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하다" 욕 먹는 빌런 있어야 뜬다…독해진 요즘 연애 예능

어환희 2024. 1. 2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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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전편 공개된 넷플릭스 예능 '솔로지옥 3'은 시즌 최초로 누적 시청시간 7000만 대를 기록했다. 사진 넷플릭스


“저건 정말 마이너스(-) 행동이네요.”
지난 9일 전편 공개된 넷플릭스 11부작 예능 ‘솔로지옥 3’. 한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쟤, 얘, 얘”라고 지목하자 스튜디오에서 패널로 이를 지켜보던 배우 이다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같이 말한다. 이어 다른 패널들도 “매너가 없었던 것 같다” “무례하다”며 공감한다.

지난 2021년 시즌1을 시작으로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대표 격으로 자리 잡은 ‘솔로지옥’은 최근 공개된 시즌 3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뒀다. 첫 주 공개 이후 넷플릭스 글로벌 TV쇼(비영어) 톱10에 4위로 진입했고, 시즌 최초로 누적 시청시간 7000만 대를 넘겼다. 6000만 대 시청시간에 머문 이전 시즌과 달라진 점을 꼽자면, 빌런(villain) 캐릭터의 등장이다.


시청률·화제성 몰고 오는 예능 속 빌런


티빙 예능 '환승연애 3'는 다양한 이유로 이별한 커플들이 한 집에 모여 지나간 연애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마주하며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 프로그램이다. 사진 티빙

악당 또는 악역을 일컫는 빌런은 연애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예능적 요소가 됐다. 여러 이성을 두고 간을 본다거나 예의에 어긋난 말을 하는 등 빌런의 행동과 발언이 화제가 되면, 프로그램의 존재감도 함께 높아진다. 일례로 2021년 1기를 시작으로 최근 18기까지 방영 중인 연애 예능 ‘나는 솔로’(SBS Plus·ENA)는 강력한 빌런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였다. 지난해 방송된 16기 돌싱 특집에선 출연자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방송분(9월 27일)에서 4.1%(닐슨)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연애 예능 속 빌런은 프로그램 형식의 다양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인 짝짓기와 리얼리티 예능 열풍이 맞물리면서, 연애 예능 프로그램은 더 이상 트렌드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다”면서 “플랫폼 다양화로 콘텐트 수요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제작비를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안전한 기획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콘셉트가 겹치면 안 되니 출연진을 세분화해서 차별화를 두려는 시도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강하게 일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당초 젊은 남녀 위주였던 일반인 출연자의 범위는 다양해졌다. 헤어진 과거 연인이 나오기도 하고(티빙 ‘환승연애’) 10대(넷플릭스 ‘19/20’, 티빙 ‘소년 소녀 연애하다’)부터 동창(MBC ‘학연’)·돌싱(MBN ‘돌싱글즈’)까지, 출연 대상의 폭이 넓어진 만큼 각양각색의 관계와 삶을 다루게 됐다. 여러 사연과 상황을 가진 일반인들이 출연하면서 연애 예능은 청춘 남녀의 이상적인 로맨스를 넘어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연애를 보여주게 됐다.


“빌런 넘치는 갈등 상황은 곧 현실 반영”


SBS Plus와 ENA에 방영되는 예능 '나는 솔로'는 강력한 빌런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였다. 사진 SBS Plus, ENA

연애 예능이 현실에 밀접해질수록 예능 속 빌런은 다양해지고, 임팩트가 더욱 강해졌다. 특히 관찰을 전제로 하는 리얼리티 예능에서 이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다 보니 빌런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다. 빌런의 특성이 드러나도록 편집하거나, 빌런의 출연 분량을 일부러 늘리기도 한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예쁘기만 한 연애는 지루하고, 현실에도 없다. 결국 현실은 빌런의 등장으로 다양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연애 예능이 이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리얼리티 예능의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짚었다.

‘솔로지옥’ 김재원 PD는 “(출연자의 “쟤, 얘, 얘” 발언을 듣고) 현장에서 귀를 의심했다”면서도 “러브 라인과 관련된 것은 그대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무례했지만, 관심 있는 이성을 향한 마음이기에 편집할 수 없었다. 편집 됐다면 왜 여자들이 화가 났는지 등 맥락을 알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다. 이어 “발언 이후, (아무도 관심을 안 줘서) 분량이 없겠다 싶었는데 (여성 출연자 마음의) 불씨가 하나하나 살아나더라. 불사조 같은 상황을 보는 재미가 컸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주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패널들은 빌런 출연자들을 향해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사진 SBS Plus, ENA

빌런의 예능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패널들의 반응이다. 패널들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선을 넘는 발언과 행동을 한 출연자에 일침을 가하거나 화를 쏟아내기도 한다. 하재근 평론가는 “TV 예능의 일반적인 속성은 비난을 줄이고 최대한 좋은 쪽으로 포장하는 것인데,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이 프로그램 후기를 공유하고 유튜브 등에서 여과 없이 분석하는 지금 시대엔 포장만 할 수는 없다”며 “패널들이 상황에 맞는 반응을 하고, 시청자의 마음을 대변할수록 프로그램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빌런이 활약할수록 연애 예능을 소비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설렘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분노와 짜증이라는 또 다른 자극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뭘까.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연애 예능에서 동일시 효과는 중요하다. 그간 출연진과 나를 동일시해서 대리 만족하고 설렘을 느꼈다면, 빌런이 나타난 이후엔 그 상황과 내 생활 반경을 동일시해서 보게 된다”고 분석했다. “내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감정 이입을 하게 되고, 빌런의 찌질한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식으로도 프로그램을 소비하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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