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의 세사필담] 개에 대한 명상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외신들이 난리가 났다. 미국 CNN은 방송 도중 속보를 내보냈고, 주요 통신사들도 호들갑을 떨었다. 네팔, 필리핀, 인도네시아처럼 개를 먹는 나라가 더러 있음에도 이렇게 조명을 받는 건 한국이 G10 멤버이기 때문일 것이다. ‘드디어 후진국을 벗어났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이런 표현에는 문화적 경멸감도 읽힌다.
아무튼 개 식용 금지! 시세(時勢)가 워낙 달라졌으니 개고기 권하던 정약용(茶山) 선생도 이해할 듯하다. 친형 정약전 선생이 쇠약하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다산 선생은 개를 떠올렸다. 흑산도에 산개가 수백 마리 있을 터인데 안타까웠던 모양이었다. 5일에 한 마리씩 잡는데, 올가미 설치하는 방법, 삶는 법에 더해 식초, 장, 기름, 파로 버무린 양념까지를 설명했다. 실학자 박제가의 요리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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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가 보기에도 한심한 정치판
개식용 금지법으로 연정 선보여
전직 대통령 묘소에 머리 숙인들
물갈이 빅텐트 이뤄낼지 못 믿어
」
조선 최초의 어류도감을 만들고 있던 정약전 선생이 산개를 정말 먹었을까만, ‘개’라면 당대의 시대적 고통을 앓는 몸에 들어가 보양이 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쐬주를 마실 때 안주가 되어도 좋다’고 쾌히 승낙한 ‘명태’처럼(양명문의 시), 너절하기 짝이 없는 정관계 인사들을 내리치는 『목민심서』의 죽비를 더 세게 만들어주고도 싶다. 개 생명은 구했어도, ‘개 마음’을 읽으려면 아직 멀었다. 요즘 동시통역하는 AI 앱 줄링구아(Zoolingua)가 나왔다는데 개의 관점에서 그건 ‘개소리’다. 표정, 동작, 음성만으로는 개의 마음과 눈초리를 알아채지 못한다.
오죽했으면 작가 김훈이 스스로 개가 되어 세상을 보려 했을까. 자전거 여행 중 폐촌에서 마주친 개들의 눈초리는 알쏭달쏭했다. 그래서 진돗개 ‘보리’로 자신을 둔갑시켰다(소설 『개』). 풍경과 달빛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제멋대로였다. 죄짓고 딱 잡아떼는 사람들이 우선 웃겼다. 개는 꼬리가 절로 흔들려 감출 수가 없다. “웃지 않기가 힘들어. 그야말로 개수작”이었다.
진돗개 보리가 요즘의 정치판을 본다면 뭐라 할까, 그냥 컹컹 짖고 말까, 아니면 개판이라 할까. 개에 등급을 부여한 건 인간이다. 애완견, 경비견, 탐색견처럼 특정 임무를 받은 개를 견(犬)으로 불렀고, 버려진 잡초 같은 개는 구(狗)자를 붙였다. 몸 색깔에 따라 황구, 흑구, 백구다. 황구로 태어난 ‘보리’는 정치판에 구자를 붙여도 좋을 사람이 그득하다는 사실을 놀라워했을 것이다. ‘견’과 ‘구’를 애써 구별한 그들이 정작 견격(犬格)을 아랑곳 않고 나불대는 어지러운 광경에 질리고도 남을 것이다. 외설적인 말은 본능적으로 알겠는데, ‘발목때기’ ‘칼빵’, ‘개딸’은 요령부득. 정치하는 사람들이 정견(政犬)은커녕 정구(政狗)가 된 현실을 정작 개는 이해 못한다.
정치인들이 이러니 개들이 가장 좋아하는 10대 20대들이 말마다 개자를 붙이는 풍조가 널리 퍼졌다. 좋으면 그냥 좋지 왜 ‘개좋아’라 하는지. 맛있게 먹으면 되지 왜 ‘개맛있어’ 하는지 개는 알지 못한다. 저잣거리 말인 ‘대박’도 그렇다.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어떤 대통령이 발언한 이후 널리 퍼져서 아무나 대박 타령을 한다. 인기 스타도 말끝마다 ‘대~박’, 식자들도 ‘대박~’이다. 개대박이 아닌 게 좀 아쉽긴 하다.
견격 있는 개는 무리짓지 않는다. 무리짓는 건 먹을 것을 찾아 으르렁대는 들개다. 이들은 이빨이 날카롭고 성질 사나운 두목을 따른다. 비굴해야 먹고 산다. 그런데 정치판 사람들은 왜 두목을 앞세워 졸졸 따르는지 개는 알 수 없다. 온몸에 상처 입은 두목도 있고 새로 영입한 날렵한 두목도 있다. 최근 당적을 옮긴 모(某)의원이 야당 중진들은 입을 다물었다고 다 아는 기밀을 누설했는데 원래 정당이 그런 것인지 개는 모른다. 하기야 요즘 사람들이 제 입맛에 맞는 유튜브에 문전성시라고 하니 졸졸 따르는 게 개만의 천성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오줌질러놓고 쌍욕하고 삿대질하는 정치판은 정말 꼴불견이었는데 몇 년 만에 흔쾌히 의견일치를 본 게 바로 이것이었다. 개 식용 금지! 초당적 지지를 얻었다나? 꼬리가 또 절로 흔들리긴 해도 두 무리 간 최초 합의를 사람들이 ‘개 연정(聯政)’이라 하니 기분은 썩 좋지 않다.
기대는 금물, 연정 원조국들도 요즘 사나운 두목들이 설쳐대 산통이 다 깨진다는 소문인데 한국이야 말할 것도 없을 거다. 들개 떼처럼 몰려다닌 게 마음에 걸렸는지 돌아가신 대통령 묘소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꼴을 보면 정말 개우습지만 내가 좋아하는 인간들은 대체로 홀딱 넘어가기 일쑤다. 선거철인 요즘 그들이 일시에 교양신사, 요조숙녀로 변장해도 개는 냄새로 직감한다. 복면 뒤 숨은 얼굴을. 잘 못 뽑아놓고 4년을 왕왕대는 통에 개시끄러워 잠을 설쳤는데, 그런 시절이 올까 또 잠을 설치는 요즘이다. 물갈이해봐야 율사 아니면 운동권이고 제 3 지대 빅텐트도 노숙자 꼴 날 것 같은데 덫에 걸렸다는 몰카 명품백이 시끄러워질 모양이다. 이참에 아예 근심 걱정 버리고 들판이나 쏘다닐까 한다. 덫에 걸려 팔려 갈 일 없으니.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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