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나무의 새해

2024. 1. 23. 03: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나무도 새해를 맞을까.

유대인은 오랫동안 '나무의 새해'를 지켜왔다.

나무의 새해를 정한 이유는 농경 생활을 했던 고대 이스라엘에서 그 땅의 한 해 소산이 얼마인지 또 그 10분의 1은 얼마인지를 계산할 날짜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의 새해는 이스라엘인에게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축복에 감사하며 땅의 열매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할 한 해의 시작이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무도 새해를 맞을까. 이스라엘에서는 그렇다. 유대인은 오랫동안 ‘나무의 새해’를 지켜왔다. 유대 달력상 올해는 24일 해질 때부터 25일 해질 때까지다. 이날을 기준으로 지난해 과일과 새해 과일을 구분짓는다. 이 절기가 되면 유대인은 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 대추야자 등 이스라엘에서 자란 나무가 맺은 과일을 먹으며 즐긴다.

나무의 새해를 정한 이유는 농경 생활을 했던 고대 이스라엘에서 그 땅의 한 해 소산이 얼마인지 또 그 10분의 1은 얼마인지를 계산할 날짜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해 세바트(Shevat·유대력 제5월)월 15일이 되면 그날 이후로 한 해 동안 추수하게 될 모든 소산의 십일조 셈하기가 시작된다.

이렇게 구분해 드리는 십일조는 기업을 갖지 못하기에 땅의 소산을 얻을 수 없는 이들, 즉 레위인 나그네 고아 및 과부와 함께 나누도록 했다. 그래서 나무의 새해는 이스라엘인에게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축복에 감사하며 땅의 열매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을 실천할 한 해의 시작이었다. 비록 성경이 명시한 명절은 아니지만 성경의 가르침을 잘 이행하고자 제정된 또 하나의 새해이다. 포도 석류 등을 먹으며 즐기는 이날의 풍습은 그 열매를 함께 나눌 이웃을 생각하는 훈훈함을 담고 있다.

이 오래된 절기에 비교적 후대에 추가된 전통이 하나 있는데 바로 ‘캐롭(carob)’ 열매를 먹는 것이다. 캐롭나무는 납작하고 구부정한 꼬투리 안에 5~15개의 씨가 든 열매를 맺는다. 성경 속 ‘탕자의 비유’에서 ‘쥐엄 열매’라는 이름의 돼지 먹이로 더 잘 알려졌다. 이 캐롭나무는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데 첫째는 건조한 기후에서 잘 버틴다는 것이다. 특히 숙성한 나무는 뿌리를 아주 깊고 넓적하게 내린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 심지어 바위틈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이유다.

둘째는 열매가 익는 기간이 길다는 것이다. 보통 10월쯤 꽃이 피면 열매는 다음 해 9~11월 사이에야 수확할 수 있다. 거의 1년을 기다려야 열매를 먹을 수 있는 나무인 것이다. 그래서 열매를 딸 때 이미 피기 시작한 새 꽃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는 나무가 풍성하게 열매를 맺기까지 수십 년의 숙성 기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탈무드는 캐롭과 관련해 ‘70년 뒤에 열매를 먹을 후손을 위해 심는 나무’라 했다.

이런 특징을 살필 때 2000여년 동안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의 삶을 산 유대인들이 왜 새해의 과일에 캐롭을 추가했는지 알 것 같다. 캐롭처럼 이들은 척박하고 메마른 환경, 돌짝 밭 같은 터전에서 버티며 살아남아야 했다. 수많은 박해 속에 이들이 거둔 열매의 기쁨은 종종 꽃을 떨궈내는 아픔과 뒤섞였다. 그런 가운데 지켜낸 민족의 생존은 구성원 하나하나가 70년 뒤를 소망하며 심어간 나무가 어우러진 숲과 같았다. 캐롭은 이렇게 오랜 세월 나무의 새해를 유대 민족과 함께해 왔다.

하지만 안타깝다. 이스라엘 선조들이 포도 석류 캐롭 열매들을 갖고 기념하고자 한 새해는 10분의 1을 드려 기업(基業)이 없는 이웃을 아끼고 돌보는 출발점이었다. 새해가 어김없이 찾아왔지만 정작 그 땅에 있는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엔 이 뜻이 자리할 곳은 지금 없다. 그럼에도 캐롭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열매를 맺을 것이다.

박성현
(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

약력=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B.A.) 및 텔아비브대(M.A.), 미국 하버드대(Ph.D.·근동어문학)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