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다시 짓기] 가족의 무관심... 3개월 지났는데 설계가 안 끝났다 [고향집 다시 짓기]
집을 지으며 했던 고민들,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챙겨야 했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집은 분명 '사는 (buy)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내야 하는 '사는 (live) 곳'이니까요. <기자말>
[이창희 기자]
3월 19일에 건축사와의 첫 미팅이 마무리된 후, 4월 11일에 1차 설계안이 도착했다. 처음 받아본 도면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했고, 내가 원하는 공간이 모두 반영된 모습이었다.
▲ 3차원 모델을 비교해 봅니다. 1차 설계에서 일부의 공간을 앞쪽으로 옮겨서 집의 모양을 바꿔 보았습니다. 대지가 도로에 인접하고 있어서, 거리를 좀 더 띄우고 싶었습니다. 지붕 색깔은 이것보단 좀 더 오스트리아의 청동느낌일꺼라고 기대하고 있는데, 어떨까요? |
ⓒ 이창희 |
수정된 설계에서 가장 큰 변화라면, 직사각형으로 길게 놓였던 집의 형태를, 일부 공간을 앞쪽으로 옮겨서 도로와의 거리를 좀 더 확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음에 들었다. 지붕의 색도 예전부터 눈여겨보았던 민트색의 강판으로 바꿨더니, 꽤나 근사했다. 드디어 설계가 끝나가는 느낌이었다. 이젠, 가족들에게 얘기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믿었다.
5월은 가족들이 고향에 모이는 달이기도 하다. 올해 내로 집을 짓겠다고 선언했으니, 가족들이 모였을 때 뭔가 보여줘야 한다. 이게 K-장녀가 포기할 수 없는 '폼'이다. 뭔가 해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스무 살에 읽다가 지금은 던져버린,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내게 남긴 유일한 문장이다. 마음이 급하다.
이럴수가... 가족들의 무관심
일단, 가족들에게 설명을 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직접 만들어본 경험은 없지만, 건축물의 모형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사무소에서는 설계가 정해질 때마다 1, 2층 평면의 도면과 3차원 모델을 보내주셨고, 나는 이 자료들을 가족들과 모두 공유했지만, 엄마는 항상 '난 이게 뭔지 모르겠다'라고 하셨고 조카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뭔가 손에 잡히는 모형이라면 조금은 더 흥미를 끌어낼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모형 만들기는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배워본 적은 없지만, 도면대로 폼 보드를 자르고 적당하게 붙이기만 하면 될 것이다. 평면도는 이미 정해졌고, 벽체는 기본 높이에서 창문의 위치만 열어주면 되었다. 모형의 크기가 적당하도록 도면의 축척을 정했고, 99 제곱미터의 1층 평면은 360 제곱 센티미터 정도의 모형으로 바뀌었다.
나름 신경을 쓴다면서 벽체 두께나 공간의 높이에도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여, 실제 지어지는 집의 공간을 가늠할 수 있도록 했다. 칼질이 완벽하지는 않은 데다 양면테이프로 붙여놓은 것이라 근사하지는 않았지만, 가족들에게 보여주기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장난감은 아니지만, 조카들의 관심도 끌어모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까지 있었다. 가족 점심을 먹고 실행에 옮겼다.
▲ 모형을 만들었지만, 케이크가 더 좋아요. 조카들과 함께 집을 설명하고, 지붕의 색을 결정하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집 설계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럴 수 있습니까? |
ⓒ 이창희 |
헉, 아무도 관심이 없다. 집이 지어져야 하고, 큰 비용이 드는 작업이라 내 마음속 우선순위는 이미 1등인 지 오래인데, 가족들은 아무 관심이 없다. 조카들은 외삼촌이 사 온 케이크를 더 반가워한다. 왜 이렇지? 나는 이 모형을 정성 들여 만들었는데, 어쩜 이렇게 반응이 없지?
아쉬웠다. 동생들한테는 그동안 도면이나 3차원 모델은 계속 공유했지만, 아이들이나 엄마에겐 모형이 더 친절하겠다 생각했는데 실패다. 간신히 4살 막내 조카인 우주의 선택으로 지붕의 색깔을 정하기는 했지만, 아쉬움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어야 하는데
"엄마가 밭에서 일하시다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화장실이 있었으면 좋겠어."
▲ 고향집의 평면을 그려봅니다. 지금은 철거되고 없는 고향의 옛집 평면입니다. 거실을 중심으로 주변을 세 개의 방과 부엌이 둘러싸는 형태였어요. 문제는 화장실인데, 엄마는 이 화장실이 편리했다고 하셨습니다. |
ⓒ 이창희 |
지금의 시골집 평면은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오기 전에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식이라, 집안에 밭일의 흔적을 조금은 덜 남길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집은 현관으로 들어오는 순간 모두 집안의 내부가 되는 형태라서,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그때까지의 설계로는 1층 면적은 방 두 개와 가족 공용 공간인 부엌과 거실, 화장실, 별도 욕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어디든 틈을 내어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고 싶어졌다. 하지만 화장실을 하나 더 만들기로 한 이후, 건축사의 '안 돼요' 랩이 시작되었다.
"안 돼요. 계단실 밑은 너무 좁아요."
"안 돼요. 게스트룸이 너무 작아져서, 방의 역할을 하지 못할 거예요."
"안 돼요. 다용도실을 없애야 해요."
"안 돼요!"
"안 돼요."
밭에서 접근 가능한 화장실이라는 게, 이렇게나 안 되는 요청일 줄은 몰랐다. 이대로 갈 수도, 여기서 멈출 수도 없는 1층의 평면은 해결 방법도 찾지 못한 채, 그 후로도 몇 달의 고민이 더해졌다.
"이모, 집 옆의 밭은 그대로 두실 거죠?"
▲ 손님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조카들이네요. 이제는 사라진 손님방입니다. 옛날부터 모아놓은 우리들의 흔적으로 가득찬 책장이 있고, 우리 형제들의 추억으로 가득한 방이예요. |
ⓒ 이창희 |
아직은 5월이니 괜찮다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겨울이 되려면 아직 6개월의 찬란한 계절이 있으니, 조금은 더 고민을 해도 된다고 말이다. 그래 2개월 정도만 더 고민을 하고, 8월까지만 끝내면 되겠다고 결심했다. 9월이면 괜찮아 보였다. 9월에는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히,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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