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人터뷰]박영선 "尹 강조한 반도체 클러스터,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나주석 2024. 1. 2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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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이 국가반도체委 만들어 논의해야
HBM 같은 고부가가치에 투자 필요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공개한 세계 최대·최고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방안’을 두고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반도체위원회’ 등을 만들어 민관이 종합적으로 반도체 대응 전략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지난 15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없이는 디지털을 얘기할 수 없다(There is no digital without chip)고 하지 않냐"라며 반도체 산업에 대해 국가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전 장관과 만난 날 윤 대통령은 경기도 수원시 소재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반도체관에서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을 주제로 세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열고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에 622조원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장관은 "622조원 투자도 중요하지만 물, 전기, 사람을 어떻게 갖추느냐가 반도체 용인 클러스터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디테일을 갖춘 정책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는 "G7프로젝트(우리나라 과학 기술을 ‘2000년대에는 주요 7개국(G7) 수준으로 진입시킨다’는 목표 아래 추진된 선도 핵심 기술 개발 사업)가 메모리 반도체 개발의 원동력을 제공했다"며 "지금은 정부, 기업, 학계를 망라해 국가반도체위원회를 만들어 전략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주권국가'를 공동 출간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반도체와 패권국가 전략 등을 연구하는 박 전 장관은 이달 ‘반도체 주권국가’라는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에서 ‘왜 반도체가 무기화되었는지 그리고 반도체 주권국가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이 대한민국의 운명과 미래를 어떻게 결정지을지’ 등을 다뤘다. 정치인이 반도체에 대한 책을 왜 썼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고 그를 만났다.

-반도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1990년대 초 제주도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만났다. 이 회장이 반도체가 앞으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것이라고 얘기하더라. 그때부터 관심을 가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 중국 대사를 하고 있던 노영민 비서실장으로부터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무섭다’ ‘곧 우리 업체들이 중국으로부터 추격당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메모리는 메모리대로 발전시켜야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제가 장관으로 있던 2019년에 발동을 걸었다. 당시 삼성 등에 설계 업체를 키우자고 제안했는데 6개월 동안 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ARM(영국의 반도체 설계업체)과 손잡고 10개 업체에 투자했다. 그중 지금 3개 업체가 설계 쪽으로 커졌다. ARM은 이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장했다. 우리로서는 아쉬운 대목이다.

-책을 보면 반도체와 관련해 ‘일본의 재무장’이라는 표현까지 하며 일본 산업계 동향에 주목하는 게 엿보인다. 일본과 미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는가.

△30년 전에는 일본이 세계에서 반도체 1위였다. 그걸로 일본은 주요 2개국(G2)까지 갔고, 미국을 위협했다. 미국이 엔화를 강제 평가절하한 뒤부터 한국이 (이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 30년간 잘살 수 있었다. 한국은 이렇게 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됐는데, 일본은 그 잃어버린 30년을 되찾으려 한다. 30년 전 일본은 실리콘의 섬이었는데, 다시 실리콘의 섬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미국의 결정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일본도 미국에 로비했겠지만 한국은 남북문제가 불안하고 대만은 중국과의 관계가 불안하니 일본은 일본이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동북아 지역이라고 선전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반도체가 군사 전략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대체 부지를 만드는 것이다. 가령 인텔은 지금 유럽에다 투자한다. 미국이 ‘반도체지원법(CSA)’을 제정한 1년 뒤 케네디스쿨에서 심포지엄이 있었는데, 로니 채터리 전 백악관 반도체조정관이 심포지엄에서 보여준 글로벌 공급망 지도에 한국과 대만이 없었다. 이 사람의 머릿속에 한국과 대만이 없다는 것은 반도체의 미래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이 담겨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 방안에 대해 조언한다면.

△성패는 디테일에 있다. 반도체 3대 조건인 물, 전기, 사람을 어떻게 갖추느냐가 핵심이다.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당초 계획보다 늦어졌는데 첫 번째 원인이 용수 문제였다. 대만 같은 나라는 기근 때 물이 모자라면 반도체에 쓸 공업용수를 먼저 공급할지, 아니면 사람이 먹는 벼를 짓는 농업용수를 먼저 공급할지가 정치권의 쟁점이었다. 통계를 보면 대만은 반도체를 우선으로 물을 공급했다. 이게 대만이 대표적 반도체 기업인 TSMC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를 보여준다. 전기도 10GW가 필요한데 이것은 한반도에서 쓰는 전기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지금도 삼성전자가 하루에 쓰는 전기량이 부산시보다 많다. 그런데 이를 액화천연가스(LNG)로 하겠다는 것인데. 애플 같은 대형 반도체 수입업체들은 RE100, 즉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게 아니면 안 사겠다고 한다. 우리도 재생에너지로 맞춰야 한다. 원자력이 재생에너지에 포함되느냐 문제도 있다. 이 경우 우리는 소형모듈원자로(SMR)로 가는 방법밖에 없는데, 결국 포트폴리오가 문제다. 원전 외에도 농촌에 스마트팜을 만들어 그 스마트팜 위에 태양광을 두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반도체와 관련해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메모리 반도체도 진화하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있는데 이것은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서 고속으로 돌리는 것이다. 과거에는 단가가 안 맞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챗GPT 등이 나오면서 더 빨리 돌아가야 해 이게 필요해졌다. 이런 고부가가치에 투자해야 한다. 이런 패키징에 투자해야 하고 설계 부분은 단시간에 안 되니 인력에 투자해야 한다. 인재를 육성해야 하지만 이 순간에도 인재가 필요하니, 해외 인재들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지원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올해 예산과 관련해 지난해 연구개발(R&D) 예산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독일 장관에게 제조업 강국, 중소기업 강국이 된 비결이 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답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그렇게 지원하다 보면 좋아진다는 것이다. 미국은 R&D를 우리처럼 관여하지 않고 씨앗처럼 뿌린다. 이후 2~3년 지난 뒤 진짜배기를 찾는다. 이때부터 액수가 올라가고 정부가 관여한다. 반면 우리는 너무 시시콜콜한 것까지 관여한다. R&D에 대한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지만, 올해 예산처럼 잘라내는 것은 옳지 않다. 더 늘렸어야 했다.

-올해 11월에 미국 대선이 있다. 어떻게 전망하나.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될 확률이 점점 높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래도 모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지지 의사를 밝히는 이들은 적극 지지층이다. 지식인층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한다. 이들은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아 지켜봐야 한다. 만약 다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그 이유는 미국이 중국에 밀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 이와 관련해 반도체에 대한 규제가 더 심해질 수 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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