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한탄... 중국에서 유행하는 '특공대식 여행' [2024 신년 글로벌리포트 - 세계 장바구니 물가]
'장 보러 가기 겁난다'는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신선식품 지수 동향에 따르면 2년 사이 장바구니 물가가 25% 가까이 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다른 나라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2024년 신년특집으로 세계 각국의 장바구니 물가를 소개하는 '글로벌 공동리포트'를 기획했습니다. 통계수치에서는 담지 못하고 있는 생생한 실물 경제의 명암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박현숙 기자]
▲ 지난 12월 24일 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은 이날 누적 관객 수 1천만 명을 돌파해 천만 한국 영화 반열에 올랐다. |
ⓒ 연합뉴스 |
차례가 돌아와서 키오스크 화면을 터치했다. 운 좋게도 가장 뒷자리에 '딱 한자리가' 남아 있었다. 마지막 '확인' 버튼을 누르고 결제하려던 순간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영화표 한 장이 '무려' 1만5000원이었다. 너무 놀라 하마터면 키오스크를 상대로 '쌍소리'를 할 뻔했다. (1~2초 정도 갈등은 있었지만) 바로 영화관을 뛰쳐나왔다.
시간을 때우려고 여기저기 골목과 시장을 배회했다. 서울에 올 때마다 자주 가던 생선구이 집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도 그대로고 식탁과 의자, 주인장도 그대로였지만 문 앞에 내걸린 가격은 달라져 있었다. 팬데믹 전 마지막으로 왔을 때 고등어구이 정식 가격이 7000원이었는데 지금은 1만 원으로 올라 있었고, 9000원이던 갈치구이 정식은 1만3000원으로 '신분 상승'이 되어 있었다.
서울은 이제 더 이상 내가 만만하게 기웃거리며 놀만한 곳이 아니었다. 서울 물가는 어느새 글로벌 최상위 '선진 물가'가 되어 있었다. 영화도 못 보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다시 (서울보다) '물가 싼' 베이징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 경기침체로 썰렁한 중국의 한 쇼핑몰 모습 |
ⓒ 박현숙 |
4층 영화관으로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올라갈수록 분위기가 싸하다. 곳곳에 셔터 내린 가게들과 '영업정지'라는 문구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호황기 때는 번호표를 받고 30분 이상 대기가 기본이었던 유명 식당도 빈자리가 널렸다. 팬데믹 3년 동안 망가진 중국경제가 2023년 이후 최악을 맞고 있다는 각종 통계와 지표들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는 풍경들이다.
서울과 달리 베이징 영화관은 한산했다. 2023년 12월 31일 마지막 날, 황금시간대인 저녁 7시경이었는데도 극장은 붐비지 않았다. 집에서 나오기 직전 예매했을 때도 빈자리가 많아 원하는 좌석을 지정해 쉽게 표를 살 수 있었다.
중국 영화관은 좌석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다르다. 스크린이 가장 잘 보이는 이른바 '황금 존' 구간은 대략 10위안(1만8600원) 정도 더 비싸다. 반대로 위치가 별로 안 좋은 좌석은 평균 10위안 정도 더 싸다. 내가 지정한 좌석은 가장 일반적인 가격으로 약 60위안(1만2000원). 연말 저녁 황금시간대 가격이라 좀 비싼 편이다. 평일 오전이나 오후 시간에는 약 40~50위안(7100~9000원 사이) 정도다. 물론 최신 시설을 갖춘 아이맥스 영화관은 한국과 비슷한 가격이거나 조금 더 비싸기도 하다.
요즘은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각종 인터넷 티켓 판매 플랫폼마다 경쟁적으로 할인 쿠폰을 발행해서 인터넷 발품을 부지런히 팔기만 하면 한국 돈 5000~6000원에도 얼마든지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들이 많다(한국도 통신사 할인 등이 있긴 하다). 한국에서 1만5000원으로 오른 영화 값을 보고 놀라 쓰러지는 줄 알았지만 베이징은 지난 3~4년 동안 영화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볼만한 영화도 별로 없고 줄 서는 손님도 없어서 오히려 폐업하는 극장이 늘어만 가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고도 극장 안 좌석은 빈자리가 많았다. 연말연시 휴가 기간 저녁 황금시간대이고 박스오피스 최상위권 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엄청나게 '풀죽은' 중국 경제의 현실이 영화관 스크린에도 투영되고 있는 셈이다.
▲ 경기침체로 썰렁한 중국의 한 쇼핑몰 내 식당가 모습 |
ⓒ 박현숙 |
고등학생인 두 아이가 '육식파'라 소고기를 두 차례 추가로 더 주문하고 내가 좋아하는 연근과 두부도 나중에 더 추가했다. 훠궈용 소고기는 너무 비싸지 않은 보통 종류로 100그램당 35위안(6500원) 정도다. 우리는 세트 메뉴에 포함된 고기 외에도 따로 소고기 300그램 정도를 추가 주문해서 먹었다.
맥주와 음료수도 시켰다. 하이디라오에서 자체 개발한 500㎖ 라거 맥주 한 병 가격은 8위안(1500원). 그보다 좀 더 비싼 병맥주는 500㎖ 한 병이 13위안(2400원)이다. 매운 훠궈를 먹다 보면 차가운 맥주가 술술 들어간다. 이래저래 추가 주문한 메뉴들과 맥주 두 병, 사이다 두 캔 등을 다 먹고 난 뒤 나온 가격은 약 560위안 정도. 회원 할인가가 적용되어 최종 결제한 가격은 500위안이 채 안 된다.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 돈으로 4인 가족이 배 부르게 훠궈 만찬을 즐겼다. 물론 어떤 재료를 시키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즐겨 먹는 훠궈 재료들이 대부분 포함된 것치고는 그다지 '사악한' 가격은 아니다.
거의 똑같이 구성된 훠궈 재료를 직접 장을 봐서 집에서 자주 해 먹기도 하는데 그때는 재료비가 식당 가격의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집 근처 마트에서 질 좋은 훠궈용 소고기가 500그램 한 팩당 우리 돈으로 약 1만3000원 정도고 나머지 야채 종류는 버섯, 배추, 시금치, 두부 등 5~6가지를 산다고 해도 우리 돈으로 2만 원이 조금 넘는다. 2023년 이후 각종 식품과 돼지고기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장바구니 체감 물가는 팬데믹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2023년 한 해 동안 우리 가족이 생활비로 지출한 내역만 봐도 예년보다 지출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조금씩 줄어든 부분도 있었다. 가장 눈에 띄게 나타난 변화는 엥겔지수의 증가다. 다시 말해, 전체 생활비 중 식비 등에 지출하는 비용이 가장 크고 문화생활에 지출하는 비용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입맛이 갑자기 고급스러워져 매일 스테이크에 비싼 와인을 마시기 때문에 엥겔지수가 증가한 것은 아니다. 입맛은 여전히 싸구려지만 가계소득이 전에 비해 줄어 들었고 이로 인해 과거에 비해 여행이나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걸 자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2023년 중국에서 가장 유행한 여행방식은 '도시 산책'이나 '특공대식 여행' 같은 것이다.
팬데믹과 미중관계 악화 등 여러 악재로 인해 부동산과 금융 등 각종 산업이 연쇄적으로 침체에 빠지고 일자리와 임금이 줄어들면서 가계소득이 줄어들자 중국인들은 당장 여행방식부터 소박하게 바꿨다. 해외여행을 가는 대신 국내여행을 주로 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걷고 또 걷거나 이리저리 메뚜기처럼 분주하게 뛰듯이 둘러보는 '가난한' 여행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우리 집도 갈수록 엥겔지수만 높아지는 추세다.
▲ 자주 이용하는 중국의 마트 |
ⓒ 박현숙 |
개인적으로 옷과 화장품 구입에 지출하는 돈이 거의 없고 따로 취미활동을 하거나 사교모임에 드는 비용도 없기 때문에 생활비 절약에 많이 도움이 된다. 아이들도 교복을 입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의복구입에 큰돈을 지출할 필요가 없다. 아이들 용돈은 따로 주지 않고 각자 스마트폰 내 위챗 카드에 매달 500위안(10만 원) 한도 내에서 쓸 수 있는 가족카드를 연결해 줬다.
자동차가 없기 때문에 보험료나 주차비, 유류세 등도 들어가지 않는다. 멀리 가지 않는 이상 대부분 근거리는 걷거나 공유 자전거를 이용한다. 공유자전거는 한 달 정기권을 사면 한 달 동안 11.5위안, 우리 돈으로 2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한 달간 시간과 거리에 상관없이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지하철은 보통 기본요금 4위안(750원) 내에서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고 버스도 기본요금 2위안(370원)으로 시내 어디든 갈 수 있다.
11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계속되는 겨울 난방철에는 월평균 약 15만 원 정도가 더 지출된다. 베이징의 난방비는 카드 충전식인데, 1도당 2.6원(490원)이다. 한 달 평균 우리 아파트 평수를 기준으로 약 300도 정도를 쓴다고 하면 매달 우리 돈으로 15만 원 정도가 난방비로 지출된다. 베이징시 정부는 주민들에게 매년 난방비 보조를 해주는데 주택 크기와 평수로 계산해 가정마다 다르다.
우리는 베이징에 사는 4인 가족 생활비치고는 비교적 저렴하게 지출하는 편에 속한다. 사치품을 사지 않는 소비성향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집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베이징에서 월세를 산다고 하면 이 정도 생활비로는 턱도 없다. 베이징 시내에서 4인 가족이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임대하면 최소 1만 위안(186만 원) 이상을 줘야 하고, 학군이 좋거나 고급 아파트 단지일수록 임대료는 더 올라간다.
최근 경기 불황으로 하락 추세이긴 하지만 베이징 임대료는 여전히 중국에서 상하이와 더불어 가장 비싸다. 때문에 직장 초년생들이나 미혼 직장인들은 여러 명이 아파트 하나를 임대해 비용을 나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주변 아파트 임대가격이 다소 내려가기는 했지만 눈에 띄게 하락하지는 않았다. 대신 아파트 가격은 부동산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이후 계속 대폭 하락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도시에 사는 중국인들도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고 구매 당시 대출 받았던 이자는 꼬박꼬박 갚아야 하지만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일자리와 임금이 줄어들자 더 이상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큰 짐이 돼버린 '한때' 중산층이었던 사람들이 속속 짐 덩어리 부동산을 처분하고 있다. 매수자가 나타나면 다행이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팔기도 쉽지 않아 애를 태우는 사람들이 많다.
▲ 2022년과 2023년 중국 소비자 물가지수 변화 그래프 |
ⓒ 중국국가통계국 |
중국 국가통계국 발표를 보면, 중국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023년 7월 약 0.3% 하락한 것을 기점으로 연말까지 계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생산자물가지수도 지난해 내내 마이너스 2~3%대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인플레이션율이 보통 소비자 물가지수를 기준으로 계산되고, 소비자 물가지수는 주로 각종 식료품과 전기 및 통신료, 임대료, 가스와 석유와 같은 원자재 등의 가격 변동률을 반영한다고 하면 중국은 지난 한 해 동안 소비자물가지수가 지속적인 하락을 경험했다. 중국 소비자물가지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식품 중 하나인 돼지고기 가격이 전년 대비 약 30% 이상 큰 폭으로 하락한 것도 그 원인 중 하나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물가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식품 및 에너지 가격의 하락을 꼽았다. 식료품 가격은 2023년 12월에 전년 동기대비 3.7% 하락했다고 밝혔다. 물가는 하락했지만 실업률은 증가하고 인구는 줄어들었다.
이날 국가통계국 발표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도시 실업률은 5.1%이고 청년실업률은 14.9%였다. 16~24세 사이의 청년실업률 통계는 지난해 6월 약 21%라고 발표된 후 통계발표를 중단했었다. 하지만 17일 발표된 새로운 도시 청년실업률 통계에서는 16~24세의 청년 인구 중 전체 60% 이상을 차지하는 각종 학교 재학생 청년들의 실업률 통계는 제외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새로운 실업률 통계방식의 변화를 둘러싸고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청년 실업률을 은폐하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작년 7월까지만 해도 학생과 비학생 등을 다 포함한 모든 청년 실업률 통계가 약 21%였는데 새로운 통계방식에서는 14.9%로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가통계국은 전반적으로 실업률이 갈수록 안정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고 구직상황 및 전체 경제 상황이 점차 호전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자회견 발표문 내용에 댓글을 단 수많은 누리꾼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은 "내 주변 친구와 동료들 대부분 다 실직자들이거나 조만간 잘리게 될 사람들인데 그들은 과연 이 통계 안에 포함된 것이냐! 우리들은 다 실업률에 포함되지 않는 농촌 청년들인가 보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긴 코로나 팬데믹은 끝이 났지만 중국인들이 체감하고 있는 경제불황 팬데믹은 더 불길한 예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돈이 흐르지 않는' 베이징 거리에는 다시 찾아온 뿌연 미세먼지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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