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재건축만 규제 완화? 매력 ‘뚝’ 리모델링…주민들도 돌아선다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2024. 1. 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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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재건축만 규제 완화?

리모델링 아파트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최근 발표한 1·10 부동산 대책이 재건축 규제 완화에 쏠리면서 리모델링 추진 단지 불만이 커지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주택 시장 침체에 따른 사업성 악화로 진행이 주춤하던 참이다. 일부 단지의 경우 이제라도 리모델링을 포기하고 재건축으로 선회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난 1월 10일 정부는 재건축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건설 경기 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아파트를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면 안전진단을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재건축추진위원회나 조합을 먼저 설립하고, 안전진단은 사업계획승인 전까지만 받도록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개정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또 사업 기간을 줄이기 위해 조합설립 시기 조기화와 인허가 관련 ‘패스트트랙’을 도입키로 했다. 선도지구 지정, 용적률 상향 등 혜택도 뒤따른다. 재건축이 손쉽게 되면서 가뜩이나 쉽지 않은 리모델링은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 발표한 1·10 부동산 대책이 재건축 규제 완화에 쏠리면서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매경DB)
‘리모델링 패싱’ 왜 문제?

재건축과 달라진 출발선…이럴 거면 왜?

지난 정부의 재건축 규제 강화 움직임에 기존 용적률이 높아 재건축이 어려운 단지들은 사업 문턱이 낮은 리모델링을 적극 추진했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조합이 설립된 공동주택 리모델링 단지는 전국 총 151개 단지다. 12만621가구가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년 같은 달에는 137개 단지, 11만152가구였다.

하지만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후 주택 공급을 위한 정비사업 규제 완화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리모델링 사업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 재건축보다 사업성은 떨어져도 규제가 적고 사업이 빠르게 진행돼 각광을 받았지만, 이제는 소용이 없게 된 셈이다. 시장에서는 재건축과 리모델링 사업의 출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건축 규제 푼 1·10 대책에서

‘리모델링 규제 완화’ 내용 빠져

안 그래도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은 막상 조합만 세워놓고 시공사 선정에 속도를 내지 못하던 단지가 수두룩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 ‘강변현대’는 1년 6개월 동안 시공사를 구하지 못해 조합 해산 검토에 들어갔다. 경기 군포 ‘산촌8단지’의 경우 입찰에 참여했던 시공사가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포기했다.

일반분양 물량이 적은 리모델링의 경우 수익성이 제한돼 있다. 게다가 최근 급등한 공사비 인상분을 그대로 반영하기 어려워 제값 받기 힘든 상황이 되다 보니 수주에 앞장서던 중견사들도 발을 빼는 모양새다.

사업성이 낮다 보니 조합원 입장에서도 통상적인 재건축·재개발보다 떠맡아야 하는 분담금이 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비단 규제 완화가 재건축·재개발 시장에 집중된 점이 아니더라도 리모델링 시장에 닥친 악재는 또 있다. 필로티(비어 있는 1층 공간) 설계와 이에 따른 최고 1개층 상향에 대한 판단을 기존 수평증축에서 수직증축으로 바꾸기로 하면서다. 수평증축은 1차 안전진단으로도 가능하지만, 수직증축을 하려면 2차 안전진단을 추가로 거쳐야 한다. 재건축 사업 단지에선 안전진단 면제 얘기가 나오는 와중에 리모델링 단지들은 안전진단을 추가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시리모델링주택조합협의회(서리협) 관계자는 “이 문제는 서울뿐 아니라 다른 지자체 리모델링 단지에도 해당하는 부분”이라면서 “리모델링 단지 대부분이 1층을 필로티 구조로 전용해 수평증축하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유권해석이 바뀌면서 사업 지연이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리모델링 추진 단지 중 여러 곳에서 아예 재건축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구성원이 늘어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주택 시장이 극도로 침체되면서 리모델링 사업성 자체를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 ‘거여1단지’는 지난해 3월 리모델링추진위원회를 해산했다. 사업성이 낮아 주민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정비사업 반대 여론이 극심했던 탓이다.

리모델링 인허가를 신청했다가 동의율 등이 미흡해 사업 신청을 취하한 경우도 나타났다. 지난 1월 11일 경기 용인 수지구 풍덕천동에 위치한 ‘현대성우8단지(1239가구)’ 리모델링 조합은 용인시청에 지난해 말 제출한 리모델링 사업 승인 신청을 취하했다.

현대성우8단지 조합이 리모델링 사업 신청을 취하한 이유는 주민들이 사업 동의 철회서를 연이어 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기준 78%까지 확보돼 있던 동의율이 사업 시행을 위한 동의 최소 요건을 채우지도 못하는 상황까지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모델링에 찬성했던 주민들이 맘을 바꾼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한 분담금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사업 초반 조합으로부터 전달받은 금액은 추가 분담 금액은 1억7000만원가량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2억7000만원으로 수정된 분담금 추정치를 받아들었다.

현대성우8단지 내 한 소유주는 “예상 분담금이 기존 조합 설명보다 1억원 이상 늘었고 앞으로 더 불어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면서 “조합에서 매도청구소송 등을 진행한다며 주민들의 사업 동의서 철회를 만류한 것도 반발심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단지는 2020년 말 포스코건설(현 포스코이앤씨)과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리모델링 시공사로 선정하고 수평·별동증축을 통해 1423가구로 단지를 바꾸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번 1·10 대책으로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도권 1기 신도시 내 리모델링 단지에서도 재건축 선회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상대적으로 평균 용적률이 낮은 일산(169%), 분당(184%) 등에서 변화가 특히 크다. 이들 단지는 상대적으로 재건축 사업으로 돌아설 만한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양 평촌신도시에서는 은하수마을청구, 샘마을대우, 한양 등이 리모델링 철회를 결정하고 재건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정말 재건축으로 갈아타야 하나?

리모델링 속도 내기 어렵지만

전문가들은 당분간 리모델링 단지들이 사업에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본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단지와 리모델링 사이에서 고민하던 단지의 경우 선택지가 확실해졌다”면서도 “용적률 문제 등으로 처음부터 재건축을 추진할 수 없었던 단지와 지지부진하게나마 이미 리모델링 사업을 진행 중인 단지들은 당분간 사업에 속도를 내기 녹록잖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떨어지는 리모델링 단지들은 시공사 선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남았다. 권대중 서강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무리하게 수주 경쟁을 벌이지 않고, 당분간 선별 수주에 나설 것”이라며 “원자잿값 급등과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건설사들이 정비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사업성이 다소 떨어지는 정비사업은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자의 경우라고 해서 막연한 기대감에 무턱대고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갈아타는 것 역시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사실상 지은 지 30년이 넘어가면 안전진단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게 사실”이라면서 “안전진단 완화 역시 도시정비법 개정사항이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2년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지 않은 것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귀띔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4호 (2024.01.24~2024.0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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