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北 대남정책 전환, ‘체제 경쟁 패배’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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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개최된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두 국가론에 기초한 대남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헌법에 규정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표현이 삭제되어야 한다며 남북 관계를 전쟁 중의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
김 위원장이 실현 불가능한 북한 주도 통일을 포기하고 정권과 체제 유지를 위한 수세적 노선으로 전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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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개최된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두 국가론에 기초한 대남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헌법에 규정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표현이 삭제되어야 한다며 남북 관계를 전쟁 중의 ‘교전국 관계’로 규정했다. ‘삼천리 금수강산’과 ‘8000만 겨레’ 등과 같은 표현이 남북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이라며 사용 금지를 헌법에 명기하는 것이 옳다고도 했다. 북한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도 완전히 제거할 것을 지시했다. 5000년 한민족의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부정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대남전략 변화를 선언한 이유는 남북 관계를 둘러싼 환경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다. 그동안 북한은 고려연방제 통일 방안과 통일전선 전술을 채택해 왔다. 1민족, 1국가, 2체제를 유지하면서 남한 내 친북·친노동당 세력과 합세해 남한을 북한으로 흡수하는 북한식 평화통일 방안이다. 그러나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이 불가능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북한은 남북 체제 경쟁에서 패배했으며,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대북제재 해제에도 실패했다. 남북 관계 ‘발전’을 지향했던 문재인정부와 달리 윤석열정부는 남북 관계 ‘정상화’를 추구함으로써 북한이 갑이 되는 남북 관계의 형성도 벽에 부닥쳤다. 김 위원장이 실현 불가능한 북한 주도 통일을 포기하고 정권과 체제 유지를 위한 수세적 노선으로 전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상 남북 경쟁에서 패배를 선언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충격과 실망을 안겨줬다. 더 큰 문제는 김 위원장의 대남 전략 변화가 가진 위험성이다. 김 위원장은 핵무기를 의미하는 북한의 ‘절대적 힘’이 무력통일을 위한 선제공격 수단이 아닌 정당방위력이며,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김 위원장은 군사분계선(MDL)을 남쪽 국경선으로 규정했지만, 북방한계선(NLL)은 ‘불법 무법’으로 단정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영토, 영공, 영해를 0.001㎜라도 침범하면 전쟁 도발로 간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김 위원장 언급대로라면 NLL 절대 수호를 견지하는 대한민국은 이미 북한 영해를 침범하고, 전쟁 도발을 한 셈이다. 김 위원장의 남북 간 ‘교전국 관계’ 선언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이유다.
북한은 2022년 9월 핵무력 법제화를 통해 자신들이 판단하는 어느 경우에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요건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대한민국을 교전 국가로 규정한 북한이 향후 수시로 핵 위협을 가해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언제든 핵 공격을 가해올 수 있는 북한과 교전국 관계로 지내는 것을 과연 국민이 용인할 수 있을까?
그동안 통일 담론은 북한의 체제와 노동당 존립의 근거였으며, 북한 주민들의 정신과 생활세계의 중심이었다. 아무리 북한이라도 김 위원장 말 한 마디로 ‘삼천리 금수강산’, ‘8000만 겨레’와 같은 말이 금지되고, ‘통일’ 표현을 쓰면 반역자가 되는 세상이 올 수는 없는 일이다. 김 위원장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헌법과 노동당 규약이 개정돼야 하며, 북한 주민에 대한 대대적인 사상교육이 수반돼야 한다. 역린을 건드린 김 위원장이 북한 내 어떤 반발과 후폭풍에 직면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김정은 위원장은 스스로 반통일, 반평화, 반민족을 선언함으로써 오로지 독재체제 유지가 목적이라는 점을 자인했다. 대한민국은 자주적 대응 능력과 확장억제력을 최고 수준으로 강화해 북핵 위협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평화통일을 희구하는 유일한 도덕적 정부로서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 번영을 지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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