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가지 통상 리스크 돌파할 ‘신 전략’ 필요하다
대미 수출이 증가해 미국이 21년 만에 대한민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이 됐다는 소식을 새해에 듣고도 필자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바로 6년 전 이맘때 “미국 무역수지 적자의 주범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이끌던 당사자로서 트럼프 재집권 시 어떤 청구서가 날아올까 우려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구촌 선거의 해’인 올해 여러 통상 환경 중에서 첫째로 주목해야 할 변화는 지정학 리스크다.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서 두 개의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지난 13일 대만 총통선거를 시작으로 올해 76개국에서 선거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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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학 리스크가 최대 통상 변수
글로벌 사우스, 기후변화도 주목
통상 정책의 두 축은 시장과 기술
」
지난 수십년간 세계 경제는 정치·안보와 사실상 분리돼 별도의 규범과 다자기구에 의해 발전해 왔지만, 미·중 전략 경쟁이 과열되면서 이제는 정치·안보가 경제·통상을 압도하는 시대다. 이런 와중에 주요국의 선거 결과는 국제통상 질서에 큰 변화와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파급력이 가장 클 수 있는 리스크가 생긴다.
예컨대 트럼프 정부의 경제팀은 미국의 무역 적자가 국가안보에 위협이라는 인식에 따라 무역 흑자국들을 상대로 FTA 개정이나 각종 무역 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6년 전 한·미 FTA 개정 협상 당시보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2.5배나 불어났다. 달라진 무역 환경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한국은 어떤 전략으로 협상에 임할 것인가. 미국이 큰 적자를 보는 품목 등에서 예상치 못한 통상 압력을 가할 수 있으니 시나리오별 대비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둘째, 개발도상국과 신흥국을 통칭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미국의 정치 변화에 따라 요동치는 통상 현안만 쫓아다니다 보면 정작 중장기적으로 구축해야 할 네트워크를 소홀히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갈라지는 미·중 공급망 틈새에서 현실적 이익을 추구하며 제3의 축으로 부상한 글로벌 사우스를 주목해야 한다.
이제 막 시작된 첨단 및 친환경 산업의 공급망 재편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그 와중에 미국의 대중국 견제 조치는 더 강화되고, 중국이 맞대응하면서 공급망 균열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 등은 미·중 양국 모두와 교역을 늘려가고 있고, 공급선 다변화를 위한 대안적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도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이들 국가와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하는 무역장벽 리스크다. 지난해에 예고편이 공개됐다면 올해는 본편들이 상영될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책이 산업정책 및 공급망 재편과 결합하면서 보호주의적 성격의 무역 장벽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2022년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도입한 이후 지난해 프랑스는 ‘녹색 산업법’을 도입했고,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했다.
중국이 태양광·전기차 분야에서 이미 공급망 전반을 장악한 상황에서 선진국의 친환경 정책은 복합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특히 지구촌 선거의 해에는 기후 위기 완화에 도움이 되면서 자국 산업 육성, 중국산을 배제한 공급망 재편은 물론 선거 득표에 유리한 ‘1석 4조’의 친환경 무역 장벽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때 한국산 제품은 어디에 있을까.
필자의 상대였던 미국의 고위 통상 관료는 “중국 제품을 규제하려고 하면 항상 그 길목에 한국 제품이 먼저 보이더라”고 토로했다. 기후대응과 통상정책 갈등의 흐름을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역이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인 시장 개척이 통상정책의 중요한 한 축이 돼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축은 기술이다. 주요국들이 제조업 강화 정책으로 선회하고 글로벌 공급망이 블록화하는 과정에서 핵심기술의 초격차 확보가 필수적이고 통상정책은 이를 지원해야 한다. 급변하는 통상 현안에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도 시장과 기술이라는 기본 축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기술 통상 체제’를 재정비하고 새로운 장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신 통상 전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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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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