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당장 전쟁할 것 같더니, 이스라엘에 엄포만…확전 왜 못하나

박소영 2024. 1. 2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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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에 레바논 헤즈볼라와 예멘의 후티 반군 등 친(親)이란 세력이 가세한 가운데, 이들 무장세력의 후원자인 중동의 시아파 맹주 이란의 참전 가능성에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의 예상과 달리 미국·이스라엘에 엄포만 놓으며 직접 행동을 꺼리는 듯한 이란의 움직임을 두고 오는 3월 총선을 앞두고 내부 단속을 위해 확전을 원치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6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건물 벽에 이란제 미사일과 히브리어·페르시아어로 '관을 준비하세요'란 글이 적혀 있는 대형 광고판이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 총선 앞두고 내부 단속에 초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100일 넘게 이어지는 동안 이란은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 후티가 홍해,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가 자국 미군기지 등을 공격했지만, 이란 스스로는 이스라엘과 미국을 향해 "레드라인 넘었다", "범죄 묵과하지 않을 것" 등 날 선 비난을 퍼부었을 뿐이다.

그러다 이달 초 자국 영토 내 자살폭탄 테러가 발상하자 이라크·시리아(15일), 파키스탄(16일)에 미사일 공격을 단행해 이·하 전쟁 이후 첫 군사 행동에 나섰다. 이로 인해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됐지만 이후 추가적인 무력 사용은 없는 상태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도 미국처럼 확전을 원치 않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익명의 이란 정부 관계자는 FT에 "이란은 이스라엘·미국과 직접적인 전쟁을 원하지 않아 카타르와 같은 중재국을 통해 소통하면서 확전을 막고 있다"면서 "이라크·파키스탄 등을 공격한 건 미국·이스라엘에 '우리는 건드리지 말고, 빨리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라'란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여성이 지난 2022년 9월 23일 벨기에 브뤼셀의 이란 대사관 앞에서 열린 히잡 반대 시위에서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의 초상화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런 움직임에 외신들은 이란 정부가 전쟁보단 내부 단속과 정권 유지에 노력하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란은 오는 3월 1일 총선을 치를 예정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란의 반미·보수파는 지난 2020년 이후 4년 만에 실시되는 이번 총선에서도 계속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나, 2년 전 발생했던 히잡 시위의 여파로 내정이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이다.

앞서 지난 2022년 9월 이란에선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가 퍼졌다. 1979년 혁명으로 신정일치 정권이 수립된 이후 최대 규모로 꼽힌다. 또한 미국의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 식량·에너지 위기 등으로 물가 상승률이 50%에 육박하는 등 경제난도 심각하다. 외신 등에 따르면 이란 국민의 68%가 의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은 정부의 강경 노선에 한층 부정적이다. 때문에 올해 총선의 투표율은 2020년 총선 때 기록한 역대 최저 투표율(42.57%)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총선을 계기로 새로운 국민적 저항 운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은 중앙일보에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참전하면 규모가 큰 시위가 일어나 내부 치안이 엉망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중동·북아프리카 본부장도 FT에 "이란의 최우선 순위는 이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이란은 정권 유지를 위해 직접 타격을 받지 않는 한 자국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 계속 자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군사 행동으로 내부 불만 여론 잠재워

이란 예비군들이 지난해 11월 24일 이란 테헤란에서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연대를 보여주는 집회에서 이란의 장거리 미사일 모형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 정부는 현재 중동의 긴장 상황을 자국 내 강경파의 지지를 높이고, 인권·경제난에 대해 불만을 잠재우는 데 활용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이 이라크·시리아·파키스탄 등에 미사일을 쏘면서 친이란 세력을 지원하고 미국·이스라엘엔 무력을 과시하는 한편, 강경파 지지자들에겐 소극적이지 않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분석했다.

특히 확전을 막기 위해 이란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인접국만 공격했다고 NYT는 짚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이란의 공격에 이라크·시리아는 잠잠했고, 파키스탄은 보복 공격했으나 '공공의 적'으로 여기는 분리주의 세력 발루치족이 사는 지역에만 타격한 후 바로 화해했다"면서 "이란은 3개국과 미리 합의한 후 제한적 공격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제위기감시기구(ICG)의 이란 문제 전문가 알리 바에즈 대표는 알자지라에 "이란은 긴장 고조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총선을 앞두고 군사적 행동을 통해 국내 정치로부터 여론의 관심을 돌리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변수…오판으로 확전 가능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지난 5일 케르만시에서 열린 자살 폭탄 테러 희생자들의 장례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이란 정권의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일단 최대 변수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공습 등을 가자지구 밖으로 확대하며 중동의 긴장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20일 이스라엘군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공습했다. 이로 인해 이란 혁명수비대 정보 책임자 등 4명이 숨졌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보복을 예고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1일 "현재 미국과 이란은 직접적 충돌은 피하면서 위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시리아·레바논 등 주변국을 공격함에 따라 이런 균형이 깨질 위기"라고 전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친이란 세력 간의 공방이 거듭되는 가운데, 단 한 번의 오판이나 테러가 확전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데이비드 밀러는 "이 같은 상황이 지속하고 여러 공격 중 하나가 미국인 다수의 인명 피해를 내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바이든 미 행정부도 이란을 공격하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재민 기자


이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선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종전이 절실하다. 하지만 종전 협상이 언제 성사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1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가 인질 석방을 대가로 항복을 요구하는데, 전면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강경한 입장에 미국 등 서방도 우려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직접 통치를 원하는 듯한 네타냐후 총리의 태도에 우방이었던 유럽연합(EU)도 칼을 빼 들었다. FT는 21일 EU가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된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을 반대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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