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인재 '각국도생']②TSMC에 500명 인재 요청한 美…동맹도 안 봐주는 인력 쟁탈전
투자 늘수록 인력 수급 문제도 커져
美, 새 반도체 일자리 58% 공백 예상
獨, 연평균 6.2만명 반도체 인력 부족
반도체 인재 확보는 각국의 생산시설 확장과 관계가 깊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대만, 유럽 등 각국이 반도체를 경제·안보 자산으로 여기면서 세계 곳곳에 반도체 생산시설이 생기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러 반도체 기업들과 각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인력 수급은 양적 확대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관련 인력 확보에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자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신설·확장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내놓은 뒤 단기간에 투자를 대폭 늘리면서 인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제조업 쇠퇴로 그동안 관련 인력을 키우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제조업 강화 전략으로 돌아서면서 인력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로 떠올랐다.
코트라(KOTRA)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해 발표된 반도체 분야 투자의 65%는 생산시설 확장에 쓰였다. 제조 분야에서만 미국 내 10개 주와 연관된 투자 계획이 나왔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는 유타주에 110억달러를 투자해 신규 생산시설을 세우며, 마이크로칩은 콜로라도주, 오리건주에 각각 88억달러, 80억달러를 투자해 생산시설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인텔은 새 공장을 짓기 위해 애리조나주와 오하이오주에 각각 300억달러와 2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마이크론도 아이다호주에 150억달러를 들여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선보이기로 한 상태다.
여기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는 애리조나주에 400억달러를 투자해 신규 공장을 세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세우고 있다.
미국에선 블룸버그,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을 중심으로 인력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상태다. TSMC는 애리조나 공장 가동 시기를 1년 연기, 2025년으로 제시했다. 공장을 가동할 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세 공정 구현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설치·운영할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대만에 500명 전문가 파견을 요청하기도 했다.
TSMC는 최근엔 애리조나 1공장에 이어 2공장 가동 시기도 늦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류더인 TSMC 회장 성명을 인용해 "3㎚ 생산 설비 가동 시점이 2026년에서 1~2년 늦춰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좀 더 확보하겠다는 게 주요 이유지만 인력 부족 문제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현지 반도체 일자리가 지난해 34만5000개에서 2030년 46만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 11만5000개 일자리가 새로 등장하지만 이 중 58%인 6만7000개 일자리에 공백이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미충원 일자리의 39%는 자격증 보유 또는 2년제 학위 기술자, 35%는 4년제 학위 엔지니어 또는 컴퓨터 과학자, 26%는 석·박사 수준의 엔지니어로 내다봤다.
이는 유럽에서도 당면한 문제다. 독일의 경우 인텔뿐 아니라 TSMC가 신규 파운드리 공장 설립에 나서는 등 유럽에서도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는 곳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인력은 부족하다. 신규 인력 충원이 제한적인 데다 점진적으로 은퇴 인력까지 늘고 있다. 독일 반도체 산업 내 엔지니어링 감독자의 33%와 전기공학 전문가의 28%가 향후 10~12년 안에 정년퇴직 연령에 도달할 것이란 현지 경제연구소 전망도 나왔다.
독일전기전자산업협회(ZVEI)가 의뢰해 진행된 연구 보고서를 보면 현재 독일 반도체 산업에서 연평균 6만2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ZVEI는 "숙련된 인력이 부족한 현상은 다른 산업에서도 나타나지만 반도체 산업의 경우 높은 수준의 기술과 전문성이 요구돼 단기간에 전문가를 확보하기가 더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를 살폈을 때 향후 부족 인력이 예상보다 더 클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인재 빼가기는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해 한 반도체 행사에서 "마이크론 인재는 인텔이 데려가고, 마이크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재를 데려간다"고 토로한 바 있다.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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