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잡는 '핵미사일'…차세대 방사성 표적항암제 개발경쟁

이춘희 2024. 1. 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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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방출약물 암에 투하
ADC보다 반감기 짧고
내성 거의 없어 단점 극복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는 표적 항암 치료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암세포에만 '독약'을 투하하는 항체·약물접합체(ADC)가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를 주도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방사능 방출 약물'을 암에 투하하는 방사성의약품(RPT)에 경쟁이 불붙고 있다.

ADC는 암세포와 붙는 항체와 암을 죽이는 독성약물을 결합해 암만 정밀 타격하는 ‘크루즈 미사일’로 불린다.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가 대표적이다. 치료 효과가 우수하지만, 항체의 반감기가 2~3주에 달해 몸속에 지나치게 오래 머무를 수 있고, 독성약물이 내성을 유발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활용한 RPT는 ADC의 단점을 극복하고 효과는 더 높인다. RPT는 방사능을 활용하기 때문에 흔히 '유도 핵미사일'이라고 비유한다. 암 환자에게 주사하면 처음엔 ADC와 비슷하게 암세포만 정확하게 탐지해 찾아간다. 암세포에 도착하면 방사성 동위원소가 방사선을 내보내 암세포를 공격한다. 반감기가 7~11일에 불과하고, 내성도 거의 없어 ADC의 한계를 극복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글로벌 빅 파마 중엔 노바티스가 RPT 시장을 선도한다. 2017년, 2018년 잇따라 RPT 개발사 두 곳을 총액 59억달러(약 8조원)에 인수하며 전립선암 치료제 '플루빅토'·신경내분비 종양 치료제 '루타테라'를 확보했고, 두 약 모두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특히 이 중 2022년 4월 플루빅토가 허가받으면서 RPT 시장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플루빅토는 환자의 사망위험을 38% 줄이고, 암의 진행이 없는 무진행 생존 기간(PFS)은 8.7개월로 기존 치료 대비 두 배 이상 늘렸다.

노바티스의 전립선암 치료 방사성의약품(RPT) '플루빅토' [사진제공=노바티스]

글로벌 RPT 시장은 2021년 65억달러에서 연평균 6% 성장해 2030년에는 112억달러(약 15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브리스톨 마이어스-스퀴브(BMS), 일라이릴리 등 다른 빅 파마들도 관련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BMS는 RPT 개발사 레이즈바이오를 지난달 41억달러(약 5조5000억원)에 인수했고, 지난 17일에는 레티오테라퓨틱스에 5000만달러(약 670억원)를 투자했다. 레티오는 알파 입자 방사성 동위원소인 악티늄(Ac)-225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알파 입자는 현재 환자 체외에서 쏘는 방사선 치료에 쓰는 베타 입자보다 에너지가 높아 효과적 암 치료가 가능하지만, 인체 투과가 어려워 기존 방사선 치료에 사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RPT를 적용해 알파 입자를 환자 몸속에 직접 주입하면 암 치료가 가능해진다. 일라이릴리는 지난해 10월 포인트 바이오파마를 14억달러(약 1조8760억원)에 인수했다.

국내에서는 SK바이오팜이 RPT에 적극 투자한다. SK㈜가 투자한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를 통해 Ac-225의 아시아 내 권리를 확보하면서 방사성 동위원소의 안정적 확보에 나섰다.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조달할 수 있는 점을 활용해 RPT 분야에 진출하기로 했다”며 “신약의 자체 개발을 포함해 사업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국내에서는 퓨처켐이 전립선암 치료제 'FC705'의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진단 제품으로도 쓰이는 만큼 전립선암 진단을 위한 'FC303'도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듀켐바이오, 셀비온 등이 RPT를 개발하고 있다.

다만 방사성 동위원소의 짧은 반감기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도 있다. 짧은 반감기는 몸속에 머무는 기간을 줄여 부작용 위험을 낮추지만 상업화에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생산된 지 며칠 내에 환자에게 투약해야 하므로 완벽한 '적시 생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약효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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