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우리도 겨울잠이 필요하다
속초 동명항 주변 해변은 엊그제 내린 눈이 녹지 않아 하얗게 밝다. 속초엔 두 가지의 눈이 내린다. 설악산에 내리는 눈과 바다에 내리는 눈이다. 설악산에 내리는 눈은 눈꽃 결정이 그대로 보일 정도의 굵은 눈발이지만, 온도가 높은 바닷가엔 반은 비, 반은 눈이 가늘고 곱게 흩날린다. 하지만 모두 한 번 내리면 1m 넘게 쌓이는 폭설일 때가 많다. 이런 눈이 오니 속초 사람들은 눈이 내린 후엔 가급적 이동을 하지 않는다. 마당에 내린 눈을 겨우 사람 다닐 폭으로만 쓸어 내고, 며칠은 집안에서 눈이 녹기를 기다린다.
남편과 나는 몇 달 전부터 집수리를 위해 바닷가 인근의 아파트로 이주했다. 바닷가 아파트에 거주하다 보니, 가끔씩 바다를 쩌렁쩌렁 울리는 안내방송을 집안에서 듣곤 한다. “우리 바다에 해양성 너울이 치고 있으니 바다로 나가지 말아주십시오”라는 방송이다. 너울이 치는 날은 바다에서 묘한 울림의 소리도 들려온다. 이렇게 너울과 높은 파도가 며칠 계속되면 문을 닫는 가게도 속출한다. 바다에 나가지 못해 생선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을 못 여니 안달이 날 법도 한데 대부분의 상인은 이리됐으니 쉬어본다, 그리 맘을 먹는 듯 여유롭다.
설악산 밑, 이제는 바다 옆에 살아보니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사는 사람들은 기다림에 익숙하다는 걸 알게 된다. 풍랑이 치는데 굳이 나가야 할 일이 없고, 눈 쏟아지는 산을 굳이 올라야 할 일이 없다. 자연 스스로 가라앉기를 기다릴 뿐이다.
정원에도 겨울잠이 찾아온다. 모든 식물이 잠시 멈추고 기다리는 시간이다. 어떤 생물학자는 인간에게도 겨울잠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금 늦게 일어나고, 덜 움직이고, 일찍 자는 겨울 생활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봄이 오길 기다리는 조급함도 덜어내야 할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 겨울이 주는 조금 게을러질 수 있는 여유도, 겨울잠처럼 나를 조용히 가라앉힐 시간도 필요하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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