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거래, 증거 없다"는 러 대사에…외교부 "즉각 중단 강력 촉구"

박현주 2024. 1. 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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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신임 주한 러시아 대사가 북한과 러시아 간 무기 거래 혐의에 대해 "증거가 없다"고 한 것과 관련, 외교부가 "러ㆍ북 간 탄도미사일을 포함한 모든 무기 거래를 즉각 중단할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하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협력에서 국제적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러시아 측 주장을 사실상 반박한 셈이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가 19일 서울 서소문로 러시아 대사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외교부 당국자는 23일 중앙일보에 "정부는 미국 측과 긴밀한 공조 하에 탄도미사일 거래 등 러ㆍ북간 무기 거래 및 군사 협력 동향을 우려를 갖고 면밀히 주시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이미 수차례 밝힌 바 있듯이 러ㆍ북 간 탄도미사일을 포함한 모든 무기 거래는 다수 안보리 결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며 한반도를 넘어 전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로,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또 "정부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으로서 미국, 일본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해 러ㆍ북 군사 협력 문제에 엄정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노비예프 대사는 지난 1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그간 한ㆍ미 당국이 제시한 북ㆍ러 무기 거래 관련 정황 증거들에 대해 "익명의 누군가가 어디에선가 찍은 사진은 충실한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증거물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1718 위원회)에 제출해 그 안에서 전문적으로 토론하자"고도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보스토니치 우주기지를 참관하는 모습. 조선중앙TV. 뉴시스.


당시 지노비예프 대사는 한ㆍ러 양국 관계에 대해선 "한국이 러시아의 비우호국 중 우호국으로 되돌아가는 첫 사례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한ㆍ러 관계 관리는 우리 뿐 아니라 러시아 측에서도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한반도 안보와 직결되는 북핵 문제에 대해 건설적인 역할을 하는 대신 북한과 무기 거래를 지속하며 안보리 결의를 거듭 위반하는 현실을 겨냥한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을 통일을 꾀하는 동족이 아닌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정의한 것과 관련, 지노비예프 대사가 "실제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한 데 대해서는 "주한 대사의 언급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자 한다"고 반응했다. 주한 외교사절의 발언에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모양새를 연출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이는데, 남북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한 가운데 이런 특수성을 무시한 데 대해 다소 불편함을 드러낸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공개회의. 로이터. 연합뉴스.


한편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 회의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절대적 다수의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방해하는 핵심 원인으로 서방의 지속적인 우크라이나 정권 지원을 꼽는다"고 주장했다. 북한산 무기 사용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다. 이에 한국 측은 최근 방러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의 수행원이 들고 있던 서류에 ‘우주로케트연구소 쁘로그레스’ 등이 참관 대상으로 적혀 있었던 점 등을 들어 우려를 표했다.

이날도 회의에 앞서 한ㆍ미ㆍ일 등 46개국과 유럽연합(EU) 대사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북ㆍ러 무기 거래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북ㆍ러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북한의 무기 발전을 위한 통찰력을 줄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러시아가 소집한 안보리 공개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EPA. 연합뉴스.


라브로프 장관은 회의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이용해 러시아와 싸우고 있다"며 기존의 주장을 이어갔다.

이에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의 대가로 북한이 핵·미사일 관련 기술 등 군사 역량에 중요한 '무언가'를 받아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무기 개발·생산을 책임지는 고위 관료를 이끌고 러시아를 방문한 사실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당시 북한 대표단이 들고 있다가 언론에 우연히 포착된 문서에는 북ㆍ러 간 군사 협력 지속에 대한 관심을 시사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황준국 주유엔대사가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공식 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유엔 웹티비 캡처.


지난 16일(현지시간) 최선희가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북측 수행원이 들고 있던 서류에는 '우주 기술 분야 참관 대상 목록' 등이 적혀 있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수행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북ㆍ러 간 군사 협력 정황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9월에서 12월 사이 북한 나진항에서 러시아 선박 세 척이 화물을 싣는 위성 사진을 영국 정부가 최근 유엔에 제출했다고 가디언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나진항은 지난해 10월 백악관이 북ㆍ러 무기 거래의 주요 길목으로 지목한 곳이다. 북ㆍ러 무기 거래와 관련해 각국이 수집한 정황 증거를 제공 받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올해 초 연례 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한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으로 인해 바닥난 155㎜ 포탄에 대해 12억 달러(약 1조 6000억원) 규모의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23일(현지시간)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나토 본부에서 포탄 공급 계약 체결을 발표하면서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기 위해선 생산량 증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22일(현지시간) 가디언이 입수한 미공개 영국 국방 정보 보고서에는 러시아 선박인 마이아호, 앙가라호, 마리아호 등 세 척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 사이에 북한 나진항에서 컨테이너를 싣는 장면이 담겼다. 가디언 캡처.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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