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 잃고, 외양간도 못 고쳐...은행 ELS 판매 중단해야"

조선혜 2024. 1. 2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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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서 홍콩ELS 사태 토론회...피해자 몰려 넓은 곳으로 장소 변경도

[조선혜 기자]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에 취약한 한국 금융의 과제와 대안(ELS 사태를 중심으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 조선혜
 
"(2019년 사모펀드 사태 뒤) 소도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 격입니다.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중단해야 합니다."

판매액 19조원의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피해가 현실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과거 사모펀드 사태 이후에도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허용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키코(KIKO) 등 금융소비자 피해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을 짚으면서,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에 취약한 한국 금융의 과제와 대안(ELS 사태를 중심으로) 토론회'에서 이 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발제에 나선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원금 보장을 기대하고 있는, 은행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고난도 금융상품의 판매는 중지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은행 요청에 ELS 판매 조건부 허용...설명 의무 미준수 가능성"

이어 "은행의 불완전판매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은행이 안정성만 강조하고, 위험성은 지나가듯 얘기하며 똑같이 판매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금융당국이) 여러 절차만 강화하면, 오히려 투자자 피해 구제에 있어서는 (당국의 조처가) 알리바이로 작동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난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등 사모펀드 사태 이후에도 당국이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허용한 것이 도화선이었다고 지적했다. 

김 상임대표는 "DLF 사태 이후 2019년 11월 금융위원회는 원금이 20~30% 손실 날 수 있는 고난도 사모펀드에 대해 은행 판매를 금지했다"며 "당시 ELS는 허용할지가 쟁점이었는데, 은행이 수익 저하를 우려하며 허용을 요청해 당국은 판매 원칙 강화 등을 조건부로 허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2019년 금융위가 내놓은 설명 의무 방안을 보면, 소비자가 원금 손실 구간은 얼마인지, 위험성은 어느 정도인지 등 상품 구조를 이해한 것을 말로 풀든, 글로 쓰든 하도록 돼 있다"며 "그런데 (은행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은행들이 인공지능(AI) 목소리로, 빠른 속도로 상품을 설명했다는 제보가 많다"며 "파생상품투자권유자문인력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아닌, 판매 자격이 없는 AI가 고지한 것은 잘못"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DLF 사태 이후 강화한 투자자 보호 조처가 작동됐는지에 대한 점검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재가입자 오히려 의심 어려워...DLF 때도 고려해 배상"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에서 열린 '금융소비자 보호에 취약한 한국 금융의 과제와 대안(ELS 사태를 중심으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 조선혜
 
김 상임대표는 홍콩H지수 ELS 피해와 관련해 원금의 40~80% 배상 결정이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금융감독원은 대표 사례에 대해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20%)에 따라 최대 80%, 최저 40%로 배상을 결정할 것"이라며 "나머지는 분쟁조정위원회 배상 기준에 따라 자율 조정하도록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재가입자를 배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또다른 불이익에 해당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재가입자의 경우 오히려 조기 상환에 따른 수익 경험이 발생해 ELS 상품의 위험성을 의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과거 DLF 배상 당시에도 최초 가입은 불완전판매로 보고, 10년 이내 투자 경험에 대해선 (배상비율에서) 5~10% 차감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장은 피해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토론회 시작 1시간부터 이미 인파가 몰리면서 더 넓은 공간으로 장소를 변경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키코(KIKO) 사태 등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로 인한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토론에 나선 백주선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는 "2007년 은행들은 수출 중소기업에게 '환율 차이를 보전해주는 안전한 상품'이라며 키코에 가입하게 했다"며 "여러분들이 겪은 패턴과 동일한 패턴으로 판매했던 파생금융상품"이라고 말했다. 

집단소송제,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한 이유

그는 "이런 일이 왜 이렇게 계속해서 반복되는지 화가 많이 난다"며 "ELS 상품은 2019년 은행들이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약속한 뒤 팔았지만, 그 행태는 오히려 더 심해졌기 때문에 그 책임이 더 무겁다"고 했다. 

백 변호사는 "홍콩H지수 ELS의 경우 본질적으로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설명 의무, 적합성 원칙 등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고위험 투자 상품에 대해선 반드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어제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회의가 있었는데, 여야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기관은 어떤 노하우나 혁신, 개발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결국은 돈 놓고, 돈 먹기 장사인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금융소비자에 전가된다"고 했다. 이어 "함께 대책을 마련해 피해 구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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