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실의 한동훈 사퇴 요구는 도 넘은 당무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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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비대위원장, 대통령과 수직 관계 아니야
거듭된 당대표와의 불화…대통령 인식에 문제
윤·한 충돌에 지지층 충격 커, 해결 모색 시급
여당에 대한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이 선을 넘었다.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그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 안팎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대통령실이 퇴진을 요구한 명분은 한 위원장이 자신과 가까운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공천이 확정된 것처럼 말해 ‘시스템 공천’ 원칙을 훼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론 김경율 위원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을 강하게 비판하며 윤석열 대통령과 김 여사의 사과를 주장하자 윤 대통령이 격노했기 때문이란 게 정설로 통한다. 한 위원장도 해당 논란에 대해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김경율 위원을 거드는 듯한 발언을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당의 비대위원장은 장·차관이나 공공기관장처럼 대통령과 수직적 관계가 아니다. 3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여당 비대위원장은 대법원장·국회의장처럼 행정부로부터 고도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위치다. 대통령의 비위를 거슬렀다고 해서 곧바로 비서실장을 보내 물러나라고 할 순 없다. 게다가 한 위원장이 패륜·범죄적 발언을 한 것도 아니고 다수 민심에 입각한 상식을 얘기한 것뿐이다.
선거철에 대통령이 여당에 깊이 개입하면 처벌받는다는 선례를 남긴 사람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윤 대통령 본인이다.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인 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대 총선 때 새누리당 공천에 개입했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박 전 대통령은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벌써부터 더불어민주당에선 “이관섭 실장이 한동훈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한 건 공직선거법의 공무원 정치중립 의무 위반이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이번 사례가 직접적 공천 개입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뒷맛이 썩 개운치가 않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계속 여당 대표와 불화를 빚었다. 2022년 지방선거 뒤 자신과 코드가 안 맞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대표직에서 축출했다. 지난해 1월 후임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에선 유력 후보로 꼽히던 나경원 전 의원을 압박해 출마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연말 김기현 전 대표가 물러날 때도 윤 대통령과 볼썽사나운 파열음이 터져나왔다. 벌써 세 번째다. 심지어 한동훈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총애하는 최측근이었다. 국민의힘 안팎에서 여러 우려에도 친윤 그룹이 앞장서 한동훈 비대위 체제를 밀어붙였다. 그랬는데 이제 와서 그 한 위원장마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비대위원장을 사퇴하라고 한다면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호주머니 속 공기돌로 취급한다는 얘기가 안 나올 수 없다. 여당을 바라보는 검사 출신 대통령의 비민주적 인식 자체를 교정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선거에 나갈 일이 없는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국정과제를 완수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 된다. 하지만 여당 대표는 선거를 치르기 위해 민심과 여론을 각별히 신경써야 하는 처지다. 각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대통령실과 여당은 언제나 존중과 배려, 소통이 필요하다. 4월 총선을 목전에 두고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돌발적인 충돌은 보수 진영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힘을 합쳐도 결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형국인데, 지도부의 내분이 불거지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2016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도장 런’ 사태 재연의 우려까지 나온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조속히 해결책을 모색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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