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칼럼]북한은 통일도, 전쟁도 원하지 않는다
김정은, 푸틴과 밀착으로 태도 바꿔
그러나 한반도 전쟁 땐 부담
군사적 행동 중단 가능성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갑작스레 남한과의 화해를 위한 노력을 그만두겠다고 깜짝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과의 통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 1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헌법에 '동포', '화해' 등의 단어를 삭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헌법에 나오는 표현만 놓고 보자면 북한이 남한과 화해에 나서고 통일을 위해 노력한다는 게 어느 정도는 진실된 점이 있었지 않냐고 유추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완전히 불가능해진 셈이다.
대신 북한은 남한을 적대국으로 규정짓기에 나서고 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인 김정일이 한국과의 관계 관리를 위해 설립한 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을 폐지했다. 이후 북한이 평화통일을 위한 남한과의 모든 경제 협력, 대화, 대표단 교류 등을 중단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또 김 위원장은 최근 연설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는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한국, 미국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했다. 한미 합동 군사훈련, 미국 핵잠수함의 잦은 한반도 출현, 한미일 삼자회담 및 군사협력 수준의 증가 등이 구체적인 근거라는 주장이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 변화와 관련해 한국의 반응이 빠르고 직접적이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정은 정권을 반민족적·반역사적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우리에게 ‘전쟁’과 ‘평화’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위협하는 북한의 가짜 평화전술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80년 동안 분단된 두 나라가 여전히 전쟁 중이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북한의 공세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내막을 잘 살펴보면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동맹국인 미국에게도 매우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180도로 변한 태도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력 충돌이 임박했다는 뜻인 걸까.
북한의 태도가 변한 데는 부분적으로 러시아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최근 북한과 러시아 간의 관계는 역대 최고로 좋다. 지난해 가을 김 위원장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기차에 올라타는 장면이 연출됐다. 러시아 측으로부터 호화로운 환대를 받은 것이다. 이후 양국은 빠르게 협력을 늘려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을 지원하기 위해 탄약, 군사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그 대가로 북한은 식량과 석유뿐만 아니라 첨단의 군사력 보완을 위한 과학 정보, 인공위성, 장거리 미사일, 핵무기와 같은 지원을 받게 될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가까이에서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대담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과 관계가 복잡한 중국도 가만있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 간 친밀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 전쟁에 대해 끊임없이 계산하면서 평양의 주요 후원국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반도에서 수백만 명의 난민이 중국으로 몰려들 수 있다. 이는 중국 정부로선 골칫거리일 수 있다.
한동안 국제적으로 소외됐던 북한이 이런 이유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비호를 받게 되면서 입지가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간 도발적인 발언과 미사일 시험을 통해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고 양보를 요구하던 북한의 이전 방식이 앞으로 더 힘입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심지어 중동이 모든 세계의 주목을 받는 몇 년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김 위원장은 다시 복잡한 세계 안보 의제에 개입하고 싶어할 것이다.
올해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부에게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을 때,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놓고 어리석게도 머뭇거리고 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 지역에서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지난 가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이후 미·중 관계의 확고한 기반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도발적 움직임을 피하려는 방향으로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 군사훈련은 계속되겠지만 그렇다고 규모가 더 커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2027년이면 세계 3위 국방예산을 보유하게 될 일본은 연합훈련에 계속 참여하되 낮은 자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국방비 지출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서방의 비난을 받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는 않는 북한은 또 다른 미사일 실험을 강행할 것으로 예측된다.
최악인 점은 북한은 지원국에 힘입어 이전 6차례 지하 핵실험을 재개하거나 심지어 더 도발적으로 해상에서 강행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다시 국제무대에 복귀하고 싶은 열망을 드러내는 메시지를 내고자 하기 위한 차원에서다. 북한이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의 비참한 실패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혹독했던 3년간의 코로나19 봉쇄를 경험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가능성이 작다고 볼 수 없다.
좋은 소식은 북한 독재자가 자신의 새로운 중요성 인식을 활용하겠지만 남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중단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 좋지 않은 일이다. 다만, 미국이 이미 두 번의 전쟁에 휘말린 가운데 한반도 긴장 수위를 높이는 북한의 행동은 미국의 심기를 크게 건드릴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큰 위험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위협까지는 가하지 않을 것이다.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North Korea Doesn’t Want Reunification ― or War'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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