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부장교사, 50대는 만년 평교사…교실 '서열 역전' 왜

이가람, 서지원 2024. 1. 23. 05: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교무실 전경. 연합뉴스

올해로 29세인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임용 5년 차인 지난해부터 ‘부장’을 달았다. 학교에는 교장과 교감을 제외한 총 21명의 교사가 있었지만, 막내인 A씨가 방과후부장을 맡은 것이다. A씨는 “교감 선생님이 공석인 부장 자리를 놓고 두 번씩 전화를 돌렸다는데 모두 거절해 마지막으로 나한테까지 연락이 왔다”며 “폭탄 돌리기가 된 상황에서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올해도 자원하는 교사가 없어서 A씨는 부장 교사를 연임하게 됐다.


20대에 부장 교사, 정작 고연차는 ‘부장 경험無’


20대 부장교사와 50대 만년 평교사. 최근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연공서열 역주행’ 현상의 한 단면이다. 교대를 졸업하고 갓 임용된 20대 중반의 교사가 부장을 맡거나, 반대로 56세가 넘은 교사가 30년 교직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부장을 맡지 않은 경우도 있다. 보직교사 기피 현상이 빚어낸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학교 현장에서 ‘부장’으로 불리는 보직교사는 통상 40대의 고연차 교사가 맡는 게 일반적이었다. 대표적으로 교무부장·연구부장·생활부장·체육부장·학년부장 등이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장 B씨는 “교장과 교감, 그다음이 보직교사인 만큼 학교관리자와 일반교사 사이에서 소통을 중재하는 중간관리자 역할을 한다”며 “학교교육과정 편성과 운영에 의사결정도 하기 때문에 다년간의 경험이 필요한 자리다”고 설명했다.

김주원 기자

하지만 보직교사의 연차가 점점 낮아지더니 최근에는 20대가 부장을 맡는 경우도 있다. 22일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서교연)이 발표한 ‘초등학교 보직교사 제도 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서울 시내 공립초 564개교의 전체 보직교사(6241명) 중에 35세 이하는 18.1%를 차지했다. 이 중 20대가 360명(5.8%)이었으며, 25세 이하의 교사가 부장을 맡은 사례도 7명(0.1%) 있었다.

김주원 기자

반대로 고연차 교사 중에서는 한 번도 부장을 맡지 않았던 ‘무경력’ 교사들이 적지 않았다. 2022년까지 보직 경력이 전혀 없었던 1301명 중 51세 이상 교사의 비중은 12.2%나 됐다. 서교연은 “그동안 중견 경력의 교사들이 보직 업무를 기피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진로정보부장을 맡은 30대 교사 C씨는 “부장교사는 업무를 지시하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며 “부장보다 나이가 많은 교사가 부서원으로 있으면 업무 요청에 어려움이 있어서 ‘부탁드릴 바에야 내가 하고 말지’라는 마음을 먹게 된다”고 토로했다.


서열 역주행 낳은 ‘보직교사 기피 현상’


김주원 기자
이런 서열 역주행의 배경에는 보직 기피 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 보직교사와 일반교사 4648명을 대상으로 올해(2024학년도) 보직교사를 맡을지에 대한 의향을 묻는 설문에 10명 중 8명(78.8%)이 ‘맡지 않겠다’고 답했다. 현재 보직교사를 맡은 응답자의 36.4%는 보직교사를 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지만, 일반교사는 6.1%에 불과했다. 보직교사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과중한 업무와 책임’(72.2%)이 1순위로 꼽혔다. 이어 ‘낮은 처우’(63.0%), ‘워라밸 희망’(31.7%) 순이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D(30)씨는 “보직교사의 연령이 내려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정보부장은 교장 선생님이 ‘컴퓨터 잘하는 젊은 사람이 해라’ 이렇게 떠넘기기도 한다”며 “교무부장이나 연구부장은 교감 되기 전에 거치는 부장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나 교감 안 하고 싶으니 안 해’라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직교사는 대부분 교장이나 교감의 부탁으로 임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감 E씨는 “누군가는 해야 하니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는데 본인 순서가 되면 바로 휴직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수당 인상키로…“제도 개선과 내적 동기 높여야”


다만 보직교사의 중요성에 대해선 공감대가 컸다. 교원 5362명의 응답자 중 76.9%가 ‘보직교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학교 행정 및 교육활동과 관련된 제반 업무 수행(63.6%) ▶학교 교육사업의 원활한 추진(54.2%) ▶중간 리더로서 관리자와 일반 교사들 간의 교량 역할(24.9%) 등이 꼽혔다.

교육부는 보직교사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2003년부터 20년 넘도록 월 7만원으로 동결된 보직 수당을 올해부터 15만원으로 2배가량 인상하기로 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선 “금액을 듣고 다들 코웃음을 친다”는 반응이 나온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업무는 과중하지만, 그에 걸맞지 않은 보상이 보직교사 기피 현상의 핵심”이라며 “학생 교육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각종 민원 처리와 부수적인 행정 업무가 부장이라는 직함을 달았다는 명목으로 몰리는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리 서울교육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보직교사 기피 문제는 몇 가지의 우대정책만이 아닌, 제도 개선과 내적 동기 유발 등 전방위적인 방안이 함께 모색돼야 한다”며 “보직교사의 과중한 업무 일부를 교육청으로 이관하고 수업 시수 경감, 전보 우대, 승진 가산점 체계를 개선해 내적 동기를 향상시키는 등의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가람·서지원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