지정한다."
한 해 상속분쟁 5만1626건
이 변호사는 "과거 두 아들에게 간 아파트와 유학비용을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상속재산의 유류분을 초과하기 때문에 두 아들이 소송을 걸기 어렵다"며 "유언장이 갈등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유언장을 쓰지 않으면 법대로 아내에게 9분의 3, 자녀 셋에게 9분의 2가 각각 돌아간다. 그러면 아파트를 팔아서 나누게 되고 홍씨의 아내는 살 집을 잃게 된다.
이 변호사는 유언이 상속 분쟁 예방 백신이라고 말한다. 유류분이란 사망자의 뜻과 상관없이 법에 따라 유족이 받을 최소한의 유산 비율을 말한다. 자녀는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이다. 가령 재산 8억원을 자녀 둘에게 물러줄 경우 자녀당 법정상속분은 4억원, 유류분은 이의 2분의 1인 2억원씩이다. 못 사는 자녀에게 더 남기더라도 다른 자녀에게 최소 2억원은 줘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0억원이다. 재산 가치가 오르면서 분쟁도 늘어난다. 상속분쟁은 2022년 5만1626건으로 전년보다 11% 증가했다. 자녀나 부모가 없는 1인 가구가 유언장 없이 숨지면 재산이 형제나 조카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되길 원했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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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 때 같이 해야
원 대표는 "유병장수(병 들어서 오래 사는 것) 시대에 유언장을 미리 쓰되 유산의 10%를 기부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고 말한다.
Q : 재산 보유자가 많은가.
A : 공장 일 하면서 손가락 잘리고,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하면서 집 한 칸을 가지게 됐다. 1930년대 후반 이후 출생자, 40년대생이 그렇고, 이제 베이비부머(1955~63년생)가 늙어간다. 약 1500만~2000만명이 재산을 보유한 채 사망하게 된다. 한국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유언장 쓰기가 쉽나.
A :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삶을 한 번 정리해본다는 의미에서 요건에 맞춰 써보자. 그냥 새해맞이 삼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Q : 분위기 조성이 중요할 것 같다.
A : 전국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438개)에서 유언장의 필요성을 같이 설명하면 좋다. 장례 절차 결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은 따로따로 논다.
유언장에 좀 더 쉽게 접근할 방법이 없나.
A : 일본이 디지털 유언장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법무국(지국 또는 출장소) 312곳에서 자필증서 유언장을 보관한다. 유언서보관관이라는 공무원이 있다. 보관료는 4만원이 채 안 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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