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자체가 싫다"던 북한이 1년만에 내놓은 '진심'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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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
ⓒ 연합뉴스=조선중앙TV 화면 |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윤석열 인간 그 자체가 싫다"던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이례적으로 새해 1월 2일 <로동신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내는 신년 메시지라는 것을 발표했다. 김여정은 윤석열 대통령의 "사유 능력과 인격이 매우 의심"된다고 하면서도 그의 대북정책을 '찬양'했는데,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임을 강조했다.
"북 정권과 군대는 '소멸해야 할 주적'으로 규정하고 떠들어주었기에… '민족의 화해단합'과 '평화통일'과 같은 환상에 우리 사람들의 눈이 흐려지지 않게 각성시킬 수 있었...다."
김여정의 신년 메시지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더 이상 '민족의 정' 같은 것에 매이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적은 문 대통령 스스로에게도 뼈아픈 대목이다. "우리와 마주 앉아 특유의 어눌한 어투로 '한 핏줄'이요, '평화'요, '공동번영'이요 하면서 살점이라도 베여줄 듯 간을 녹여내는 그 솜씨가 여간이 아니었다"고 문 대통령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의 유화적 대북정책에 북한 지도부가 사실상 '놀아난 것'임을 자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여정의 신년 메시지에 이어 1월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 대단결"과 같은 표현을 삭제하고 북과 남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8천만 겨레', '삼천리 금수강산'과 같은 낱말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남한은 더이상 화해의 상대가 아닌 불변의 주적"이며, 남한은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헌법에 명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최고인민회의는 북남대화와 협력의 창구였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기구 폐지'라는 결정서를 채택했다. 북한은 "80년간의 북남 관계사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반도에서 병존하는 두 개 국가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우리 공화국의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했다고 밝혔다.
빈손으로 돌아섰던 김정은의 심정
김정은이 선대 수령들의 대남 통일정책 폐기와 민족적 정체성을 공식 부정하고, 남북을 두 개 국가로 공식 선언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김여정은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남한을 방문했다. 김여정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며 한 첫 인사말은 "통일의 주역이 되십시오"였다. 이 말 속에는 남북문제 해결을 통해 총체적 난국을 돌파하려는 김정은의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하지만 남과 북이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두 손을 맞잡기엔 수십 년간 쌓아왔던 불신의 장벽이 너무나 견고했고 끝내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남이 제멋대로 그어놓은 분단선을 스스로 해체할 능력과 주인의식(남한의 경우)이 결여된 '비주체'였다. 여러 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 싱가포르와 하노이, 판문점 북미 정상회담은 TV 화면으로 생중계되었다. 이 모든 과정은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외세의 강력한 힘에 결박된 우리 민족의 현주소, 즉 우리 민족 스스로 민족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태임을 너무나 명료하게 각인시켜 주는 생생한 화폭이었다.
김정은의 처지에서 볼 때, 중국이 제공해 주는 비행기를 얻어 타고 싱가포르까지 가야 했고, 열차로 수만 리 대륙을 횡단하여 하노이까지 갔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그때 김정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가 느낀 약소국 지도자의 설움과 열등감은 자신을 북미 회담장으로 끌어내는 데 주된 역할을 한 문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으로 환치되어 분노의 치를 떨었을지도 모른다. 김정은의 분노는 훗날 2020년 6월 16일 14시 50분경 김여정의 지시에 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폭발되었다.
당시 문 대통령 지지율이 70%까지 육박할 만큼 간절했던 우리 국민들의 평화통일 염원도 좌절되었다. 리선권 통일전선부장이 남한 회장들을 향해 "냉면이 목에 넘어갑니까?"라고 한 발언은 남한 언론에서 괜한 시빗거리가 되었지만 사실 남북이 손잡고 할 일이 많다는 꿈에 부풀어 엉겁결에 한 '실언'이었다. 남북 정상회담의 훈풍 속에 분단 사상 최초로 삼성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회장들이 대거 방문하여 민족의 성산 백두산 천지에까지 올랐으니, 그들이 북한에 투자하면 북한 경제를 추스르고, 통일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는 북한 인민의 희망과 기대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미완으로 남은 자주국방의 꿈
정권이 바뀌고 현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 기조와 한미일이라는 외세와의 공조가 강화되어 갈수록 '민족'이라는 동질적 개념이 들어설 자리 또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 북한의 '민족' 개념 폐지는 민족정체성·국가정체성이라는 분열적 자아에서 탈출하여 국가정체성으로 고착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현실적 표현이다.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남한만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남한만을 겨냥하여 미사일을 개발하고 군사력 강화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분단과 냉전, 지정학적으로도 강대국에 둘러싸여 끊임없는 위협에 노출된 상태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북한의 처지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약자의 무기'를 필요로 한다. 더욱이 북한은 초강대국 미국과 코를 맞대고 있어 항시적으로 미국을 견제하고 방어해야 한다.
미국 국무부 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재임 시절 미국의 극동 정책과 관련해 "한국은 미국의 일본 방위를 위해 필요한 전초기지이며 일본 방위를 위해 한국 방위가 필요하다"고 서슴없이 뇌까렸다. 미국이나 일본의 방위를 위해 한반도의 전쟁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 극동 전략의 부속으로 군사적 자율권을 억제당하는 대한민국의 처지였지만,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을 비롯하여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래서 미국과의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지만, 자주국방을 실현하고자 했던 고뇌에 찬 노력은 실로 눈물겨웠다.
▲ 김윤희 /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위원 |
ⓒ 김윤희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윤희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주요 논문으로 <영생하는 수령과 그리움의 정치>(2016), <북한에서 '임수경 열광'과 도전받은 집단주의>(2022), <분단 가족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미수복지역 조할머니의 3대(三代)에 걸친 분단가족 형성사>(2022) 등이 있고, 공저로 <한반도시민론>(2022)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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