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나를 돌보고 사랑하기로 했다
[김형욱 기자]
▲ 영화 <세기말의 사랑> 포스터. |
ⓒ 엔케이컨텐츠 |
1999년 세기말, 낮에는 정직테크에서 경리 과장으로 일하고 퇴근 후에는 큰엄마의 한복집을 운영하는 김영미씨. 그녀의 유일한 낙은 회사에서 배송기사 구도영씨를 훔쳐보는 것이다. '세기말'이라는 별명처럼 어딘가 촌스럽고 칙칙한 영미는 자신감도 없고 심히 부끄러워 도영과 점심조차 먹기 힘들다.
그러던 어느 날, 큰엄마가 돌아가시고 도영이 체포되었으며 경찰이 영미를 찾아온다. 도영이 회삿돈을 횡령하고 있었는데 영미가 눈감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도영과 영미 둘 다 감옥에 갇힌다. 새천년이 된 후 상대적으로 빨리 출소한 영미 앞에 도영의 아내라는 유진이 나타난다. 유진은 영미에게 돈을 갚겠다고 하지만 영미는 거절하고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영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집은 큰엄마의 집이었는데, 그녀가 감옥에 간 사이 큰집 아들 그러니까 영미의 사촌오빠가 집을 팔아 버린 것이다. 갈 데 없는 영미는 유진의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돈 받을 때까지 지내며 얼굴 아래로 전신마비인 유진을 돌본다. 자연스레 유진의 이상한 가족 내막을 들여다보는데... 이 기묘한 동거는 어떤 식으로 흘러갈까?
사랑스럽지만 기묘하고 이상한 영화
임선애 감독은 대학 시절 디자인을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극영화 시나리오를 전공한 후 영화계로 진출해 오랜 시간 스토리보드 작가로 활동했다. 이후 각본 작업을 거쳐 2020년 < 69세 >로 장편 연출 데뷔를 성공적으로 이룩했다. 그리고 4년여 만에 영화 <세기말의 사랑>으로 돌아왔다.
<세기말의 사랑>은 사랑스럽지만 기묘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세상이 망한다는 새천년을 앞둔 세기말의 종잡을 수 없고 혼란스러운 사랑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일까.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아서일까. 평범하지 않은 그들이 한데 모여 사랑스러워지는 모습에서 뭔가를 느껴서일까.
영화는 20세기를 흑백으로 처리하고 21세기는 컬러로 처리해 대비를 분명히 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20세기가 무색무취의 암울한 옛날옛적 같다면 21세기는 오히려 촌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희망이 넘실대는 것 같다.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으니 혼란스럽지 않고 명확한 한편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관망하며 잠시 멈춤 상태인 듯하다.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불완전한 세기말과 새천년
그렇다, 세기말과 새천년은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그마치 1000년에 한 번 돌아오는 시기가 아닌가. 1년, 10년, 100년도 기념하는데 하물며 1000년이랴. 그때 그 시절 불안하기 짝이 없고 불완전해 보이는 인물의 이야기라면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겠다.
제조업체 경리과장으로 있으면서 탄탄한 듯하지만, 회사에선 못생겼다고 놀림받고 집에선 정작 아들은 돌보지 않는 큰엄마를 홀로 모시고 사니 실상 암울하기만 하다. 그런데 '사랑' 때문에 감옥에 갔다 오니 세상이 달라졌다. 아니 그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염색하고 옷도 컬러풀하게 입었다.
나아가 그녀가 감옥에 가게 된 '원흉'인 도영의 부인 유진에게 돈을 받을 때까지 함께 살면서 새 삶 이상의 것을 바라보게 된다. 전신마비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성격이 까칠하고 고약한 유진과 그녀를 도와주는 이들의 사연이 예사롭지 않다. 한없이 불완전하고 불행해 보이는 영미와 다른 차원으로 불완전하고 불행해 보인다.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기로 한다
영미는 육체적으로 유진을 돌보고 유진은 정신적으로 영미를 돌본다. 불완전하고 불행해 보이는 이들이 연대해 세상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나아가려 한다. 둘은 서로 덕분에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 하여 영미는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기로 한다. '이런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건 결국 나밖에 없지 않나.
그러고 나서 타인을 사랑한다면 빙퉁그리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보고 사랑하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랑에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같다. 물론 사람이라면 사랑해야 하지만 맹목적으로 잘못된 방향을 향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도영과 유진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사랑의 자격이라는 것이, 사랑의 방향이라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그들은 이미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또 자격이 없다는 것도 감수하면서도 서로를 향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 모든 게 사랑해서 생긴 일이고 사랑해서 만날 수 있었으며 사랑해서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되었고 사랑해서 사랑을 이어갈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서천 화재현장 찾은 윤 대통령, 상인은 안 만나... "불구경하러 왔나"
- "윤석열 자체가 싫다"던 북한이 1년만에 내놓은 '진심'
- "임금 8일치로 3개월 버텨, 무관심 속 신용불량 나락으로"
- 국힘 의원들의 속내 "한동훈, 윤석열보다 더 필요"
- "80년 5월 31일 국보위 임명장 받으러 간 날, 집권계획 감 잡았다"
-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들깨로 만든 연필
- 대통령실은 왜 이 '사진'을 보도하지 말라 했을까
- 갈등 봉합? 윤 대통령 만난 한동훈 "민생 얘기만 했다"
- [오마이포토2024] "핵 오염수 망언망동 정치인 국회를 떠나라"
- 녹색·정의 연합정당 2월 3일 창당 "사이비 제3세력과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