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가보자는 건가"vs"대통령 뜻인가" 이관섭·한동훈 충돌

김효성, 박태인, 왕준열 2024. 1.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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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전민규 기자

여권은 22일 용산 대통령실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충돌 여파로 술렁거렸다. 특히 전날 ‘한동훈-이관섭-윤재옥’ 3인 회동의 내용을 놓고 당사자 주장이 엇갈리면서 진실공방 사태로도 번졌다.

한 위원장은 이날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대통령실의) 사퇴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당무개입 논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의 사퇴 주체가 대통령실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반면에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3인 회동은 고위 당정회의 차원에서 다양한 주제를 놓고 논의하기 위해 만난 것이다. 그런 모임은 매주 가진다”고 했다. 이어 “다양한 경로에서 한 위원장에게 (공천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제기가 들어가다 보니, 그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게 아닐까 한다. 우리도 답답한 상황”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전날 “비대위원장 거취는 용산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사퇴요구를 받았다”는 한 위원장과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다”는 대통령실이 대립하는 형국이다. 실제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①19일 한동훈-윤재옥 회동


3인 회동 이틀 전인 지난 19일 오전 한 위원장은 윤재옥 원내대표와 여의도 당사에서 20여분간 얼굴을 마주했다. 윤 원내대표가 제안한 자리였는데, 이 자리에서 윤 원내대표는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을 연일 제기하는 점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윤 원내대표는 “명품백 의혹은 정치공작”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윤재옥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발언의 강도는 다소 약했다고 한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윤 원내대표가 ‘대통령실과 각을 세우지 말고, 부드럽게 이 상황을 대처하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한 위원장은 그다지 귀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 원내대표가 한 위원장-대통령실의 ‘중재자’ 역할에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 위원장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명품백 의혹은)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면서 “윤 원내대표와 저의 목소리는 다르지 않다”라고 했다.


②21일 한동훈·이관섭·윤재옥 3인 회동


첫 번째 설득 작업이 먹히지 않자, 이틀 뒤인 21일 오전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섰다. 그는 윤 원내대표와 함께 한 위원장을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실장은 지난 17일 한 위원장이 서울시당 행사에서 김경율 비대위원의 마포을 공천을 공식화해 ‘사천(私薦)’ 논란이 벌어진 점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이 대통령의 철학”이라는 점도 전달했다고 한다.

더욱이 사천 논란이 일어난 당일 김 위원이 유튜브에 나와 김 여사 논란을 언급하며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국민) 감성이 폭발해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한 부분에 대한 대통령실의 강한 불쾌감도 표했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8세기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로 프랑스혁명 직후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결국 이 실장이 사천 논란과 앙투아네트 발언 책임을 지고 김 위원의 비대위원 사퇴 등도 요구했다는 게 여권 인사들의 전언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김경율 비대위원과 함께 주먹을 쥐고 있다. 뉴스1


하지만 한 위원장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김 위원 공천 문제는 발표 전날인 16일 여당 지도부와 미리 상의했기 때문에 ‘사천’ 논란과는 거리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비대위 관계자는 “한 위원장은 사천 논란을 대통령실의 ‘압박용 공세’로 봤다”며 “김 위원이 사퇴하면 본인도 코너에 몰릴 것으로 여겼을 것”이라고 했다.

또 공천관리위원회가 발표한 경선룰에서 현역 의원에 대한 감점이 예상보다 적다는 여당 일부의 불만도 논의됐다고 한다. 쇄신 공천의 명분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이에 대해서도 “공천을 이끄는 건 나”라고 했던 한 위원장은 거부했다고 한다.

이처럼 한 위원장과 이 실장이 충돌하면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끝까지 가보자는 건가요’ ‘이게 대통령의 뜻인가요’ 등의 표현이 표출됐고, 이게 사퇴 요구로 비화됐다는 게 복수 여권 인사의 전언이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주변에 “거기(3인 회동) 외에는 사퇴 요구를 들은 바 없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3인 회동 때 사퇴 요구를 들었다는 걸 거듭 확인한 것이다. 한 위원장과 가까운 한 의원은 “의도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실이 사퇴 요구설을 흘리고 있는 거 같다”며 “한 위원장 스타일상 대통령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지 않았으면 ‘거절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③尹대통령 심야 참모진 긴급회의


21일 오후 늦게 ‘3인 회동’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특히 이관섭 실장의 실명이 공개되고, 한동훈 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있었다는 보도에 대통령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날 낮 인터넷 매체엔 '윤 대통령, 한동훈 지지 철회'라는 보도가 나왔고, 이를 친윤 핵심 이용 의원이 의원 단톡방에 공유했었다. 이에 대통령실 일각에선 “대통령실과 친윤계가 자신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자, 한 위원장이 3인 회동을 언론에 알려 반격에 나선 거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신임 국민권익위원장, 국가안보실 3차장 등 정무직 인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부랴부랴 이관섭 실장을 포함한 대통령실 참모진을 한남동 관저로 불러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지만 마땅한 대책은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계속 대립하다가는 공멸한다”는 공감대는 확인했다고 한다.

김효성·박태인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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