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에게 '실패는 의무이고 권리이며 자유'입니다

장순심 2024. 1. 2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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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자 2024] 결과에 집착 없이... 어제에 견주어 오늘은 조금 더 '태연하게' 살겠다

네 글자 2024'는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기획입니다. 2024년 자신의 새해의 목표, 하고 싶은 도전과 소망 등을 네 글자로 만들어 다른 독자들과 나눕니다. <편집자말>

[장순심 기자]

계묘년(癸卯年)의 해가 넘어가기 직전, 늘 찾아보던 온라인 채널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강의를 하나 들었다. 강의에서 우리의 인생을 구성하는 네 가지를 소개했다.

'반복되는 일상/ 일상 속 작은 경험/ 나를 돌봄/ 특별한 경험.'

요지는, 꾸준한 글쓰기를 위한 소재는 특별한 것이 아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해를 넘기는 시점 때문이었을까, 그 내용이 내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글쓰기 (자료사진)
ⓒ 픽사베이
연말이면 으레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새로운 소망, 새로운 계획, 새로운 도전 등. 특별한 의미를 담기 위해서는 새로워야 하고 남과 다른 특별한 무엇을 계획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거창한 구호, 신선한 희망, 입에서 입으로 오가는 무한한 구복 의식까지.

나이가 드니 무한하게 확장되던 생활 반경이 좁아지는 것을 느낀다. 지난해와 새해, 어제와 오늘의 경계도 선명하지 않다. 그날의 계획, 주간 계획, 한 달의 계획은 늘 세우던 대로 꾸준히 이어지는데, 딱히 올해의 계획이라 정할 것은 없는 것 같다. 그저 매일의 삶을 묵묵히 마주할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새해가 특별한 것 같아서 좋았던 기억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특별한 삶은 가볍지 않았다. 팔짝 뛸 정도의 기쁜 일은 묵직한 슬픔과 함께 찾아왔다. 게다가 적지 않은 나이의 특별한 일상은 점점 더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이런 이유로 언제부턴가 새해의 목표가 거창하고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늘 같은 일상을 또박또박 짚어 나가는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과 내일, 새해도 그런 날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이제는 삶이 순조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거라 믿는 삶은 환상이라는 것도. 위태로운 일상과 어긋난 계획도 결국 나를 만드는 중요한 세계라는 것을 이제는 선선히 인정한다. 글쓰기 강의에서 말하듯이, 버려지고 흩어진 일상들이 오히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나를 돌보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무엇을 배우고 높은 단계에 도달하고 자격증을 획득하고 사람들이 인정하고, 그래야만 나를 잘 돌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여러 이유로 배제되었던 배움의 목록은 아쉬움을 남겼고, 도전을 시도했어도 완성형이 아닌 채로 어물쩍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방치되거나 소외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나에게 언제나 충실했다.

충실히 보낸 한 해... 올해는 더 천연덕스럽게

지나고 보니 2023년의 한 해를 그렇게 살아왔다. 비록 미완일지라도 마음에 담으며 만족했다. 너무 절실하지 않고 애쓰지 않는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절실함이 크면 실망이 컸고 애씀이 다하면 후유증이 오래갔다. 그렇게 해서 수수하고 조촐한 행복감으로 나를 채우며 살았던 것 같다.

해서, 2024년 갑진년(甲辰年)의 특별한 계획은 없다. 오늘을 어제와 같이 천연덕스럽게 살아내고 싶다. 어제처럼 '태연하게' 살기, 2024년의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아침에 무기력하지 않은 모습으로 눈을 뜨고 저녁이 되면 가족의 안위를 확인하며 잠에 푹 드는 것이 나의 목표다.
 
 따뜻한 커피 한 잔.
ⓒ 언스플래쉬
 
그러는 일상 가운데 책이 있고 음악이 함께하면 좋을 것 같다. 내게 꼭 맞는 카페에서 매일 따뜻한 커피를 공수할 수 있으면 족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나서게 될 집 밖의 풍경이 매일 새롭게 다가오길 기대한다. 그런 것들이 점점 딱딱해지는 나의 가슴을 조금은 말랑말랑하게 녹여주겠지 싶다.  

물론 '태연하게' 살아가는 데 어려움도 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문제는 결국은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 나는 청년은 분명 아니고 장년은 통과한 것도 같고, 그런데 노인인지 아닌지는 애매한 나이이다.

여하튼 베이비부머 세대의 상당수가 노후의 생활비를 충당할 정도의 소득을 갖추지 못했다는 발표나 어떠한 현금 소득도 준비돼 있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보고는 강박적으로 나를 돌아보게 한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무언가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쩌면 태연하게 살고 싶은 나의 목표에 가장 강력한 장애물일지도 모른다. 남들의 시선은 애써 외면하면서도 스스로에 의해 흔들리는 나는 속이 시끄럽다. 이런 상태라면 이미 이순(耳順)의 나이지만 지천명(知天命)은커녕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도 어림없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실이라서 더 '태연하게' 살아 내고 싶다. 시치미 뚝 떼고 어떤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편안함을 가장하며 올해도 잘 살아 보고 싶다. 어제에 견주어 오늘은 조금 더 태연하게 넘길 수 있기를 나는 소망한다.

최재천이 쓴 <실패를 해낸다는 것(2022, 민음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생은 수많은 시행착오의 축적이다. 마치 모자이크처럼 실패와 성공이 교차해 가며 나의 본모습을 그려 나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하나하나의 행위와 그 결과에 집착하고, 조급증에 빠진다. 실패는 의무이자, 권리이자, 자유임에도 누군가는 실패라는 족쇄, 성공이라는 강박에서 살아간다'라고.

책에서 말하는 대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나에 이르렀다. 그간의 무수한 실패가 나를 주춤하게 했지만, 이제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고 싶다. 2024년 올해 나의 실패는 의무이고 권리이며 자유다. 주눅 들지 않고 정말 태연하게 잘 살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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