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 2.4조 펀드로 유동성 숨통 텄지만...
우여곡절 끝에 태영건설 워크아웃(재무 개선 작업)이 개시됐으나 건설업계에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려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롯데그룹에서는 롯데건설이 아픈 손가락이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지난해부터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리던 롯데건설은 태영건설 워크아웃으로 또다시 입길에 올랐다. 금융권 펀드 조성으로 유동성 위기론을 불식시키려 안간힘을 쓰지만 주주권 강화와 지배구조 이슈 등으로 과거처럼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은 녹록지 않다. 한일 양국 간 얽히고설킨 지배구조를 서둘러 정비하려던 롯데 입장에서는 속이 편치 않다. 롯데건설이 그룹 전체 유동성에 압박을 주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숙원 과제인 지배구조 개선도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다.
최대 2.4조 펀드로 위기론 불식
롯데건설 “우발채무 관리 자신”
금융권과 재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시중은행 관계자들이 롯데건설이 조성하는 최대 2조4000억원 규모 펀드와 관련 세부 조건 등을 협의하는 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초 메리츠금융그룹과 조성한 1조5000억원 규모 펀드에 시중은행 지원을 받아 우발채무 문제를 해소할 계획이다. 올 1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미착공 PF(브리지론) 3조2000억원 가운데 2조4000억원은 이르면 1월 말 시중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 펀드 조성으로 본PF 전환 시점까지 장기 조달 구조로 연장한다. 나머지 8000억원은 1분기 내 본PF 전환 등으로 PF 우발채무를 해소한다는 게 롯데건설 계획이다.
롯데건설은 ‘제2의 태영건설’로 입방아에 오르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하나증권이 “롯데건설이 PF 우발채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하자 “충분한 유동성 확보로 PF 우발채무 관리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날을 세웠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롯데건설에서 올 1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미착공 PF 규모는 3조2000억원에 달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롯데건설 PF 우발채무의 광역시·지방 비중은 50%를 웃돈다. 반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롯데건설 현금성 자산은 약 2조3000억원, 1년 내 만기가 오는 단기 차입금은 2조1000억원이다. 롯데건설 자체 현금 여력으로는 PF 우발채무 대응이 매우 어렵다는 게 시장 중론이다. 롯데건설은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은 1조8000억원으로 대부분 연장 협의가 완료됐다”며 “올해도 우발채무 1조6000억원을 줄여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권에는 펀드 조성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PF 우려가 불거질 때마다 동원되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롯데건설은 재계 6위 대기업 집단 계열사이므로 신용 보강 등을 거쳐 한 자릿수 금리로 펀드 조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롯데건설을 향한 그룹 유동성 지원이나 향후 보증 계획 등을 면밀히 점검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 전했다.
부동산 업황 회복 변수
펀드 조성이 일단락되더라도 PF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미착공 PF를 본PF 등 장기 구조로 전환하면 건물을 짓기 시작하고 실제 입주까지 2년 정도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다만, 부동산 업황이 변수다. 1~2년 뒤에도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부동산 투자 심리가 회복되지 않는 시나리오가 롯데건설 입장에선 부담 요인이다. 특히 지방은 대부분 사업장에서 대주단이 건설사에 책임준공과 조건부 채무 인수, 연대보증 약정 등 신용 보강을 줄줄이 걸어놨다. 롯데건설 측은 “준공 후 미분양과 책임준공 등은 건설업계 공통의 위기요인”이라며 “자금조달 구조 다변화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해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비어가는 롯데지주 곳간
지배구조 악영향 우려
그룹 총수인 신동빈 회장이 우려하는 것도 이 같은 대목이라고 재계는 지적한다. 특히 롯데그룹은 한일 간 복잡한 지배구조로 신동빈 회장의 실질적인 지배력에 제약이 따른다. 자칫 계열사 유동성 위기가 그룹 전반으로 옮겨 가 숙원 과제인 지배구조 정비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롯데 지배구조는 크게 광윤사 → 일본 롯데홀딩스 → 호텔롯데 → 롯데지주로 이어진다.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광윤사는 2015년 ‘형제의 난’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신동주 회장 지분율(50%)이 동생 신동빈 회장(39%)을 앞선다. 한일 롯데 실질적 지주사는 롯데홀딩스지만 현 지분 구조상 신동주, 신동빈 회장 누구도 확고한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구도다. 캐스팅 보트를 쥔 쪽은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28%를 쥔 광윤사가 아니라, 종업원지주회(28%)와 임원지주회(6%)다. 현 지배구조상 종업원지주회 등이 밀어주는 인물이 한일 롯데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다.
이에 비춰,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작금의 상황이 탐탁지 않다. 롯데그룹이 PF발 유동성 위기에 휘말려 지배구조 정비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서다.
지배구조상 급선무는 호텔롯데 상장을 서둘러 일본계 지분을 희석하는 것이다. 호텔롯데 상장으로 한국 롯데지주와 합쳐 ‘통합 지주사’를 설립하는 게 지상 과제다. 그러나 면세점 실적 부진과 일본계 주주 간 이해관계 등으로 단기간 호텔롯데 상장은 여의치 않게 됐다.
결국 ‘플랜B’로 롯데지주를 중심으로 한국 롯데 지배력 강화를 위해서는 주력 계열사이자 캐시카우인 롯데케미칼 역할이 중요했지만 롯데건설 사태로 이마저도 실타래가 꼬였다. 롯데지주 주요 수익원인 배당은 계열사 실적 악화로 감소 중이다. 롯데케미칼 자회사 롯데건설은 PF 이슈로 허덕인다.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등으로 2차전지 소재 밸류체인을 완성하겠다는 롯데케미칼 계획은 유동성 고갈로 차질을 빚는다. 최근에는 파키스탄 자회사 매각도 무산됐다. 현금 유입은 줄고 있는 반면, 계열사 자금 지원은 계속돼 롯데지주 재무 부담만 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는 시기로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는 롯데건설 사태가 여러모로 편치 않은 상황”이라 촌평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4호 (2024.01.24~2024.01.3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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