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과 사망의 순간에 대학병원 인턴이 하는 일
의사는 의과대학 6년(의학전문대학원 4년)을 졸업하고 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의 '전공의' 과정을 밟아 분야의 '전문의'가 됩니다. 류옥하다 시민기자는 한 대학병원의 전공의로 근무하면서 겪은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사는이야기로 담습니다. <기자말>
[류옥하다 기자]
[기사 수정 : 23일 오후 4시 6분]
알립니다
기사 편집 과정에서 사망진단서의 출처를 확인하지 못한 채 이미지를 기사에 노출했습니다. 개인정보 노출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당사자와 병원 측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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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irth_출생
병원에서는 매일 누군가 태어난다.
산부인과 수술실이나 분만실에서 몇 시간의 줄다리기 끝에 아기가 태어난다. 의료진이 엉덩이를 때리면 아기는 첫 울음을 내뱉고, 근육의 긴장도와 호흡 및 심박수를 확인한다.
▲ 신생아중환자실의 아기 |
ⓒ depositphotos |
소아과 인턴은 아기에게 첫 검사를 하는 의료인 중 하나이다. 신생아 선천대사이상 검사, 동맥혈 가스 검사(ABGA)를 위해 란셋으로 발뒤꿈치를 찔러 피를 뽑는다. 들리는 것에는 이상이 없는지 청력검사 기계를 이용해 자극음을 가하고, 이에 대한 반사음을 측정한다.
두 검사 모두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고통이다. 손가락 따기에 사용하는 바늘로 발뒤꿈치를 몇 번 찔리고, 귀에 헤드셋을 쓴 채 찢어질 듯한 잡음을 들어야 한다. 검사가 순탄히 진행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통통하고, 배부르고, 잘 자고, 성격이 온순한 아기는 검사가 수 분 만에 끝나는 반면 예민한 아기는 수 시간 동안 바쁜 인턴의 애간장을 태우고는 한다.
이제 아기는 세상으로 나올 준비가 되었다. 마취에서 깨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고 판단된 엄마는 신생아실로 향한다. 출산 때는 정신없이 잠시 스친 채 헤어졌다면, 이번은 제대로 된 첫 만남이다. 이때 아기와 엄마의 첫 대면을 중재하는 것 또한 의사의 막내인 인턴의 역할이다.
엄마 아빠가 들어오면 꽁꽁 싸맨 신생아가 담긴 인큐베이터를 끌고 나간다. 작은 충격에도 민감하기에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해야 한다.
"ㅇㅇㅇ 아기 어머님 맞으시죠?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
"눈 두 개, 콧구멍 두 개, 입 하나 잘 있습니다."
"손가락 다섯 개씩, 발가락 다섯 개씩 잘 있습니다."
"아기 상태와 첫 검사 결과는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습니다."
"연어반, 솜털, 몽고반점과 같은 피부의 소견은 자연스러우니 걱정 마세요."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아이는 지금은 괜찮아도 커가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겼다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아기 숨소리도 한 번 들어보실까요?"
"머리의 숨구멍(대천문/소천문)이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아기에게 젖 먹이는 시도를 한 번 해보시겠어요?"
찡하고 우는 엄마도 있고, 행복한 미소로 동영상을 찍는 아빠도 있다. 처음 아기를 안을 때 어쩔 줄 몰라 하며 어설픈 모습조차 괜스레 훈훈하다. '격앙'이라는 감정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물론 둘째, 셋째를 낳는 다둥이 엄마들은 익숙한 듯 편안하게 과정을 넘기곤 한다.
자궁은 안전과 의식주가 제공되는 곳이다. 그런 따듯한 곳을 떠나 추운 바깥으로 나오는 과정이 출산이다. 아기는 얼마나 무서울까? 혼란한 세상이지만, 아름답고 기쁜 일이 가득한 것이 또한 삶이다. 세상과 아기의 첫 만남을, 그 감격의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의사로서 큰 행운이자 보람이다.
D: Death_사망
병원에서는 매일 누군가 죽는다.
특히나 호스피스(Hospice) 병동은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이 보존적인 치료(conservative treatment)를 받으며 가족들과 함께 여생을 마무리하는 곳이다. 이곳을 방문한 이라면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호스피스 병동 전공의는 드레싱, 소변줄 교체, 손가락 관장, 비위관 삽입과 같은 치료를 종일 반복한다. 단순한 업무이지만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삶의 질을 위해 중요한 치료들이다. 이곳에서 막내 의사인 인턴의 주요한 업무 중 하나는 바로 '사망선고'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상태는 누가 봐도 상태가 눈에 띄게 악화되어 있다. 간 질환을 가진 사람은 배 가득 복수가 차거나 온몸이 누래지기도 하고, 신장 질환을 가진 사람은 온몸이 물 풍선처럼 붓는다. 이미 치매 등으로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경우도 많다. 피 검사, 소변 검사, 영상 검사 결과는 환자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다.
이제 환자는 가족과 함께 '임종실'로 이동할 차례이다. 쾌적한 크기의 이곳은 1인실로 온 가족들이 모여 환자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족들은 기도를 하고, 아직 환자의 정신이 온전하다면 유언을 남기거나 살아온 추억을 더듬고는 한다.
깊은 새벽, 환자의 심장이 멎는다. 숨을 멈추었다. 가족들이 울기 시작한다. 당직 전공의는 병동으로부터 사망선고 요청 콜을 받아 임종실로 향한다. 심전도 기계를 끌고 방문을 연다. 강한 진정제를 맞았다면 심장이 멎지 않아도 겉으로 보기에는 환자가 죽은 것처럼 보일 수 있기에, 심전도를 이용해 최종적으로 환자의 생체 신호가 없음을 확인한다.
환자의 심장의 전기 신호가 'ㅡ' 자가 되었다(flat). 이제 의사는 면허가 부여한 권한을 사용하여 사회적인 의식을 치러 사망을 확정 짓는다.
"심전도상 심장 활동을 보이지 않습니다."
"청진상 심장 소리와 호흡음이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환자분께 생체 징후를 관찰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십니까?"
"2024년 1월 17일 23시 00분 ㅇㅇㅇ 환자분께서 사망하셨습니다."
그렇게 생물학적으로 죽은 환자는 내 손에서 법적으로 사망한다.
B와 D 사이에서 순환하는 인턴
대학병원에는 출생(Birth)과 사망(Death)이 매일 반복된다. 그 B와 D 사이 인턴은 끊임없이 과에서 과로, 당직에서 당직으로, 병동에서 병동으로, 수술방에서 수술방으로 순환(Circulation) 하는 존재다.
수많은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음주운전하는 차에 치여 식물인간이 된 스무 살 뇌사 환자, 혈액암과 그 치료로 매번 만날 때마다 머리가 빠져가는 아이, 장이 천공되어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가지만 보호자 하나 없는 환자, 늦게 발견한 자궁경부암으로 아기와 남편을 둔 채 먼저 떠나는 엄마…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지만, 죽음은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죽음(끝)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삶(과정)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생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다.
호주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한 간호사 브로니 웨어(Bronnie wares)는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을 함께 하면서 느낀 것을 <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 : 죽을 때 후회하는 다섯 가지>라는 책으로 정리했다(국내에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으로 출간). 그에 따르면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다섯 가지를 후회한다고 한다.
1. 나에게 기대되는, 남들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진짜 삶을 살았어야 했다.
2.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말았어야 했다.
3. 내 감정을 더 표현하는 용기를 가졌어야 했다.
4. 친구들과 더 자주 연락했어야 했다.
5. 나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해줬어야 했다.
죽음은 생각보다 가깝다. 모두 그 사실을 잠시 잊은 채 하루하루를 나아갈 뿐이다. 그렇다고 침울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충분히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행복할 수 있다.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다는 것을 상기하며 살아간다면, 죽기 전 후회 없는 삶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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