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점인 외교문제 내세운 헤일리 “불타는 세계, 혼란은 더 안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유세 티켓을 예약해 뒀다가 급히 목적지를 바꿨다. 니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다.”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 사는 브라이언은 21일 오후 7시(현지시간)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유세장인 로킹엄 카운티의 엑서터고등학교에 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디샌티스 지지자였지만 이날 디샌티스의 후보 사퇴 소식을 듣고 실망했으며, 지금은 헤일리 지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라이언은 “도널드 트럼프는 늘 전쟁 상태이고, 이는 대통령의 자질이 아니다”며 “나는 젠틀한 리더십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엑서터고 강당에 마련된 헤일리 유세장에는 1000명이 넘는 지지자들이 모였다. 경선 레이스에 돌입한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집결한 것이다. 유세 시작 전에 몇 명을 예상하느냐고 묻자 캠프 스태프들은 “정말 많은 사람이 올 것”이라고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디샌티스의 사퇴로 온건파 공화당원과 무소속 유권자들의 관심이 헤일리에게로 집중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엿보였다.
이날 맨체스터, 콩코드, 데리, 엑서터 등 뉴햄프셔 도심 4곳을 돌며 만난 헤일리 지지자들은 공통으로 ‘트럼프 포비아(공포증)’를 언급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의 리턴 매치에 염증을 느낀 중도 성향 유권자들도 헤일리 유세장을 찾아 관심을 드러냈다. 헤일리가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공화당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트럼프 견제를 위해 이들 ‘반트럼프 연대’ 결집을 노리는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데리 지역 길버트후드중학교에서 만난 브라이언 놀란은 헤일리가 목표로 하는 잠재적 지지자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고 6개월간 그곳에 있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 강력히 지지하고 옳은 일을 하는 헤일리에게 나의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왔다”며 “나는 민주당 지지자이지만 헤일리에게 투표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헤일리는 건전한 공화당원이고 극단주의자인 트럼프와는 다르다”며 “헤일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가 집무실에서 미친 짓을 할까 봐 겁내지 않아도 되고 민주당도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일리를 지지하는 공화당원들 사이에서도 ‘트럼프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퍼져 있었다.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유세장을 찾은 킴벌리 여사는 “나는 예전에 트럼프에게 투표했지만 지금은 그가 말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끔 당황스러울 정도”라며 “헤일리는 외교 문제를 잘 다룰 수 있고 트럼프보다 훨씬 더 진솔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자신을 무소속이라고 소개한 20대 후반의 유권자 토머스는 “바이든과 트럼프 둘 다 좋은 후보가 아니다. 다른 후보를 원한다”며 “그들이 대선후보가 된다면 나는 대선 때 제3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콩코드의 남부연합교회에서 만난 매리언은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을 싸웠고 형편없이 철군했다. 바이든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헤일리를 이길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녀가 후보가 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며 자신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헤일리가 이날 자신의 강점인 외교 문제를 언급하고 트럼프의 위험성을 강조한 것도 반트럼프 연대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헤일리는 유세에서 “세상이 불타고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북한은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테스트하고 있다”며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런 대참사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은 수년 동안 우리와 전쟁을 준비해 왔다. 바이든이 중국을 경쟁자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라”며 “중국은 항상 우리를 적으로 여겨왔고 우리도 그들 방식으로 중국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중국이 더는 미국 땅을 살 수 없도록 하고, 이미 사들인 땅을 회수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나는 그들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모든 기술을 (규제) 블랙리스트에 올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헤일리는 “옳든 그르든 혼돈이 그를 뒤따른다”며 “불타오르는 세계를 두고 4년을 더 혼란에 빠뜨릴 수 없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디샌티스의 사퇴가 트럼프에게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뉴햄프셔대 여론조사센터 앤드루 스미스 소장은 “디샌티스 지지자들의 두 번째 선택은 경선 내내 트럼프였다. 결국 트럼프 지지율을 높일 것”이라며 “헤일리는 반트럼프 유권자와 무소속 유권자에서 앞서고 있지만, 이들 수는 (트럼프를 이기기엔) 충분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워싱턴포스트도 “디샌티스의 사퇴는 뉴햄프셔에서의 헤일리 승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애물”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이날 로체스터 오페라하우스 유세에서 “디샌티스는 매우 친절했고 나를 지지해줬다. 그 점에 감사드린다”며 “우리는 뉴햄프셔에서 큰 표 차이로 승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샌티스 지지자들을 끌어안아 조기에 경쟁을 끝내겠다는 의도다. 트럼프는 헤일리가 2012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였을 때 연방 상원의원으로 지명한 팀 스콧이 자신을 지지하는 것을 언급하며 “그가 지명한 사람이 나와 함께 간다. 헤일리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공격했다.
CNN은 “헤일리는 트럼프의 공화당 장악을 가로막는 마지막 후보”라며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깜짝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면 공화당 경선은 사실상 끝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콩코드·엑서터=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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