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예술가 무허 정해창의 시선
눈앞의 사물을 탐미하는 사진가의 시선을 좇는다. 아름다운 꽃에서 탁상 위의 램프와 작은 목장승 모형으로, 다시 여린 가지에 핀 흰 꽃잎으로. 진득하면서도 자유로운 흑백의 스틸 라이프는 무허 정해창이 20~30년대에 촬영한 사진들. 당시 정해창이 직접 사진집을 발간하기 위해 모아둔 ‘더미 북’을 후손과 프린트마스터 유화를 비롯한 복원 전문가들이 발굴하고 복원한 책 〈Junghaechang: Landscape/Still Life〉에 실려 있다. 사진을 선보일 기회가 공모전과 단체전뿐이었던 1929년, 22세의 정해창은 “예술 사진은 다른 사람에게 순위가 매겨져 평가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개인 사진전을 열었다. 1929년 서울 소공동의 광화문빌딩에서 연 전시 〈예술사진개인전람회〉는 1929년 3월 28일 자 〈조선일보〉에 조선 최초의 사진 개인전으로 소개됐다. 도쿄 유학생 출신의 사진예술가였던 정해창은 자신의 첫 전시에 풍경과 정물 · 인물 등 50여 점의 사진을 선보였는데, 특히 작품에 붙인 이름이 인상적이다. ‘살롱 픽춰’. 서예가와 전각가, 불교미술을 연구한 지식인으로도 활약했던 정해창은 1939년 네 번째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열 때까지 12년간 독자적으로 사진예술 활동을 펼쳤다. 자신을 피사체로 삼은 상반신 누드 자화상을 비롯해 강렬한 예술적 자의식을 담아낸 여러 점의 자화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암울했던 시대를 관통한 ‘모던 보이’의 시선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보통의 대상을 자유롭고 온기 있게 담아내 100년 전의 일상 미감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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