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천왕성 이모"라고 불러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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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니 아이가 이모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나뿐이었습니다.
나는 잠시 쭈뼛쭈뼛 거리다가 아이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아이 곁에 다다랐을 때 아이가 나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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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기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소화를 시킬 겸 집 근처 중학교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달리기 트랙을 따라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보였습니다. 나도 조용히 그 대열에 합류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장을 반 바퀴쯤 돌았을 때 한 꼬마 아이가 내 쪽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렸습니다.
"천왕성 이모! 이모는 천왕성이니까 이제부터 이 선을 따라서 걸어요!"
▲ 별처럼 빛나던 그 아이 |
ⓒ 임태희 |
나는 잠시 쭈뼛쭈뼛 거리다가 아이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 작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트랙의 하얀 선을 따라서 아이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아이 곁에 다다랐을 때 아이가 나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덩치 큰 사내는 저만치 앞서 뛰듯이 걷고 있었습니다.
"나는 해왕성이니까 여기로 걸을 거예요."
아이는 트랙 가장 바깥쪽 선을 따라 걸으며 말했습니다.
"이모는 천왕성, 나는 해왕성."
나는 소리 내어 웃으며 아이를 바라봤습니다. 아이는 태양계 행성 순서를 내게 야무지게 가르쳐주며 우리가 왜 바깥쪽 트랙을 따라 걸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이가 신고 있는 운동화에서 연두색 불빛이 번쩍거렸습니다. 밤인 데다 롱패딩에 붙어있는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아이의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목소리가 귀여웠습니다. 키가 내 허리에도 못 미칠 만큼 작은 것을 보면 유치원생인 듯했습니다.
한 바퀴를 거의 돌았을 때 아이가 신발을 질질 끌며 참새처럼 종알대기 시작했습니다.
"어이구. 아빠는 아직도 소화가 되려면 멀은 거야. 도대체 언제까지 빙빙 돌아야 하는 거야."
아이는 혼잣말처럼 한참을 투덜거리다가 참새가 휙 날아가듯 운동장 한가운데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운동장 중앙에 아이의 엄마와 할머니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서성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아이 가족들의 대화를 슬며시 엿들으며 계속 걸었습니다. 아이는 올해 여섯 살이라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말도 잘하고 참 똑똑하네요.'
이 말이 입안에 고여 맴돌았지만 왠지 수줍어서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 별이 빛나는 밤 |
ⓒ Pixabay |
걸으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밝은 도시 불빛에도 불구하고 그날따라 별들이 제법 많이 보였습니다. 별이란 참으로 신기하고 로맨틱한 존재입니다. 별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지요.
지금 하늘을 보세요. 별이 엄청 많이 보여요.
그날 밤은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어둡고 지루한 길도 별의 마음으로 걷는다면 빛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일깨워준 그 꼬마 아이가 걷는 내내 참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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