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교회에서 왔어요~"…반찬 나눔 26년, 고독사가 사라졌다[탈종교 시대]⑦

서믿음 2024. 1. 23.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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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어려운 이웃에 반찬 나눔
2010년 남편 잃고, 홀로 사역 감당
자원봉사자, 매주 직접 반찬 만들어
파주 법원읍 100여 가구 방문
"기초수급자보다 숨겨진 사각지대가 더 위험"
"4년째 고독사 0명, 사역 지속하는 이유"

편집자주 - 대다수 종교에서 예비 성직자 감소와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인구 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물질을 중시하는 시대 가치의 영향도 주요한 이유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종교계는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고 있을까요. 아울러 지금 시대에 종교는 우리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며,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요. 천주교, 불교, 기독교의 속사정을 들여다봅니다.

매주 토요일 이른 아침. 파주시 법원읍 산자락에 자리한 은빛교회는 음식을 만드는 자원봉사자들의 손놀림으로 분주하다. 10여명가량의 자원봉사자가 80~100인분의 음식을 만들어 직접 집을 방문해 전달한다. 3일 분량의 반찬을 든 자원봉사자들은 어르신의 상냥한 말벗이 되어 드림은 물론, 생활의 필요를 살펴 꼼꼼히 기록한다. 그런 내용을 수합해 필요를 채우는 역할을 책임지는 건 은빛교회 강인희 목사. 양식이 떨어져 배곯지 않도록, 외따로이 고립되어 외롭지 않도록, 삶의 여러 문제에 치여 낙심하지 않도록 삶 전반을 살뜰히 살핀다. 벌써 26년째, 파주 법원읍에 새로 자리 잡은 지 20년째다. 사역공동체란 정체성을 바탕으로 교인 늘리기에는 관심이 없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따스한 손길을 연결하고, 그런 온기에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을 가까운 교회로 인도한다. 안정적인 후원이 담보된 건 아니다. 한 주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때마다 돕는 손길로 반찬나눔이 이어지고 있다. 반찬을 매개로 복음이 전해지길 소원하지만, 목사란 타이틀을 앞세우지 않는다. 처음엔 그냥 가서 경청하고 공감하고 위로한다. 아직도 그가 목사란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에게 반찬나눔은 여유가 되어서 하는 자선이 아니다.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해야 하는 소명이다. 나를 부인하고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 동력은 무엇일까. 은빛교회에서 만난 강인희 목사에게 그 내막에 관해 물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자원봉사자들이 은빛교회에 모여 마을 어르신들에게 드릴 음식을 직접 만든다. [사진제공=은빛교회]

-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반찬을 나눠주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남편은 1996년부터 일산에서 어려운 분들께 반찬을 나눠드리기 시작했다. 저는 1998년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됐다. 당시 일산은 굉장히 낙후된 곳이었다. 장애 등 여러 이유로 학교에 못 가는 청소년이 많아, 비닐하우스에 공부방을 마련해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무료로 운영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많았기에 직접 차량 운행하면서 검정고시를 치르도록 도왔다. MBC ‘우리시대’에 나오면서 자원봉사 하러 오시는 분도 꽤 있었다.

- 지금은 파주 법원읍에서 자리 잡고 있는데.

▲당시 시청에서 비닐하우스 철거명령을 내려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일산이 개발되면서 복지관이 많이 생겨, 도움이 더 필요한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한 달간 마땅한 곳을 찾다 보니 2004년에 지금의 파주 법원읍까지 오게 됐다. 산속 벌판에 컨테이너를 들여와 반찬 사역을 다시 시작했다. 당시 이 지역에 조부모 손에 크는 이혼가정 자녀가 많아 공부방도 다시 문을 열었다.

- 일산에서 파주로 옮긴 후 상황은 어떠했나.

파주시 법원읍에 자리한 은빛교회에서 인터뷰 중인 강인희 목사 [사진=서믿음 기자]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재정적으로도 어려웠고, 이사하면서 거리가 멀어져 기존 자원봉사자의 도움도 끊어진 상태였다. 도움받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시는 어른들의 반감도 해결과제였다. 자주 찾아뵈면서 어렵게 어르신들 마음 문을 열었는데 2010년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어르신들이 남편을 많이 의지했기에 남편은 마지막 순간까지 어르신들이 충격 받으실 걸 염려했다. 사실 전 그때 모든 걸 정리하려고 했다. 생활비도 없고 빚도 많아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 다른 살길을 찾으려고 했다.

- 마음을 바꾼 계기가 있었나.

▲초등학교 방과후교실 선생님이라도 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문득 예수님께서 화려한 도시가 아니라 가장 작은 마을인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는 게 떠오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이곳이 베들레헴일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바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기업 회장님께서 (반찬나눔 내용을 담은) CTS기독교방송을 보고 찾아왔다며 큰 도움을 주셨다. 시한부 인생으로 죽기 전에 딱 2곳을 돕고 죽겠다고 생각했는데 방송에서 여길 보고 오셨다고 하더라. 너무 감사해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 반찬 나눔은 보통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주중에 제가 직접 방문해 상황을 살핀다. 이후 토요일에 봉사자들과 함께 반찬을 만들고, 봉사자들이 직접 반찬을 배달하고 말벗도 되어 드린다. 집을 구하고, 생활의 여러 문제 해결까지 모든 부분을 돕는다.

- 현재 어떤 분들을 돕고 있나.

▲107명가량의 어르신을 돕고 있다. 기초수급자(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많지만 그에 속하지 못한 어려우신 분들을 함께 돕고 있다. 사실 기초수급자의 경우 복지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져서 혜택이 많아졌다. 드러난 분들이라 여기저기 돕는 손길도 많다. 문제는 사각지대에 계신 분들이다. 부양 능력이 없는 가족이 있거나, 쓸모없는 땅 등이 재산으로 잡혀 기초수급자가 되지 못한 분들의 삶은 몹시 열악하다.

- 어떤 경우가 있나.

▲앞을 못 보셔서 청각에 의존하며 홀로 어렵게 생활하시는 분이 계신데, 수술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세균이 귀를 통해 뇌까지 퍼져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땅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수급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땅이라는 게 물려받은 작은 맹지(도로에 연결되지 않은 땅)인데 워낙 쓸모가 없어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읍사무소에서는 땅을 처분하라고 오라고만 하니 난감한 상황이다.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의 삶은 기초수급자보다 훨씬 열악한 경우가 많다.

-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인데.

▲진짜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을 연결해드리는 게 쉽지 않다. 저한테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주변분 들이 도움을 요청한다. 대개는 사각지대에 있는 진짜 어려운 분들이다. 그런 경우 ‘복지보다 먼저 가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에 따라 직접 나서기보다 복지를 통해 우선 해결하려 한다. 복지사분들의 업무를 존중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다만 사회복지 담당자마다 받아들이는 게 너무 다르다. 적극적인 분도 있지만 달갑지 않아 하는 경우가 많다. 제가 일거리를 늘린다고 생각한다. 형편이 너무 어려운데도 기초수급자로 지정되지 않아 직접 읍사무소를 찾아간 적도 있다. 담당자에게 “같이 (도움이 필요한 분의 집에) 가보자. 저 사람 오늘 자서 내일 일어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고 사정한 끝에 현장 확인하고 기초수급 혜택을 받은 경우도 있다.

각 봉사자들은 직접 만든 반찬을 들고 10~15 가구를 방문해 말벗이 되어 드린다. [사진제공=은빛교회]

- 꽤 오랜 기간 반찬나눔을 해 왔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

▲누군가가 집을 찾아와 준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변화를 부른다. 씻지 않고 누워만 계시던 분들이, 세수하고 면도하고 사람들 오기만을 기다리신다. 아이가 있는 봉사자 가정이 찾아가면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신다. 집 문을 연다는 건 마음 문을 여는 것과 같다. 그 안으로 관심과 사랑, 복음을 집어넣으면 사람이 놀랍게 바뀐다. 4년 전만 해도 매년 2~3명씩 고독사하는 분들이 나왔는데, 올해로 4년째 고독사가 없다.

- 그런 뿌듯한 경험만큼이나 힘든 기억도 많을 듯하다.

▲반찬을 가져다드리던 분 중에 평소 말씀이 없는 분인데 유독 그날 절 붙잡고 길에서 3시간을 넘게 이야기하신 분이 계셨다. 굉장히 활발하게 말씀하셨는데 다음 날 목숨을 끊으셨다. 다음날 찾아가도 문이 안 열리길래 ‘노크해도 반응 없으면 술에 취해 뵐 면목이 없는 것이니 그냥 가시라’는 말이 떠올라 그냥 넘겼는데, 며칠 뒤에 숨진 채 발견됐다. 충격이 너무 컸다, 그 분 친구가 취한 채 전화해서 ‘너 사람 살린다며 왜 사람 죽였어?’라고 따져 묻는 말에 한동안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안 그러시던 분이 그렇게 밝게 이야기하실 때 ‘미리 눈치를 챘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자책감이 있다. 현재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낙심될 법도 한데....

▲그럼에도 기쁨이 크다. 사람이 변하는 걸 보면 이 일을 놓을 수가 없다. 성경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말씀으로 살 것이요’라는 구절이 있는데 진짜 그렇더라. 물질로만 다 해결되는 게 아니더라. 반찬이란 매개체로 관심과 복음이 전해질 때 사람이 변한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 현재 직면한 과제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장에서 사람들을 돕다 보면 여러 도움이 필요한데 제3자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교도소에 가신 분의 경우 주변을 살피고 편지를 보내고, 영치금이라도 넣으려고 어디에 있는지 지자체에 문의하면 가족이 아니면 알려줄 수 없다고만 한다. 하지만 가족이 없거나 관계가 끊긴 분들이 대다수인지라 사실상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장례도 무연고 사망 여부를 알아야 그에 맞게 준비할 수가 있는데 어려움이 있다. 악용되는 경우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심으로 다가가는 경우 이런 부분이 잘 고려됐으면 좋겠다. 사람을 바로 세우기 위한 일이니까.

- '탈종교 시대' 기획 연재 끝 -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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